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색
미시마가 쓰는 남성성이 빛나는 인간의 육체와 젊음에 대한 찬미는 여러 글들에서 꾸준히 다루어 온 내용이지만, 금색의 경우 이를 한 발자국 더 넘어서 묘사하고자 했음을 느낀다. 주인공인 유이치의 완벽성과 그의 성적 지향성에서 미시마가 우러러마지않는 그리스식 동성애에 대한 작가 나름의 해석을 느낄 수 있단 점에서 미시마의 초중기 작품임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던 글. 후기의 미시마는 단순한 육체에 대한 선망을 넘어선 광기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순수를 조금 더 지향한다고 볼 수 있기에.
동성애 지향을 가진 청년 유이치는 이성에게 사랑받지 못한 소설가 슌스케의 컨설팅을 받아 여성을 불행하게 만드는 슌스케의 이상적인 작품이 되는 길을 걷고자 한다는 것이 주요 줄거리. 여기서 유이치는 파멸에 대한 선망, 상대의 고통으로부터 얻는 기쁨, 자신에 대한 찬미 등이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을 휘두르며 주위에 다양한 영향을 끼친다.
유이치의 삶은 동성애란 관능에 속해있으면서도 현실에서는 이를 시궁쥐 취급당하는 것을 인식하며 회피하며, 슌스케의 삶은 아름다움이란 이상을 추구하지만 그 이면에는 현실의 이성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데에 대한 복수심이 있다.
이러한 대비되는 속성은 작중에서 묘사하는 고대 그리스(혹은 미시마가 더 나았다 믿는 시절의 일본)와 전후의 (추악한) 일본 사회와도 이어질 수 있겠는데, 이 역시 작가가 생각하는 현대를 생각한다면 이상한 점은 아닐듯하다.
이러한 고뇌와 방황 끝에 결말로 남은 것이 유이치의 파멸이 아닌 현실에 서 그저 버티는 삶을 이어간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슌스케라는 더 오래된 아름다움과 생에 대한 고뇌가 죽더라도 여전히 생에 붙어 이 고뇌를 이어가게 된다는 질척질척한 이야기가 아닐까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미시마가 이 글에서 그려낸 동성애는 꽤나 색욕적인 부분이 강하단 점과 이 글의 분위기를 생각할 때 이것이 퀴어적인 문학으로 그려졌단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기에 이 책이 퀴어문학으로 분류되어 번역되었단 점은 약간 의문이 드는 부분. 소재적으로는 맞지만 이야기적으로는 조금 다른 벡터가 아닐까.
미시마의 글 치곤 읽는데 상당히 시간을 쓴 글이기도 한데, 전반부 부분이 상당히 느릿느릿한 느낌을 받아 읽는데 더 시간이 걸리지 않았나...하는 변명을 해본다. 읽으려 하면 더 읽었을듯.
미시마가 생각하는 아름다움과 현실에 관한 이야기들 중에 꽤나 극단적인 부분까지 나아간 글이기에 이 작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읽어볼만한 글.
슌킨 이야기
다니자키의 글을 '치인의 사랑'으로 처음 접했기에 다니자키의 강렬한 펨돔적인 묘사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단 것을 생각할 때, 슌킨 이야기는 그보단 더 접근하기 쉬운 글이라 할 수 있겠다.
이중의 액자식 구성을 통해 이루어지는 글은 현실을 매개체로만 이용하여 완벽에 가까운 관념을 어떻게 형상화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을텐데, 여기에 다니자키 특유의 남녀관계가 잘 혼합되었단 점에서 작가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좋은 책.
다니자키가 묘사하는 보지 않는 것을 통해 완벽한 관념을 형성하는 이야기는 미시마의 현실을 넘어선 순수와 상당부분 겹치는데, 미시마의 다니자키에 대한 언사를 생각한다면 이러한 부분이 영향을 주었음을 짐작할 수 있을듯. 다만 다니자키의 경우 이러한 것을 현실에 적용시키기 위한 부분까지 확장시키기보다 글 내에서 끝낸다는 점에선 차이를 느낀다.
첫 컨택트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기에 잘 안맞나 라고도 생각했는데, 훨씬 괜찮은 글이었단 생각이 들어서 추후 기회가 되면 세설을 읽어볼수도 있지 않을까. 세설은 좀 긴듯하지만.
금색이나 새벽의 사원 읽어보면 미시마가 동성애자가 아니라 동성애는 걍 문학적 도구일뿐이라는 생각이 듦
솔직히 금색에서의 동성애 묘사를 다루는 방식이 요즘 트렌드엔 안맞긴했을거같은데 용케도 이렇게 묶어냈단 생각.
전혀 퀴어적인 이야기가 아니고 자신의 이상적인 무언가에 도달하기 위한 방식에 가깝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