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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에는 하리를 삼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보여주는데, 처음 읽었을 때에는 그저 그런데 책을 다 읽고 이 부분을 다시 읽어보면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음.
초반에는 황야의 이리 모습을 보고 '나도 황야의 이리와 같은 부류인 것 같은데?' 같은 동질감이 들었음. 그러나 삼인칭 관찰자 시점이 끝난 다음 하리의 독백을 읽고 나는 전혀 이런 부류가 아니구나 생각했음.
"나는 극장에서도 영화관에서도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신문도 거의 읽을 수 없고 신간 서적도 읽는 일이 드물다. 나는 사람들이 꽉 들어찬 전차나 호텔에서, 답답하고 소란스러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복잡한 카페에서, 우아하고 사치스러운 도시의 바나 버라이어티 쇼 극장에서, 세계박람회나 경마장에서, 교양에 굶주린 자들을 위한 강연장이나 거대한 경기장 같은 데서 대체 무슨 쾌락과 즐거움을 느끼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후의 전개에서 내가 가장 흥미로워 하는 부분은 단연코 '황야의 이리 논문'임.
"인간이란 철두철미 정신적인 것과 신적인 것에 접근을 시도하거나 성스러운 이상에 몰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철저히 본능적 생활과 감각적 욕구에 몰두하며 순간적 쾌락을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일 가능성도 지니고 있다. 한쪽 길은 성인으로, 정신의 순교자로, 신에 대한 자기 헌신으로 통하며, 다른 쪽 길은 방탕아로, 본능의 순교자로, 타락을 위한 자기희생으로 통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위에 인용한 대목은 내가 생각하기에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3문장으로 요약하면 딱 이거라고 느낌. 여기서 한 문장을 덧붙인다면 '이 양극단에 있는 두 인물의 우정과 상리공생 시너지' 정도?
다시 돌아와서 헤르미네를 만나고부터는 뭐 그럭저럭 어영부영 읽었는데,
헤르미네가 영원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하리의 꿈에 나왔던 괴테의 대사들이 떠올라서 다시 그 부분을 읽고 돌아왔는데, 바로 다음 페이지에 하리도 괴테의 영상이 머리에 떠올랐다 라고 나와서 내가 내용의 흐름을 잘 따라가고 있구나 생각했음.
이런 복선들이 지금 기억나는 게 2가지 더 있는데, 하나는 묘사가 이 책 모든 내용을 통틀더라도 압도적으로 돋보여서 멍하니 대여섯번을 다시 곱씹고 넘어간 부분이었는데,
"그녀의 겨드랑이가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거기서부터 한없이 부드럽고 조그마한 그림자가 옷에 가려진 유방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이 율동하는 작은 그림자 곡선이 하나의 미소와도 같이 그녀의 모든 매력, 아름다운 육체의 온갖 유희와 가능성을 포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중에 이게 헤르미네 칼빵살인할 때 회수가 되서 좀 소름돋았음. 헤르미네가 영원에 대한 얘기를 했을 때 진정한 인간들의 것이란 죽음밖에 없다고 했던 내용이 떠오르더라.
"일은 끝난 것이다. 그녀는 약간 옆쪽으로 기울어졌다. 겨드랑이로부터 유방 쪽으로 섬세하고 보드라운 그림자가 흐르는 것이 보였다. 내게 무엇인가를 연상시켜 주는 것 같았다.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고요히 누워 있었다."
헤르미네가 말하기를 진정한 인간들의 것이란 그것(죽음) 외에도 영원이 있다고 했었는데, 영원에는 현세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즉 물아일체의 상태(영원)와 죽음의 상태가 같은 결을 가지고 있음을 표현했다고 해석함.
두 번째 복선은 별거 아니긴 한데, 홀에서 마지막에 하리랑 헤르미네가 남아 있을 때 소름끼치고 차가운 웃음소리? 가 들렸다고 했는데 나중에 모차르트 웃음소리로 회수되는 부분이 있음.
아무튼 후반부로 가면 데미안보다도 훨씬 비현실적인 전개가 진행되면서 주제의식을 구체화하는데, 결국 뭐 황야의 이리의 주제의식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인 것 같음. 전반적으로 데미안이랑 결이 비슷한 책이라서 데미안 좋게 읽었으면 다음에 읽을 책으로 황야의 이리가 좋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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