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74ea887ebc816ff239e68ee1419f2e2dcce84229a88e94eb442e4266

<봄눈>, <금각사> 이후로 세 번째로 읽는 미시마 유키오의 책입니다. 도화지에 퍼런 물감을 흩뿌린 듯한 표지가 인상적입니다.(봄눈의 표지는 황록색 바탕에 핑크색 얼룩이 진 모양인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각 작품의 주인공(기요아키, 이사오)를 상징하는 색들로도 느껴집니다.)


<봄눈>에도 나온 인물들인 혼다, 이누마등이 재등장합니다. 오랜만에 보니 반가웠습니다. 기요아키의 친구였던, 이제는 판사가 된 혼다를 위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혼다는 우연히 이누마의 아들인 '이사오'에게 기요아키와 똑같이 '왼쪽 유두보다 바깥쪽, 보통 때는 팔 위쪽에 가려지는 부분에 작은 점 세 개' 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기요아키의 작별 인사가 "또 만날 거야. 분명히 만나게 돼. 폭포 밑에서."였다는 것을 떠올립니다. 혼다는 <봄눈>에서부터 기요아키와 대비되는 이성적인 인물입니다. 그러한 점은 <달리는 말>에서도 그대로 보여지는데, 직업 또한 그 어떤 직업보다 '이성'을 요구하는 판사라는 점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러나 기요아키의 유언과 '점의 위치가 같다'는 신비는 혼다의 이성의 세계에 균열을 내고, 혼다로 하여금 이성과 신비의 사이에서 갈등하며 혼란을 겪게 합니다. 결과적으로 혼다는 신비를 어느 정도 받아들입니다. '기요아키를 지키지 못했다'는 혼다를 짓누르는 과거의 짐을, 혼다는 기요아키의 환생인 이사오를 지킴으로써 그것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합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혼다에게도 독자에게도 이사오를 기요아키의 환생처럼 보이게 하는 장치들이 절대로 이사오가 기요아키의 환생임을 확정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사오가 자기 입으로 '나는 기요아키이다.' 하지는 않습니다. 혼다가 아사오에게 기요아키의 이야기를 하지도 않습니다. 우리에게 보이는 것은 '기요아키처럼 느껴지게 하는' 몇가지 장치들 뿐인데, 결국 정말로 환생인지 우연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혼다는 그것이 실제로 신비라서 믿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짓누르는 기요아키에 대한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그것을 믿기로 결정한 것도 있는 듯 합니다. 이번에도 아사오의 유언을 혼다는 듣습니다. 다음작에서 혼다는 어떻게 행동할까요? 신비는 한번의 인정이 어렵지, 두번째부터는 아주 쉬워집니다. 혼다는 이미 신비를 인정해버렸습니다. 유언을 들어버린 혼다가 아사오의 죽음을 전해 듣는다면, 기요아키 때와는 다르게 혼다의 유언이 더욱 생생하게 와닿겠지요. 이번에는 혼다의 발로 아사오의 환생을 직접 찾으러 떠나진 않을까요? 앞으로 혼다는 자신의 '기요아키상'에 맞는 인물을 찾아다니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 이야기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