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의 산문 문학(그리고 사람에 따라 돈키호테보다 최초의 근대 소설호 여기는)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이다.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뛰어난 소설이란 무엇인가? 탄탄한 스토리, 매력적인 인물들, 치밀한 설정, 작품 내에 흐르는 깊은 철학과 통찰, 결말부를 지나며 독자에게 각인되는 교훈과 감동 등을 보여주는 소설들은 흔히 명작, 혹은 걸작이라 여겨진다. 고전 소설들 중 현재까지도 대중들에게 읽히는 소설들은 대부분 이런 조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때로는 이런 평가의 경직성은 수많은 소설들을 자격 미달로 폄하하기 일쑤다. 또한 그런 기준점의 고전들을 베끼기만한 어떤 창조력도 찾아볼 수 없는 장르 문학들은 세기의 명작을 추앙받기도 한다. 가르강튀아 / 팡타그뤼엘을 위시한 소설사 초창기의 작품들은 이런 세태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소설들일 것이다.


본 소설에서는 명작의 기준과 어떤한 면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심리묘사는 존재하지 않고 교훈은 집어던졌으며 저속하고 상스러운 어휘를 남발한다. 감동은 커녕 실없는 웃음만 나오게 하는 것이 이 소설이다. 그러나 감히 말하자면 난 이 소설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위고, 스탕달이 군림하는 거장들의 영역에 끼어넣고 싶다. 그리고 작가잉 프랑수아 라블레를 세르반테스, 단테와 같은 각 나라 문학의 선구자격인 인물로 추대하고자 한다.


가르강튀아 / 팡타그뤼엘은 무엇이 뛰어난가? 이 산문 문학이 소설사에서 가장 순수하던 시절의 흔적이다. 어떤 제약도 금지도 없이 라블레의 문장은 낱말을 뒤섞고 가장 추한 요소들로부터 가장 고귀한 요소들까지 넘나들며 단 한가지의 목표, 웃음을 위해 작동한다.


웃음은 인생의 가장 본질적이며 순수한 요소임에도 소설에서는 크게 환영을 받지 못한다. 오히려 버림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웃음을 버린 소설들은 진지한 와중에 더욱 큰 진지함을 부여하고 감정을 극단적으로 아름답게 치장한다. 마치 음유시인들의 서사시처럼, 그런 소설들은 판에 박힌 기준으로 쓰여있다. 다시말해, 서사시로부터 어떤 새로움도 가져다 주지 못하는 과거를 담습하기만 한 편하게 쓰인 소설들인 것이다.


반면 가르강튀아/팡타그뤼엘은 그런 웃음을 무시하지 않는다. 소설의 형식 속에서 라블레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사건들을 나열하며 우스꽝스러운면을 강조한다. 가장 순수한, 가장 본질적인 그런 소설인 것이다.


물론 지금 기준으로 보면 완성도가 높은 소설이라고 하기엔 힘들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의 기준일 뿐이다. 소설의 가장 원초적인 영토에 뿌리를 박고 자리잡은 본작의 가치는 도저히 무시할만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지금의 기준으로도 만족스러워야 진정한 걸작이라고 하겠지만 내 생각으로는 그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일 뿐이다. 소설들끼리 이어지며 형성되는 거대한 소설사의 흐름을 무시한 일방적인 기준에 따른 평가는 무의미할 뿐이다.



ㅈㄴ 두서없는 글이네. 니네는 걸으면서 감상문 쓰지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