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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손자병법 13편


손자孫子(기원전545년경-기원전470년경)는 이름이 무武이고 제나라 사람으로

오왕吳旺 합려闔閭의 장수將帥가 된다. 병법에 정통하여, 손자병법 13편을 남겼다.




2. 오吳나라가 강력한 군대를 갖다


궁중의 미녀들을 시험삼아 훈련시킬 때, 규정을 명백히 하고 구령했지만 웃기만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책임을 물어 오왕의 애첩이었던 좌우 대장을 참수하려 할 때, 오왕이 중단하라는 명령

을 전달했지만, "장군이 군중에 있을 때에는 군주의 명령에 따르지 않을 수 있다"며 결국 참수했다.


이후 오왕은 서쪽으로 강대한 초나라를 격파하여 도성 영郢으로 진입했고, 북상하여 齊나라와

진晉나라에 위세를 떨치며 패주覇主가 되는데, 손무의 공이 컸다.




3. 손빈과 방연과의 악연


손무 사후 100여년 뒤 그 후손인 손빈孫臏은 방연龐涓과 함께 병법을 배웠다. 방연은 위魏나라

혜왕惠王의 장군이 된 후, 재능을 가진 손빈을 제거하기 위해서 위나라로 불러들인 후, 죄명을

날조하여 두 다리를 자르고 얼굴에 글자를 새기는 형벌을 가한다.


그 뒤 제나라 사자가 위나라로 왔다가 귀국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손빈은 은밀히 탈출하였고,

제나라 대장 전기田忌가 제위왕齊威王에게 추천하여, 그는 군사軍師로 임명되었다.




4. 계릉전투 桂陵戰鬪 : 조나라 구원


위魏나라의 공격을 받은 조나라가 구조요청을 하자, 전기가 군사를 이끌고 곧장 포위된 조나라로

향하려 했다. 그러나 손빈은 적이 항거하는 주력을 피하고 허약한 곳을 치면 위급함이 저절로

해소될 것이라며, 정예부대가 빠져나간 위나라의 도성인 대량大粱을 급습하는 계책을 제시했다.


田忌가 이를 받아들이자 위나라 군대는 후퇴했고, 계릉桂陵에서 위나라 군대를 대파한다.




5. 마릉전투 馬陵戰鬪 : 한韓나라 구원


10여년뒤, 위魏나라ㆍ조나라 연합군이 한韓나라를 공격했고, 한나라가 제나라에 위급함을 알렸다.

제나라가 한나라를 구원하는 방책으로 곧장 대량으로 돌진하자, 위나라 장군 방연은 한나라에서

철군하여 위나라에 진입한 제나라 군사를 쫒는다.


손빈의 계책으로 제나라 군은 후퇴하면서 아궁이의 갯수를 줄였고, 이를 본 방연은 방심하여 무리한

추격을 한다.


손빈은 길이 비좁고 양쪽의 지세가 험준한 마릉馬陵에 이르러, 쇠뇌를 쥔 제나라 군사 1만명을 매복

시키고서는, 밤에 누군가가 불을 붙이는 것이 보이면 일제히 쏘도록 하라라고 명했다.


그낭 밤 방연은 이 곳을 지나면서 껍질이 벗겨진 큰 나무 아래에 이르렀고, 뭐라고 쓰여 있는 지 보려

고 사람을 시켜 불을 비추게 했다. 방연이 나무의 글자도 다 읽기도 전에 제나라 군사들의 쇠뇌에

위나라의 군사는 대형을 잃었고 결국 방연은 목을 메게 된다.



껍질이 벗겨진 나무의 하얗게 드러난 부분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방연은 이 나무 아래에서 죽을 것이다"




송도진의 사기열전 원전번역 읽기 (매주 화ㆍ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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