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삭당했길래 작품 외적인 부분은 빼고 올려봄..)
어쨌든 아침은 왔고, 계집을 데불었다. 그러나 이 아침에 내 계집은 왠지 쭈볏쭈볏해하며, 얼른 다가오려고를 안해, 내가 손을 펴 영접하자, 그제서야 기쁜 얼굴로 다가와, 다소곳이 앉는다. 그리고, "요것 좀 들어배겨라우"라고 말하며, 덮었던 소반보를 거둬낸다.
그러자 아직도 뜨뜻이 김을 풍겨내는, 고봉 담은 한 그릇의 흰 밥과, 고추장 바른 더덕구이, 약간의 무장아찌가 호화판이다. 내가 그만한 상을 받기에 족할 만큼, 그녀에게 한 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어쨌든 그것은, 한 되의 나드 기름만큼은 정을 고봉 담은 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볠로 음식 솜씨가 없어라우. 헌디 자민니사도(자면서도) 걱정이 돼라우.
그란디 시님 봉개라우, 시님이 끕째기 어린아 얼굴맹여라우, 흰빛이 돌고라우, 불콰하니 맑음선, 끼끗해 비는디라우, 고 쉬염이나 좀 밀어내먼, 뵈기가 영 달르겄어라우."
계집은, 내가 먹는 것을 부지런히 거들며, 그렇게도 말했다. (…) "시님만 안 싫다먼 말이라우, 내가 좀 쉬염이랑 손톱이랑, 발톱이랑 다 깎아줬이먼 싶으요이. 에려서부텀 배왔는디라우, 모주가 우리 머리를 다 깎아줄 수가 없었응개요. 서로 돌아감선 깎아주었제라우."
"아, 그것 참 좋은 생각이겠군. 그렇잖아도, 오늘쯤은 머리도 좀 깎았으면 싶었더라구."
"내 그라먼, 얼렁 가서 모도 챙기각고 올란개, 고 동안에 찬찬히 고 밥 다 들겨라우이."
계집은 말하고 쭈루룩 달려나갔다. 돌아온 그녀의 손에는, 삭도며 비누 같은 것이 들려 있었다. (…)
그녀는, 그런 일에 거의 믿기어지지 않을 만큼 익숙해 있어서, 머리며, 수염이며, 손톱, 발톱을 깎아나가는 사이 나는 한 마리의 굼벵이가 나비로 되어가는 과정이, 이만큼은 시원하리라고 했다. (…)
"그라먼 임자, 내가 요것조것들 갖다 놓고, 나도 얼굴도 좀 씩고 분가루도 좀 발르고 올 팅게라우, 고렇게만 아씨요이. 시님이 고렇게나 끼끗해진개로요, 끕째기 내 얼굴이 추접은 생객이 드는 게 말여라우. 그라고 봉개요, 시님 말이라우, 맑은 빛이 돔선 헌출하게 잘생깄어라우. 볼 때마둥 놀래져라우이."
계집은 다시 쪼루룩 달려나갔다.
내게는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괜스레 싱글벙글 웃을 일도 없었지만, 한숨 쉬며 짜증낼 일도 없었다. 내게는 부족함이 없었다. 넘칠 것이 그렇다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부담없는, 생각할 것도 안할 것도 없는, 노래할 일도 못할 일도 없는, 그런 마음으로, 그저 앉아 있거나, 걷거나, 눕거나, 자거나, 아무렇게나 나를 맡겨도 좋았다. 늪을 내어다보았지만, 그것이 그렇다고 뭐 내게 고역으로서만, 반드시 형장으로서만 보이는 건 아니었다. (…)
그리하여 나타난 계집은, 허긴 날 놀라게 했다. 그녀는, 내 앞에서 수줍은 듯이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지만, 화장한 얼굴에, 성장(盛裝)을 하고 온 것이었다. 어깨를 거의 드러내고, 허리는 짤룩히 해서, 둔부로부터 한 무더기의 흰구름을 흩뜨려 뿌리고 있는데, 저 운봉의 꼭대기를 볼작시면, 거기 보름달이 막 솟아오르고 있다. 목은 탁월했고, 어깨는 우아했다.
"워처키 생각허신데라우?"
그녀는 묻고 있었다. 순전히 하나의 꺼풀에 의해서, 그러나 나는, 그녀를 다시 고려치 않을 수가 없었다. 내 기억에, 전에 그 어깨, 그 목에 얹혔던 얼굴은, 죄를 너무 몰라 거의 백치다운 것이었었는데, 그같은 목에 얹힌 오늘의 얼굴은 그런데 대체 어떻게 되어서, 죄를 너무 많이 알아, 차라리 청초해버린 암뱀다운 윤기를 띠고 있는 것인가.
"워처키 생각허신데라우? 유행이 지내서 모냥이 없제라우?"
계집은 다시 물으며, 거의 겁먹은 눈을 했다.
"당신은 건강히 아름답소."
"오매! 참말이라우? 우리덜 모도라우, 요런 것 한 벌씩은 다 각고 있네라우이. 서방도 없음선이라우, 시집갈 때 입을라고 그런당만이라우. 헌디 말짱 허는 말로는, 요론 모냥은 인제 귀식(구식)이 됐단구만이라우. 그래서라우, 얼렁 입어 떨어티릴라고 허는디도, 입을 디가 있어야제라우."
그런데 말을 하다 말고 그녀는, 왠지 모든 것이 갑자기 막연해졌다는 눈을 하고, 멍하니 밖을 내어다보고 있다. (…) 그래 내가 달래느라고, 그녀의 손을 잡아 앉혀, 나와 마주보게 한 뒤, "아가 어떻니, 우리 말이지, 읍내 구경이라도 같이 가본다면 말이지?" 하고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슬픈 미소로, 고개를 쌀래쌀래 저어버렸다. 그리고 조금 눈물을 떠올리며, "시님이 날 곱당개, 나는 좋아라우" 하고, 거의 들리지도 않게 말한다. "내가 정든개, 고 정 땜시, 나도 사람 겉고라우 여자도 겉여라우."
우리의 이야기는 거기서 그쳤다. 마른번개가 어쩌다 우리들의 침묵 사이를 가르고 지나가곤 했다.
관념소설의 최고봉이니 뭐니 차치하고
한국문학사상 가장 매력적인 여캐 중 한 명이 나오는 소설임
응, 좋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