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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가 우리에게 친숙하고 또 이해하기 쉬운 이유는 공리주의가 그만큼 우리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생각과 들어맞기 때문이다. "구성원 전체의 행복을 생각해서 행동하라."는 주장은 그 당시에는 생각하기 힘든 평등 사상을 기반으로 한다. 밀의 공리주의는 계급 초월적이고 또 인간 초월적이다. 밀의 주장은 사람 개개인이 악한 사람이건 선한 사람이건 간에 신경쓰지 않는다.  따라서 밀의 주장은 선험적이다.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이성만으로 생각할 수 있는 주장이다.
인간 삶의 목적은 '고통이 없는 상태' 즉 쾌락이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아타락시아' 와 얼추 비슷하다. 이러한 쾌락주의 성향 때문에 '돼지'들의 윤리학이라고 지탄받았다. 하지만 오히려 이 주장은 돼지들의 쾌락과 인간들의 쾌락을 동일시하는 사람들에게나 받아들여질만하다. 밀은 인간만의 고고한 덕과 품위, 품성을 당연하게도 인정한다. 쾌락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밀의 공리주의와 칸트의 의무주의는 도덕법칙 철학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밀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도덕법칙 제1 원리로 봤으며 칸트는 정언명령 ' 너의 행동이 오직 그리고 그래야만 하기 때문에 행위하게 하라'를 제1 원리로 봤다. 하지만 이 두 주장은 서로 다른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칸트는 행위에 있어서 행위자의 '행복'을 관심 대상으로 두지 않는다. 따라서 정말 도덕적이고자 하는 사람이 아닌 사람들, 대중에게는 맞지 않는 법칙이다. 자신의 행복을 버리고서 오직 옳기 때문에 행동할 대중이 어디있겠는가? 반면에 밀의 제1 원리는 행위자의 행복을 관심에 둔다. 따라서 칸트가 직면 했던 문제를 해결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공리주의는 많은 문제에 봉착한다. 어떤 행위가 더 행복을 만들어내는지 계산하기 어렵다는 것, 즉 제1 원리를 어떻게 생활에 정확하게 '적용' 시킬 것인지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나는 밀의 저서, 자유론과 공리주의를 읽었다. 이런 책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그는 상당히 진보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밀의 공리주의가 부담스럽다면 밀의 자유론을 읽어보시라. 아무래도 읽기 편하고 또 우리 현대인의 생각과 부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