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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무라트」는 톨스토이의 유작이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하지 무라트」를 극찬했다고 전해진다. 오늘 내가 「하지 무라트」를 읽은 이유는 그 괴팍한 천재가 좋아한다는 작품이라길래 끌린 것도 있지만, 실은 빈 시간 동안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을 정도로 얇은 것이 가장 컸다. 200쪽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톨스토이답게 밀도는 짙다. 전쟁의 참상, 하지 무라트의 이력, 방탕한 귀족들 등 여러 묘사가 충실히 돼있다. 또 짧은 전기지만 '하지 무라트'라는 전사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기에는 충분하다.


사실 하지 무라트를 정의로운 인물이라 부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민족을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많은 사람을 죽인 자다. 또 자신의 처지를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캅카스와 러시아를 오간 이력은 미심쩍게 보일 수밖에 없다. 작중에서 그의 카리스마가 너무 미화된다는 생각도 종종 들었다. 「하지 무라트」 내에서 그보다 당당한 사람이 나오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장 밖에서 이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는 설득력이 부족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지 무라트를 위해 할 수 있는 변명들도 많다. 우선 그가 살았던 세상, 그리고 우리가 지금도 살고 있는 세상이란 것이 그리 정의로운 공간은 아니다. 세상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고, 사람들은 살기 위해 작게는 다른 생물, 크게는 같은 사람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하지 무라트의 살육을 옹호할 수는 없지만 하지 무라트를 잔인하다고 매도하는 것은 내숭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하지 무라트가 위기의 상황에서 보여준 의연한 자세는 대단했다. 그는 진영을 바꿔가며 살 길을 모색한 것처럼 보였지만, 끝내는 러시아도 캅카스도 적으로 돌렸다. 결국 전우애, 가족을 지키려는 의지가 자신의 안위에 대한 걱정을 앞선 것이다. 그는 전사로서 흠결을 갖춘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을 때는 누구보다도 용맹한 전사로서 죽었다.


톨스토이는 하지 무라트의 죽음을 뭉개진 엉겅퀴 덤불에 비유한다. 수레바퀴가 덤불을 밟고 지나가 줄기가 부러져도 엉겅퀴 꽃은 꿋꿋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 지경까지 망가질 때까지 무엇을 했느냐고 물으면 딱히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 어떤 시련에도 꽃만은 땅으로 숙이지 않고 고개를 든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참다운 생명의 증표가 아니겠는가. 하지 무라트는 그렇게 죽었다. 전장이라는 환경에서 정의로울 수 없다면, 차라리 끝까지 자신답게 싸우는 것이 옳을 것이다. 나는 하지 무라트의 삶은 존경하지 않지만 그의 죽음에는 존경을 느낀다.


가끔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남겨진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물론 하지 무라트처럼 전사다운 죽음을 바라지는 않는다. 나는 준비 없는 이별은 질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줏대 없이 살았다는 평가는 듣고 싶지 않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질긴 생명력으로 끝까지 자신의 길을 걸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음, 달리 할 말이 없다. 잘 마무리하기 위해 지금을 잘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