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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설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쯤이었던가? 아마 제이디 스미스의 <하얀 이빨>이었을까? 소위 맥시멀리즘이라고,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무한한 재미>를 필두로 90년대 후반부터 00년대 초반에, 미친듯이 두텁고 강박적일 정도로 자세하고 난잡한 서사 및 정보를 자랑하는 문학 트렌드가 있었다. 서사는 당연하게도 하나로 끝나지 않으며, 가장 두터운 중심 서사를 필두로 여러 인물의 서사를 평행적으로 진행시키며 서술 순서를 서로 꼬아댄다. 각 인물의 설정은 어떨 땐 현실적이면서도 어떨 땐 너무 특이하고, 이를 드러내는 방식도 매우 괴팍해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매우 현대적이고 산만하다. 여기서 가장 대중적이고 무난한 소설이 아마 제이디 스미스의 <하얀 이빨>인듯한데, 솔직히 개중 제일 마음에 들진 않았다. 애석하게도 <우주의 알>은 맥시멀리즘의 냄새를 풍기되, <하얀 이빨>에 가장 가까운 책처럼 보인다. 그러나 둘은 같지 않기에 <하얀 이빨>보다 더 재밌게 읽기도 했다.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다.


<우주의 알>은 그 난잡함을 결코 숨기지 않는 소설이다. 쇠락해가는 산업도시 바커베일을 배경으로, 원제 <The Rabbit Hutch토끼장> 이름의 공동주택에서 사는 사람들을 위주로 다루되, 여기에서 뻗어나가 이 주택과는 상관없는 국민 여배우의 엇나간 정신병자 아들처럼 다소 연이 없는 사람들까지 이 안에서 부딪히게 만든다. 주인공 격인 블랜딘 왓킨스를 포함해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데, 막 사망한 여배우 엘시의 온라인 추모 사이트에서 악성 댓글을 지우는 조앤, 실연의 아픔으로부터 회피하고자 신비주의와 마르크스주의에 빠진 블랜딘, 그런 블랜딘과 함께 살며 관심을 끌어보고자 경쟁하는 또래 소년들(말리크, 잭, 토드), 여배우의 끔찍한 방치 양육으로 완전히 엇나가 피부에서 섬유가 자라나는 정신병을 겪으며 관련 사이비 종교 블로그를 운영하는 모지스 등 나열해 보고 있으면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괴상하고-약간은 전형적인 현대 미국 소설스럽기도 하다. 그러니까, 현대 미국 자체보다는, 잡지 <뉴요커>에서 다룰 듯한 그런 인간군상말이다.


덕분에 <우주의 알>은 <인생수정>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는 데에 실패한 소설인데, 비교적 통속적이고 현대적인 방식으로 톨스토이스러운 종합소설을 시도한 프랜즌의 서술 초점은 명백히 테스 건티가 <우주의>에서 시도한 것보다 폭넓다. 특히 중심 플롯인 블랜딘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순 없는데, 살짝 요약을 해보자. 마약 중독자의 자식으로 태어날 때부터 금단증상을 겪었던 탈색된 하얀 머리칼을 가진, 사람보다는 요정 같은 의미에서 눈길을 끄는 아름다움의 비정상적으로 빼빼 마른, 부모 없이 여러 위탁가정을 전전하지만 머리는 좋아서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도록 추천을 받았던 소녀가, B급 락밴드를 하다가 쇠락한 바커베일 유력자의 딸과 결혼해 부유한 삶을 살고 있는 음악 교사와 불륜 로맨스에 빠졌다가 그 실연의 고통으로 다른 위탁가정 남자애들과 함께 학교를 자퇴하고 도망쳐 나와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사회적 지위는 낮지만 나름대로의 명석함을 갖고 자신을 진지하게 대하는 남자애 잭과 잠시 마음이 통했다가, 다리 부러진 염소를 구하는 동안 재회한 옛 선생님과 잠시 재결합의 꿈을 꾼다. 그가 자신에게 못되게 굴고 있다는 확신을 얻고 대파국 이후 다시 신비주의로 침잠한 점만 제외한다면 정말 할리퀸 로맨스에서 끄집어내온 것만 같은 서사와 설정이다.


다만 큰 기대를 내려놓고 보면 확실히 괜찮은 소설이기도 하다. 작중 인물들의 뜨거운 진심과 장광설, 괴팍한 집착 및 병적인 반응 등은 DFW가 <무한한 재미>에서 시도한 도스토옙스키스러운 필체를 좀 더 대중적이고 현대적으로 완화해서 보여주고 있으며, 핵심 인물들이 모두 한곳에 모이는 대파국의 순간을 토드의 그림으로 잔뜩 표현한 장면은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를 연상시키는 감이 있다. 계속 저 90~00년대의 문학을 언급하는 것 같아서 좀 그렇지만, <우주의>는 솔직히 이런 글에 확실히 더 가까운 소설이다. 그래서 읽는 게 즐겁기는 했다. 물론 도전적인 정신은 딱 이 정도 선에서 끝난다. 실험적인 서술 및 대사가 끝나면 서사는 다시 <하얀 이빨>의 수준으로 내려앉으며, 여기에 <뉴요커>의 감수성을 더해 환경보호, 후기자본주의 비판 등을 (의도적으로) 어설프게 섞어주면 <우주의>가 나온다. 그래서, 전체적인 평을 내리기 참 애매하다. 좋기는 하지만 그렇게 좋지는 않은, 아무래도 요즘 문학이란 이 정도가 최선인 건가 싶은 감상과 함께하는, 그런 느낌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