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그의 소설 대작 <저항의 미학>이 영역본도 미처 완성되지 않았는데도 대산세계문학 총서에서 나왔고,
그의 희곡들도 여럿 이곳저곳에서 번역본 나온 걸 볼 때, 페터 바이스는 국내에서 메이쟈한 작가임이 증명되니까 <저항의 미학> 읽자.
사실 페터 바이스의 최고 걸작은 그의 미쳐버린 희곡 <마라/사드>고, 이 희곡은 국내에서도 꾸준히 공연되고, 절판되었지만 번역도 2차례 소개된 걸 볼 때
언젠가 다시 번역될 확률도 높으므로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마라/사드> 새 번역본 나오기를 존버합시다.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과 아르토의 잔혹극 이론을 동시에 성공적으로 적용시킨 거의 유일한 사례인 돌아버린 실험을 한 희곡이고,
사드 후작이 말년에 샤랑통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환자들을 데리고 공연을 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사드가 샤량통 환자들과 함께 프랑스 혁명과 마라의 암살을 다룬 희곡을 사람들 앞에 공연하면서 사드 본인이 마라와 혁명에 대한 논쟁을 한다는 극중극인데 정말 완벽한 희곡임.
<마라:
당신의 책을 읽어봤어, 무슈 사드, 당신은 자신의 불멸의 작품 속에서 자연의 살아있는 힘은 파괴이며 삶을 재는 유일한 도구는 죽음이라고 했더군.
사드:
맞아, 마라. 하지만 인간은 죽음에게 잘못된 의미를 부여했지.
동물, 인간 혹은 식물이 죽어도, 아무 것도 자랄 수 없고, 만들 수 없는 비료더미로 변해. 죽음은 과정의 일부야.
모든 죽음, 가장 잔혹한 죽음조차 자연의 완전한 무심 속에 사라지지. 우리가 모든 인간을 죽여도 자연은 무심하게 지켜볼 거야.
나는 자연을 증오해. 그 무심한 관중을, 부술 수도 없는데 모든 것을 짊어질 것 같은 빙하 같은 얼굴을. 우리를 더 위대하고도 위대한 행동을 하도록 몰아넣어.
(중략)
다미앵의 처형을 생각해보자고, 루이 15세 암살이 실패한 이후를. 다미앵이 어떻게 죽었는지 기억해봐. 그가 당했던 고문과 비교하면 단두대가 얼마나 신사적인지.
(중략)
그건 축제였어, 오늘날 그 어떤 축제와 비교할 수 없었지.
우리의 심문조차 더 이상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지 않아. 우리가 이제 막 시작했지만, 우리의 혁명 후 살육엔 열정이 없어. 이제 그건 모두 형식적이야. 우리는 어떤 감정도 없이 사형을 선고해, 개인적인 죽음은 없어. 그저 값싼 익명의 죽음들이야. 수학적 기반 아래 모든 국가에 조금씩 벌을 줄 뿐이지, 때가 되어 모든 생명이 사라질 때까지.
마라:
후작 시민동지, 당신은 지난 9월 우리와 함께 싸웠지, 우리가 음모를 꾸미던 귀족들을 감옥 밖으로 끄집어낼 때 동참했어.
하지만 당신은 아직도 높으신 분처럼 말하는 군, 당신이 말하는 자연의 무관심함은 그저 당신의 결여된 열정에 불과해.
사드:
열정이라, 이제는 마라, 자네야말로 귀족처럼 이야기하는 군. 열정이란 특권층의 재산이야.
동정을 느끼는 자가 구걸하는 자에게 몸을 숙일 때, 그는 모멸감으로 두근거리지,
자신의 부를 지키기 위하여 감상적인 척 하지만 그가 거지에게 적선하는 건 발길질뿐이야.
제발, 마라, 작은 감정에 대해서 떠들진 말자고. 자네가 느끼는 게 작았던 적은 없어.
자네나 나나 가장 극단적인 행위들만 상관있었지.
마라:
설령 내가 극단적이라도, 난 당신과는 방향이 달라. 자연의 침묵에 맞서서 난 행동해.
거대한 무관심 속에서 의미를 찾지. 나는 무관심하게 지켜보지 않아, 나는 참견해. 이것과 저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해.
나는 그들을 바꾸고 개선시키기 위해 일해.
중요한 것은 자신의 머리로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자신을 뒤집어놓아서 새로운 눈으로 세상 전체를 보는 거야.>
- <마라/사드>, 페터 바이스
집구석에 있는 유일한 학위논문이 페터 바이스 연구인데 궁금해지누만
영역 나온게 2005년이라는데 뭔 소리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