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엄밀히 따지자면 패자들의 이야기다. 문학 작품에 갈등이 등장하지 않고 결핍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는 없지 않는가. 그것엔 패배의 향기가 짙게 첨가되어 있다. 말하자면, 문학은 지름길을 걷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여곡절을 겪는 이야기다.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제국의 전성기가 아닌 쇠망사를 탐구하고, 찬란한 기념비에 써있는 것이 아니라 허름한 묘비문에 써있는 글귀를 읽는 행위다.
묘비문 읽기.
나는 교보문고 문학코너 같은 장소에 가면 마치 공동묘지를 걷는 기분이 든다. 책장 사이사이를 누비면서 내지의 쿰쿰한 냄새를 맡을 때, 묘비 사이를 드나들며 백골의 향을 맡는 체험을 한다. 그곳에 있는 책들이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건넨다. "여기 한 인생이 있다. 그는 이런 인생을 살았다. 지금은 비록 죽어 없어졌더라도, 우리가 그를 기억해야 할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럼으로써 그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어떻게 인생에서 의미를 찾았는지를 알 수 있다. 죽음은 분명 존재의 절대적인 한계를 규정하지만, 묘비문 읽기를 통해 그 한계를 온 몸으로 받아들여서, '절대적인 한계'를 나의 '상대적인 의미'로 초월하는 방법을 배운다.
문학의 효용도 정확히 같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삶을 살다보면 반드시 결핍과 한계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문학은 결핍 자체를 해소해주지는 않지만, 결핍을 정의하고, 받아들이고, 한계와 친구를 먹는 방법을 알려준다. 체호프가 "예술은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없다. 정확히 정리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 것처럼. 그래서 독자를 좀 더 유연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다. 세상에는 다양한 추락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으니까. 동시에 반대로 남들이 추락이라고 말해도 추락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게 해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미 추락한 사람들에게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게 해주니까. 그렇기에 추락해도 괜찮다는 진정한 의미의 위안을 얻게 된다. 그것이 문학의 권능이라고 생각한다.
맞음....여기 갤러들 다 찐따 패배자임...
뭣
추락은 왜 아름다울까요 - dc App
살아있는 작가들 어리둥절
문학은 엄밀히 따지자면 패자들의 이야기다. 인싸들은 글을 쓰지도 읽지도 않는다. 직접 연애를 하고 여행을 다니고 사람들을 만난다. 현생에 충실한다 - 첫 문장보고 이렇게 진행될 줄 알았음
개츄
공감좀되네 ㅋㅋ
캬 좋은 글이네용
자작글임? 진짜 좋네 - dc App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