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발전이 불러올 전근대적 삶과 내재된 애환
<흑산도>(전광용, 1955)를 읽고
<흑산도>는 <꺼삐딴리>로 잘 알려진 전광용의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흑산도>는 흑산도라는 하나의 섬을 배경으로 이 섬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여러 섬마을과 다르지 않게 남자들은 주로 뱃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한순간 바다의 변덕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자들은 이러한 순응하는 삶을 오랫동안 받아들였다.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남자들 앞에서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소설 속에서는 북술이라는 여인을 주인공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그녀를 둘러싼 여러 인물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했다. 그녀의 부모, 사랑하는 남자, 곧 할아버지까지. 짧은 소설 속에서 그녀는 주변 사람들을 잃으며 흑산도를 떠나 뭍으로 가고 싶어 하지만 결국 흑산도를 떠나지 못한다.
여기서 난 의문점이 생겼다. 물론 거부할 수 없는 섬마을 여인의 숙명이기도 하지만 더 이상 주변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다면 뭍으로 나가는 것이 운명에 맞서는 것이 아닐까? 계속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놓쳐가는 것이 운명이라면 그에 맞서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결국 그녀는 떠나지 못했고 소설의 결말에서는 사랑하는 남자의 환상을 보며 운명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묘사된다.
소설을 읽으며 그녀가 안타깝다고만 여겼으나 잠시 생각하니 대를 지나오며 반복된 삶의 방식을 거부하고 숙명에 맞선다는 것의 중압감이 느껴졌다. 현대인인 내 관점에서 자연은 노력하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근대 이전의 사람들에게 자연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으며 거부할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존재이다. 이 관점의 차이가 소설에 대한 내 이해를 부족하게 했던 요인이었다. 이를 이해하고 난 후 현대에는 기계가 유사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떠올랐다!
특히 최근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는 AI를 생각해보면 원시 시대로부터의 발전을 역행하는 미래가 그려졌다. 기계 역시 앞으로 태어나는 세대들에게는 항상 존재했던것이고 삶에 너무 깊숙하게 관여하고 있기에 거부할 수 없다. 또한 점점 가속도를 갖고 발전하는 과학기술은 한 인간이 태어나서 끝없는 공부를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하나 혹은 두 세대 이후는 기계를 공부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윗세대로부터 기계와 함께하는 삶의 방식을 배우고 따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계의 운명은 무거워진다. 먼 미래에는 삶의 모든 부분에 있어 기계의 판단을 따르고 기계의 판단을 우선시할 것이다. 어쩌면 기계로부터 원하는 답변을 얻기 위해 제사를 지낼 지도 모른다. 결국 전근대적인 북술이의 삶과 같아지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힘 앞에 순응하고 만다. 그렇기에 북술이에 대한 안타까움보다는 그녀의 삶 속에 있는 애환이 눈에 들어오며 인류가 같은 과거를 반복하는 미래가 떠오른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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