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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밀한 자아 성찰 중에 마주치곤 하는 묘한 불쾌함을 아시나요?
나는 인간 이성에 대한 과한 기대를 품곤 합니다.
꼭 다른 사람들도 나 만큼은 합리적인 생각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보통 실망하게 됩니다. 한 사람으로써 다소 아쉬운 사실이라면, 인간은 당대의 어떤 지식인의 이성을 빌리더라도 우리는 그다지 객관적이고 명철한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점 입니다. 이것은 종의 한계로 정해져 있습니다.(군중 심리와 사회적 프레임에 기반한 많은 연구가 있지만 제시하진 않겠습니다.) 근대의 많은 연구는 인간 이성의 비합리성을 밝혀내게 되었고 나는 그 비합리적인 인간 중 하나임을 억지로 고백해야 하는 순간이 많습니다.
칸트의 개념과도 같이 우리는 의식에 가두어져 있으며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또한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사람은 많은 경우 형이상학적 개념을 완전히 전달하는 일에 적합하기 어려운, 언어라는 형태를 겨우 빌려서 서로의 인식에 기반한 대화를 나눕니다. 나와 같은 많은 사람들은 종종 의식 속의 모순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합니다. 이건 단순히 내 개인적인 문제라기보다 인간 존재의 보편적인 한계에 관한 문제입니다. 나는 때로 나 자신을 너무 완벽하게 이해하려는 기대를 품고 그로 인해 마주치는 불완전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자아에서 느껴지는 불쾌함은 여기서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이다지도 불완전하고 일관되지 못한 사람임을 시인하고는 하지만 그것이 진지한 고백인지, 내 죄악감을 덜어낼 목적일 뿐인 익살인지 알 수 없습니다. 어쩌다가 이 부인할 수 없는 명확한 사실을 마주하게 되면 끔찍이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이렇게는 당당해지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해즐릿에게 감사해야만 한다면. 많은 경우에 솔직해지지 못하는 여러 부도덕한 감정들에 대해 객관적 태도로 모순을 지적해준 일에 대한 것입니다. 책에서 전시되는 여러 인간적 모순들에 대한 명쾌한 해법은 제시되지 않지만 문제를 직시하자는 요구가 담겨있습니다. 삶의 기대와 환상에 대해 다소 냉소적인 태도로 바라봐야 할 필요성의 제시가 나에겐 충분한 것 같습니다.
솔직한 말로, 나는 해즐릿의 냉소적인 태도를 조금 징그럽게 느꼈습니다. 뭐든 다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 한 냉소적 태도 아래에서의 관조로 쓰여진 서술은 사실 내가 철이 덜 들었을때나 하던 생각들과 비슷한 결입니다. 나는 그 과거의 관점들이 부끄럽다고 생각했고, 내 태도가 글에 투시되는 듯 한 느낌에서 불쾌감이 일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사람인 이상 그런 징그러운 부분은 언제나 내 의식속에 숨겨져 있을 겁니다. 이건 자아의 일면을 마주하는 불쾌함입니다. 사람은 누구든 이 글이 불러일으키는 묘한 혐오를 직면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건 내가 바라보지 못하는 의식 속 모순된 많은 불쾌한 생각들과 공명하는 파동의 질감입니다.
사실 순응의 세상에서 씩씩하게 모순을 견지하고 내 태도에 당당하기 위해서는 이런 시론이 많이 필요합니다.
이 글이 냉소와 혐오가 전염될 매개체로 읽어지지 않기를 개인적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오늘은 책이 스스로가 읽어져야 하는 방식을 제시하지 못하는 점에 대해 조금 더 서운합니다.
내겐 현실이 너무 불편해서, 그걸 더 불편하게 만드는 것들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내 불편이 완전히 이해되는 일은 있을 수 없는게 서운한 것 같아요 개인 영역의 불편은 각자의 주장밖에 없는 세상이라 더 그런 것 같고
사지않고 빌려봐야겟군
이 책은 갑자기 왜 떴나 싶긴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