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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더스토리 출판사 걸로 읽었어
열심히 읽고 써 보겠다 노력했는데 난잡한 데다 진짜 보잘것없고 심지어는 내 궁예짓에 뻘글 의견이기에 틀린 이야기만 가득할 수도 있음
말투 음슴체인 거 고려해줘
정말로 미리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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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데미안은 지금껏 읽어온 책 중에 가장 몰입해서, 또 가장 나를 투영해서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이라 생각함
잠시 딴 얘기 하자면 요즘 실존주의 철학 공부하고 있었는데 일각에서는 데미안을 무신론(사실 이 부분은 나도 잘 모르겠음 애초에 책 내에도 아브락사스 이야기가 나와서) 실존주의로 보는 시선도 있다길래 더 그렇게 느낀 건지 조금 익숙한 어휘도 보여 반가웠음
따라서 아래 실존주의 이야기도 좀 할 것 같은데 만일 틀리거나 다른 의견 있다면 알려주면 고맙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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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데미안 소설 서사 자체는 굉장히 심플한데 주인공(싱클레어) 심리 묘사나 인물들 간의 대화나 관계 묘사가 정말 좋았던 작품 같음
계속해서 읽으면서 새가, 알이, 아브락사스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아갈 뿐 아니라 그 묘사 하나하나와 발맞추어 걸으며 책의 끝부분으로 향해 간다는 느낌이 들더라
그래서 그런지 소설의 단순한, 유부녀를 좋아하는 찐따 싱클레어는 지 친구 데미안과 진한 딥키스를 나누었다 같은 줄거리 요약을 보기보다는 직접 한 장 한 장 읽으며 그 감정과 복합적이고 새로운 사고를 하려는 노력을 느낀 몇 시간이 정말 나에게 의미있었던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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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줄거리 이야기를 꺼내보자면
우선 ‘어느 날 우리 집 한복판에서 악의 세계가 자라나기 시작하였다.’
의 구절이 나중에 가 싱클레어가 두 번째 데미안인 피스토리우스와의 대화를 통해, 또한 그 뒤로 찾아오는 세 번째 데미안 에바 부인과의 교류를 통해 모순적인(부조리함) 아브락사스의 존재를 인정하고 세상을 보는 ‘관점’을 달리한다는 것과 상반된 양상을 보인다는 데에서 흥미로웠던 것 같음
또한 마지막 데미안의 등장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싱클레어는 결국 자아를 실현, 알을 깨고 날아오름으로 피스토리우스가 언급한, 인류에 당도하는 것에 나아가는 첫 걸음에 성공했다고 생각함
그 다음에는 표식에 대한 언급이 있었음
아벨과 카인, 그 중 인류 탄생 이래 첫 살인자이자 공포의 대상, 더불어 죄인으로 여겨진 카인의 이마에 낙인처럼 찍힌 그 표식은 공동체와 결속을 추구하는 다수의 인간들이 이방인을, 특히 강자를 배척하고 깎아내리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이야기가 언급되더라
그러나 스토리 후반 이 낙인은 곧 개개인의 사명감과 철학, 즉 자아를 의미했다 생각함
새로운 사고를 하고, 설령 그게 마지막 파트의 젊고 앳된 병사들처럼 공동체에 의해 떠밀려 맡은 역할과 책임일지라도 갖고 있었던 그 표식은 자신의 역할과 운명에 대해 인지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봄
그러나 여기서 운명은 군인들의 경우에는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각오나 심산, 혹은 부조리에 대한 경미한 인지 등에 대한 것이겠으나 싱클레어와 데미안에게는 그들의 운명, 즉 부조리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실재하는 것과 그것으로 비롯될 고통과 포기해야 할 수많은 것들(책에 언급되었음), 그러한 운명, 또 다른 부조리 자체를 의미함
이에 대해 언급하듯 헤세는 책에서 ‘ (그들과 우리의 표식은 달랐지만) ’ 이라 서술했더라고
마지막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 파트는, 앞에서 강조한 ‘부조리에 대한 인식’, 표식을 지닌 이는 공동체를 등지게 됨을 의미한다는 말에 반론하듯이 우리는 결국 공동체에 속하여 살아가야만 한다는 말을 의미한다고 생각함
그게 곧 세계이자 또 다른 알일 테니까
개인의 자아 찾기와 외부 세계는 이어져 있는 것과 같다고 책 뒤 편에, 옮기신 역자분께서도 첨가해두셨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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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써 놓고 보니 진짜 개소리기는 하지만 여기에서, 특히 데미안의 집에 싱클이 거의 눌러앉아 사는 동안, 10살 시절 보았던 생동감으로 가득 찬 시체 같던, 그 자체로 부조리한 데미안의 모습에 대한 묘사에서 실존주의 생각이 나더라
스스로의 내면(심리)을 들여다보고 부조리를 띄는 (곧 이 인정과 그럼에도 비행을 할 용기와 의지는 태어남을 상징함) 외양 묘사가 꽤 길게 나오던데, 이게 내가 마치 어제 실존주의라는 말을 배운 것마냥 계속 집착하고 뇌절치게 만드는 파트가 되더라
더불어 실존주의와 자살을 다룬 글을 병행해 보는 중임
사실 카뮈, 그리고 그 저자의 글 외에는 실존주의 이야기를 많이 본 적 없어 굉장히 내 사고가 편협하고 닫혀있음을 염두에 두고 있으나, 이 좁은 사고를 통해 내가 본 ‘데미안’은 사회와 세계, 개인의 부조리를 인지하고(알을 깨다) 날개를 펴 날아가는 것이 진정한 자아 실현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게 됨
산산히 부서저야 한다고 싱클레어가 말한 이 세계, 이 알은 우리의 틀에 박힌 사고나 공동체에 대한 집착, 운명에 대한 회피 혹은 부조리에 대한 무시 등으로 볼 수 있겠음
그리고 에바 부인의 언급에 따르자면, 또한 내가 읽은 글에 따르자면 우리의 부조리는 결국 우리의 마음, 심리에서 비롯되는 것임
따라서 우리의 신념, 확고한 믿음 - 데미안 내에서는 그것이 운명에 대한 순응이자 부조리에 대한 대면이었음 - 을 통해 우리는 부조리의 틀을 깨고 자유롭게 날아오를 수 있음
알은 부조리 그 자체의 의미를 지니기도 하겠지
알을 산산히 부수고 다시 날아오름은 또 다른 알, 세계에, 공동체에 속함을 의미하겠지만
그 새로운 변화만으로도 우리는 인류에 가까워진다는 것이 내가 파악한 책의 주제라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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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내가 생각하는 데미안이라는 존재는 애초에 책 자체가 사건시 시점의 싱클레어 관점에서 관찰한 내용이기에 실제 인물 혹은 신적인 능력의 존재로 보기보다는 알 속의 꿈틀거림 같은 것이라 생각함
데미안 또한 한 마리의 새이자 공동체의 일원이니까
데미안 또한 싱클레어에게 크나우어 같은, 그러나 보다 길었던 한번 스쳐지나간 새로운 자극이 될 수도 있었겠지
외려 그 반대였을수도 있겠다 봄
즉 데미안은 책에서 꾸준히 말하고자 하는 자아의 실현과 계몽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부조리임
새로운 , 그리고 금기시되던 부조리에 관심을 갖고 직감하던 싱클레어 또한 처음부터 표식이 있었다 묘사됨을 통해 위와 같이 생각하게 되었음
결국 싱클레어 또한, 데미안과 마찬가지로 우리 심리 속에 깊이 들어가 휘적거리고 있는 누구보다도 부조리에 가까운 아브락사스이자 데미안이고 동시에 공동체에 속하길 바라는 나약한 인간인 모순적인 부조리 그 자체와 같다 봄
그러나 싱클레어는 그 사실 자체를 인지하였기에, 그 운명을 받아들이길 택하였기에 비로소 알을 깨고 이 세상에 실존하게 되었다고 생각함
책에서 언급되는 자아 찾기란, 억지로 뭉뚱그려 말하자면 이러한 부조리 속에서 나의 부조리, 나의 존재를 인정하고 나로써 실재한다는, 단순하고도 어려운 일을 의미하는 것 같음
실존은 본질을 앞선다고 하듯 우리의 자아는 언제나 우리의 실재 뒤에 뒤처져 있다
그러나 그 본질 또한 받아들이고 투쟁하며 고통 속에서 실재를 이어간다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함
그렇게 되면 우리의 본질 자체가 실재하게 되는 거, 부조리를 지니고 그만으로도 우리만의 새로운 세계가 되는 것 아닐까
그게 책에서 이야기하는 이상적인 싱클레어와 자아이자 데미안, 아브락사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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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사실 초딩3-4학년인가 그때쯤 읽고, 아직도 학생인 어제 두 번째로 읽은 거 갖고 쓴 거라 몇 번 더 읽고 나면 내 생각도 많이 바뀔지 모르겠어
아무튼 글도 이상하고, 굉장히 두서없다는 것 알지만 여기까지 읽어준 독갤러 있다면 고마워
그 글 만약 궁금하면 링크 달아둘게
사실 번역도 거의 다, 직접 해 보는 중인데 올려도 될까 모르겠네
어찌되었든 뻘글이랑은 별개로 데미안 한 번 읽어보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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