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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도 슈사쿠의 말년에 쓴 생의 철학이 담긴 역작"

 이런 따위의 소개글을 보고 흥미가 돋아서 책을 읽었는데 글쎄 잘 모르겠던데. 네 사람이 지닌 에피소드도 기구치와 누마다의 경우를 제히면 이소베는 글쎄 갑자기 그런 정이 솟는다는게 잘 이해가 안갔고 미쓰코는 그냥 아직도 중2병의 감성을 벗지 못한 30대? 이해는 가지만 먹고 살길은 마련 해 놓고 그런 마음 편한 생각을 해야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왜 하필 장소가 인도 인지도 궁금했다. 그냥 일본 화장터로 하면 안되나? 안내인의 말이 인상 깊은데 갠지스강에는 사람들이 죽으러 온다며 "일본에는 절대로 없을겁니다. 절대로"라 말한다. 근데, 글쎄, 그게 어쨌다는 건지? 마치 인도의 갠지스강이 되게 성스럽고 신비한 장소인양 이야기 하며  나같은 젊은시각(속세적?)을 가진 젊은 산초부부였나 하여간 그 사람들을 별로 안좋게 묘사했다. 그런 취급에 작가가 약간 종교적으로 선민의식 따위를 가지고 있는게 아닌지 생각됐다. 


 범신론적 사상은 되게 좋은듯 했다. 작가의 종교관이 좀 나타나는 부분이 아니었나 싶은 오쓰의 장문의 양파론에서 나도 모르게 고갤 끄덕이고 있었다. 


 근데 결국 슈서쿠가 말하고 싶었던건 윤화를 한다는 얘기인가? 아니면 종교론인가? 각기 다른이유로 찾아온 네 사람은 같은 장소에서 목표를 이룬다. 그게 원래 의도했던 방식이던 아니던. 이소베가 어땠는지는 잘 기억이 안난다. 누마다는 자신을 지켜줬다고 생각하는 구관조에게 은혜를 갚고, 기구치는 고열을 견디고 갠지스강에서 죽는 사람들을 보며 무언가를 깨치곤 법요를 관두며 미쓰코는 오쓰를 찾는다. 


 아 지금에서야 생각하는데 다분히 작가 자신을 이야기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소베의 경우에서 윤회를 말하고 누마다의 경우에서 그 연장인 생명의 동등을 말한다(어차피 인간의 환생이 동식무기물이 되니) 미쓰코의 경우에서 힌두교인지 불교인지도 명확하지 않은 오쓰에게 예수를 중첩시키며(작가가 굳이 예수라는 언급까지 해가며) 기구치에게서는 삶의 투쟁의 현장에는 윤리가 없다라는 이야기를 하는게 아닌가. 이걸 다 조합하면 다분히 불교적인 범신론적인 종교가 되지 않나.


 그리고 종교에 대해서 생각 해 보면, 종교야 말로 정말 무에서 유가 나온게 아닌가. 그야말로 삼인성호의 표본이 아닌가. 갠지스강도 마찬가지다. 만약 작가가 배경을 인도 겐지스강이 아닌 서울 한강 또는 뭐 일본 동편의 이름없는 화장터로 했다면, 과연 역작이니 뭐니 하는 말이 나왔을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작가가 그런 겐지스강이 주는 신비주의적 이미지에 기댔다는 사실에 대한 비판이 아닌, 그런 신비주의적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인도는 불교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죠." 가이드가 한 말이다. 그 말처럼 그 이미지 때문에, 즉,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인도의 겐지스강과 여러 유적이 가치를 지닌다. 


 사실 삶과 죽음이 무엇인가 하면 "그야 살면 사는 것이고, 죽으면 죽는것이지."하는 명쾌하고 간결하게 끝날 질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깊게 파고 들어도 뭐가 나오느냐 하면, 결국 위와 같이 환원되기 일쑤인 그런 질문이다. 깊은 강도 대단한 깨달음이 아닌 불교와 범신론의 제창이지 않은가. 아무튼 그래서 내가 하고싶은 말이 뭐냐, 하면, 현물과 논리가 없는 가치들은 삼인성호의 산물이다 라는 것과, 삶과 죽음을 파 봐야, 작가 자신이 직면한 그 삶에 최적화된 답변만 튀어나올 뿐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썩 재밌다고 하기엔 거짓말이겠디. 화두를 주었다는 점에서는 고평가 할 수 있겠다. 아 더 할말이 많은데 능력이 안돼 지면에 못담네 휴 힘빠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