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소크라테스의 변론 천병희 센세 번역으로 읽었을 땐 소크라테스가 이런 말을 했구나~ 싶었음.
정암학당으로 읽었다가 실패해서 박종현 센세의 번역으로 읽고 있음.
정암학당 번역이 더 잘 읽힌다는데 희안하게 난 박종현 센세 번역이 더 좋은 거 같음.
문장이 꼬여서? 어려워서? 그런지 졸라 집중해서 읽어야하고 집중해서 읽으니깐 오히려 몰입이 됨.
몰입하니깐 오히려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말하는 게 잘 상상되더라.
근데 박종현 센세 문장은 번역투? 번역체?? 같은거지??
천병희 센세 번역보다 좀 더 찰진 부분도 있는거 같고. 뭐라고 정의해야할지 모르겠음.
“번역자는,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문장이 이천오백 년 전에 지중해 세계에서 쓰인 것임을 체감하려면 최대한 원문의 껄끄러움에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것이 번역자가 매끄러움과 적당히 끊기를 시도하지 않은 까닭이라 여겼고…”
강유원샘이 평한 박종현 센세의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