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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음 읽어보진 않았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철학자인 칼 포퍼의 에세이, 인터뷰, 강연문의 모음집이다(하다못해 비트겐슈타인 부지깽이 논란의 상대방이라는 사실은 알 것이다).
칼 포퍼가 이 짧은 모음집에서 다루는 분야는 천체, 진화론에서 양자역학까지 주요 과학 분야에 대한 논의부터,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자유의 문제 등 사회 정치적 분야를 거쳐 언어, 칸트, 마르크스주의 역사관. 현대의 냉소주의적 사조까지 다양하지만 칼 포퍼는 철학자특 자기만 아는 용어 만들어 쓰지도 않고, 최대한 일상적인 언어로 풀어 설명하기에 읽기 부담없다.
각 챕터는 강연의 장소나 주제에 맞게끔 소재를 달리하지만 그의 사상 전체를 관통하는 생각을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지만 능동적인 존재로, 오직 가설을 통해 추측하고, 우리가 맞닥뜨리는 것들을 시행착오 방법을 적용해 끊임없이 시험함으로써 배운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건 타인과의 의견 주고받으면서 비판적 사고를 거듭하는 것이고, 자기 자신의 의견에 대한 비판과 타인의 의견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발전시킴으로써 조금 더 나은 결론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론이 만족스러울지라도 그것이 절대 옳은 것이라 생각하지 말자고 경계해야 한다.
여기에서 두 가지 키워드가 파생되는데 하나는 "가능성"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게으름"에 대한 것이다.
특히 감명 깊은 챕터는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을 비판한 챕터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과거의 향수처럼 내 마음을 후비적거리며 몰아쳤다. 그건 내 과거의 경험과도 밀접하고, 현재의 상황에도 너무나 맞물려있으며, 미래에 어떻게 할 지 곰곰이 생각해볼 가치가 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내가 군대서 이승복 웅변대회에서 상 받은 유명한 반공열사라서가 아니다(오해할까봐 덧붙이자면 진짜로 상 받은 적 없다). 나는 군대에서 우정도 겪어봤지만 보다 근본적으론 억압과 압제늬 폭력성을 더 절실하게 느꼈다. 그 억압과 압제의 근원은 표면적으론 사회주의의 존재 때문이나, 더 정확히는 사회를 닫고 인간을 조종하고 강압하려는 악의 무리들의 존재 때문이다.
칼 포퍼는 16살 무렵에 사회주의에 심취했다가 동료들이 총 맞아 죽은 이후 번쩍 정신을 차린다. 그는 사회주의를 이렇게 요약한다. “사회주의를 위해 투쟁하지 않는 인간은 모두 오직 이기심으로만 움직이는 이들이다. 이를 인정하지 않는 자는 사기꾼이며 위선자다. 중죄인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사회적 강압과 압제가 사회주의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다. 사회주의 자리에 다른 어떤 것을 넣어도 언제든지 통용될 수 있는 만고불변의 인간의 습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곧 지금 시대에도 통용될 수 있다는 말이다. 왜 이런 강요가 만민이 평등한 시대임에도 왜 아직도 먹힐 수 있는 걸까?
버드런트 러셀은 기술에 비해 인간의 도덕성의 발전 속도가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칼 포퍼는 러셀의 말을 뒤집어 인간은 도덕적이지만 너무 어리석다고 지적하는데, 그 이유는 인간이 충분히 비판적이지 못하며 그로 인해 지적 성숙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분석한다.
칼 포퍼의 분석에 맞춰보면, 지적 성숙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비판적이지 못하기 때문인데, 비판적이지 못한 것은 바로 지적인 "게으름" 때문이다.
인터넷은 정보의 홍수다. 쉽게 언론 기사, 특정한 세대, 성향, 성별의 이용자들이 향유하는 커뮤니티와 유튜브가 있다. 우리는 전보다 타인과 쉽사리 상호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늘어난 상호작용의 결과가 반드시 인간에게 득이라고만 볼 수 없을 거 같다.
자신이 수용하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사실상 누군가의 의견에 놀아난다. 우리는 자유를 지녔으면서도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지적인 책임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악의 기원은 근본적으로는 인간을 너무나도 게을러지게 하는, 정보의 홍수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으려는 지적 게으름 때문에 자유가 멍에를 짊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사람들은 그저 그럴듯한 자신과 비슷한 부류들이 믿는대로, 또는 느낌이 끌리는대로 따라버린다. 세대, 성별, 지역에 따라 자신의 직관을 강화시킬 커뮤니티, 언론, 유튜브 등에서 편향된 의견을 강화하거나 혹은 선동당한다. 비판의 시도 자체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작금은 그 비판적 성찰이 사라진 자리에 폭력만이 존재한다. 남의 사상을 확인함으로써 편을 가르고 적대자에겐 날을 세우고 핏대를 세운다. 그리고 동조하지 않으면 서로를 비하한다. 상대가 지지하는 정치 지도자를 헐뜯고 희화화시킨다. 반복되는 이 상황이 짜증남에 더해 이제는 분개할 기력조차 없다.
그 짜증에서 나의 신경 예민증세는 한 발짝 더 나간다. 최근 정치적 이슈 때문에 헌법에 대해 공부한답시고 헌법을 읽고, 헌법 관련 서적을 읽는 이들을, 몸에 자라던 털을 밀었을 때 스멀스멀 올라오는 까끌거리는 짧은 털처럼 은연중에 고깝게 여겼다. 인생 최고의 보신책은 아무 것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고 나는 그 보신책에 어긋나는 이들 모두를 적으로 간주했던 방어적 기제였던걸까?
칼 포퍼의 말을 되새겨보니 나만 사회적 문제에 너무나 둔감한 것이 아니었을까 비수가 날아든다. 싸늘하다. 내가 고깝게 여긴 그들은 자기 자신만의 비판 정신을 날카롭게 벼리기 위해 정신의 담금질을 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위대한 비판 정신의 소유자들이다. 자신만의 판단을 위해 제반 지식을 쌓는 자들이었던 것이다.
난 그저 헌법에 뇌를 한 번 담궜다 빼봤다는 명목으로, 고작 한 번 본 것으로 헌법을 알 수 있겠냐는 자존망대 비대한 자의식이 내면에 꿈틀거리고 있었던 걸까? 물론 나 역시 현 상황에 대한 헌법적 적용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 게으름 속 비아냥거리는 심연의 괴물을 인식한 순간, 잘못 잉태된 게으른 프랑켄슈타인을 다시 꺼뜨리고 싶었지만 그는 성불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돈다.
그것은 바로 온몸으로 고통을 느끼는 나였기 때문이다. 나는 칼 포퍼의 초식을 외움으로써 스스로를 달래본다.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해져야 한다.”
“모르면서 안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아무 것도 완벽히 알 수 없는 존재다. 아무 것도 확실하게 알 수 없다는 인간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옳고 좋은 것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켜 나감으로써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다. 그 “가능성”을 남에게 맡겨두고, 자신의 가려운 곳을 긁어 줄 철인을 바라며, 비판 정신을 “게으르게” 녹슬도록 바라만 보지 않는다면 말이다. 우리는 동료이자 삶을 같이하는 가족이다.
인간을 멍청하게 만드는 커뮤니티의 늪에, 진영논리의 늪에, 편향을 더해줄 언론들의 의견에, 모든 게으름에 몸을 맡겨 누군가의 의견을 내 의견인 것마냥 스며들게 하지 말자.
힘들고 고된 길이라 할지라도 비판적으로 관찰하고 시험하고 결론을 내리는 과정을 무수하게 반복하자.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을 무조건 나쁜놈 죽일새끼라고 보지 말고, 남의 살을 칼 포떠 죄를 범하지 말고, 칼 포퍼의 말처럼 진리를 향한 논의의 스파링 상대로 삼아 모두 같이 발전해 나가자.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미래는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열려 있다. 우리는 과거에서 배우고 현재에 사고하고 행함으로써 우리의 자유에 대한 책임을 감수해야 한다. 그게 인간이다. 그리고 모든 근간은 비판적 정신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점진적으로 무수한 시행착오와 실패를 겪은 뒤라야 조금 더 나은 결론을 향해간다.
근데 이거 진짜 이뤄질 수 있는 거 맞아?? 또 책상머리 결론 아니야?? 마음 속 회의감의 장작에 불씨가 타오르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칼 포퍼가 말하는 “가능성”을 믿어보고 싶다.
나부터 실천해보련다. 즐겨가는 사이트에서 누군가가 작성한 글을 여과없이 받아들이지말고 그 글의 진정성과 논거를 비판적으로 살피자. 하다 못해 독갤에서 극찬받은 책을 읽고 왜 좋았는지 왜 구렸는지라도 생각해보자. 물론 그저 글의 목적대로 동조하고 끝내는 것에 비하여 무척 귀찮고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작은 씨앗이 쌓이고 쌓이며 발아한다면 분명 어제보다 나아질 거다.
우리가 해야할 유일한 것은 모두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의 끈을 놓치 않도록 "게을러지지 않는" 것 뿐이다
잘 읽었음 - dc App
좋은 글 감사유
재밌게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즐겨가는 사이트에서 누군가가 작성한 글을 여과없이 받아들이지말고 그 글의 진정성과 논거를 비판적으로 살피자.
님 뭘 하겠단 거임. 독갤 부수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헉
읽어봐야겠다
앞챕터들에 중복되는 내용이 좀 있긴 한데 좋아요
책이존나어렵던데 열린사회와어쩌고 ㅋㅋㅋㅋ
개추. 이거 보고 바로 질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