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년 전 작가들은 그 시대의 최첨단 지식인이다. 그러니까 거기서 삶의 지혜 같은걸 당대 사람들이 얻을 수 있던 거지.
그런데 지금은? 절대다수의 작가들은 최첨단의 과학은 커녕 기본적인 과학도 모를 수준이고 과학뿐 아니라 실제로 연구되는 최첨단의 학문의 영역에 발도 못담그는 수준이야.
이제 세상에 대해, 혹은 어떤 문제에 대해 알기 원한다면 소설을 읽는건 말이 안된다.
한국기준으로 가령 3,40 년전만 생각해봐도 그때는 전문 작가들이 글을 쓰는게 사회를 유의미한 방향으로 바꿨었다.
그리고 그 작가들은 동시대에 지식인 취급을 받을만큼 배운 사람들이었고
그런데 지금은 사회적으로 전문화가 엄청나게 진행된 사회야
더이상 글 잘쓴다고 대단하다고 인정 받는 사회가 아니야. 그 글에 담을 내용이 중요한 사회지. 구글링 한번만 해도 개똥같이 쓴 글을 풀어서 설명해주는 글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야.
그리고 이런 점에서 과거 고전들의 의미도 굉장히 퇴색했고
문학을 읽는 다는게 교양 이상의 의미를 지닌 때가 아니게 된거지
어떤 사람이 세익스피어 소네트 한 구절을 잘 왼다고 해서 그 사람이 대단한 사람인기 아니라
그 사람은 당연히 그냥 교양있는 사람 정도로 인식 되는거지
정말로 세익스피어의 작품에 나타난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고 싶다면 세익스피어를 덮고 관련된 학술서적이나 구글링을 해야하는거고
그런데 지금은? 절대다수의 작가들은 최첨단의 과학은 커녕 기본적인 과학도 모를 수준이고 과학뿐 아니라 실제로 연구되는 최첨단의 학문의 영역에 발도 못담그는 수준이야.
이제 세상에 대해, 혹은 어떤 문제에 대해 알기 원한다면 소설을 읽는건 말이 안된다.
한국기준으로 가령 3,40 년전만 생각해봐도 그때는 전문 작가들이 글을 쓰는게 사회를 유의미한 방향으로 바꿨었다.
그리고 그 작가들은 동시대에 지식인 취급을 받을만큼 배운 사람들이었고
그런데 지금은 사회적으로 전문화가 엄청나게 진행된 사회야
더이상 글 잘쓴다고 대단하다고 인정 받는 사회가 아니야. 그 글에 담을 내용이 중요한 사회지. 구글링 한번만 해도 개똥같이 쓴 글을 풀어서 설명해주는 글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야.
그리고 이런 점에서 과거 고전들의 의미도 굉장히 퇴색했고
문학을 읽는 다는게 교양 이상의 의미를 지닌 때가 아니게 된거지
어떤 사람이 세익스피어 소네트 한 구절을 잘 왼다고 해서 그 사람이 대단한 사람인기 아니라
그 사람은 당연히 그냥 교양있는 사람 정도로 인식 되는거지
정말로 세익스피어의 작품에 나타난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고 싶다면 세익스피어를 덮고 관련된 학술서적이나 구글링을 해야하는거고
오바마가 가장 영향깊게 읽은 책을 셰익스피어라했지, 구글링해서 나오는 정보들이 인류고전의 수준을 뛰어넘는다 생각?
지금도 고전은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있고 인간사는 세상의 갈등 고민은 여전히 반복된다고 생각. 그 때나 지금이나 인간 고민은 다 거기서 거기다 형태만 반복될뿐
물론 고전을 외치며 고전만 주구장창파고 유투브 동영상도 볼 줄 모르는 것도 일종이 야만이겠으나.. 그역도 마찬가지일뿐
권력과 부가 literati로부터 person of knowledge에게 넘어간지 오래됐지만 인생의 의미나 세상의 숨겨진 진실을 찾는 사람에게 문학은 아직도 유용한 도구지. 그리고 권력과 부가 대중으로부터 나오는 것도 분명한데 대중을 움직이는 것은 바로 이야기와 감성, 언어의 힘이지. 문학은 이런 것을 제공한단 말이지. 문학은 생각보단 아직도 유용하지.
헛소리를 당당하게 하네
안다는 것을 지식에 한정하면 니 말도 맞음. 그게 아니니까 마리화놔 말이 더 설득력있는거임.
삶이나 자유의지, 선악 같은 문제에 과학이 답을 내려준다면 문학은 필요 없겠지. 하지만 아직 과학은 답하지 못하고 있고 문학이 누릴 수 있는 영역으로 남아있다고 생각.
그리고 나는 철학서보다 문학으로 철학을 접하는 게 더 효용이 크다고 생각한다.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읽는 거보단 <이방인>을 읽는 게 이 양반이 뭘 말하려고 하는지 더 설득력있게 다가옴. 물론 현대 작가들이 과거처럼 지식인이 아니고 그 정도 수준의 글을 쓰지 못하는 건 사실이지만.
현대 행위 이론(action theory)의 논의를 어떤 문학이 담고 있는데? 자유의지가 구닥다리 논증 같
삶의 지혜가 학문의 발전이랑 뭔 상관인지 잘...
문학의 독자적 가치가 과거보다 확실히 많이 떨어진 거 같기는 하지만, 문학 모두가 무의미한 수준까지 떨어진 거 같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람과 사람이 겪는 일에는, 과학적 방법론에 따른 체계적 탐구에 담지 못하는 의미들이 아직 남아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글의 제목이 좀 극단적이어서 모두 동의할 수는 없으나, 글의 큰 뜻에는 공감합니다.
열등한 dog 갤러들 ㅋㅋ
전문가 최첨단현대과학 석박사
이제 전문가와 최첨단현대과학과 석박사의 시대다!!!! 평생 잘난 이들을 못따라잡는데 어서 쓸데없는짓하지말고 이들이나 따라잡자!!!
인간에 관한 과학적 방법론에는 세 가지 한계가 있는데, 첫째, 인간이 겪는 모든 일을 실험으로 재현하거나, 통계적으로 관찰하기 어렵다. 따라서 실험 혹은 관찰에 의한 검증에 결정적으로 의존하는 과학이 다루기 힘든 부분이 남아 있다. 둘째, 인간이 겪는 모든 일을 계량화하기 어렵다. 따라서 그 현상들을 수학의 언어형태를 가장 근간으로 하는 과학의 언어로 번역하기 어렵다. 셋째, 인간의 의식 그 자체를 과학적 언어로 번역하는데 아직도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무엇을 느낀다는 현상 그 자체를 과학적 언어로 직접 번역하여 표현하는데 성공한 사례를 저는 알지 못합니다.
문학이 답을 안주듯이 최첨단현대과학도 답을 안준다 ㅋ 자꾸만 선택의 극성만 이리갔다저리갔다 ㅋ 비문학아니면 문학감성 ㅋㅋ
열등언덕 죽어 이 지잡아
그 다음에 생각할 부분, 과학의 기술 방법은 근본적으로 볼 때, 어떤 현상들의 반복적인 패턴을 기술하는 형태입니다. 일회적인 현상은 과학 이론의 대상이 되기 어렵습니다. (빅뱅이론 같은 예외도 소수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각종 과학 이론은 어떤 현상에 관한 반복적인 패턴을 분석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겪는 의미는 모두 반복적인 패턴으로부터만 나오고, 일회적인 현상으로부터는 나올 수 없는가?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일회적인 현상들이 어떤 인간에게는 더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경우는 아주 흔합니다. 따라서, 인간이 생각하는 인간에 관한 의미는, 과학이 잘 다루지 않는 영역에 걸쳐 있습니다. 이것은 과학이 다루는 지식의 양이 늘어난다고 바뀔 거 같지는 않습니다. 과학의 근본 속성이기 때문이죠.
위에서 말한 <과학>은 자연과학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대학 교수와 연구원들이 주축이 되는, 모든 개별 학문들의 연구 집단에서 다루는 지식의 형태를 가리킵니다. 무엇을 논문으로 써내고 해석하고 토론하는 지식의 대량 생산 체제에 들어가기 힘든 의미들이, 인간 그 자체에 관하여 아직 남아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문학은 과학에 비해 그 의미들을 좀더 잘 다루고 있다고 보고요.
문학이 의미를 잘다루긴ㅋ 그러니까 개꼴통들이 싸구려감성이 의미인줄 착각하지 그리고 팩트는 과학다룬다고 착각하고 둘다아니여 ㅋ 과학도 망상하고 문학도 망상하고있어 ㅋ 팩트는 주관적 의미속에 있음
즉슨 우주전체가 심리속에서 돌아가고 물질법칙도 심리적 창조물이고 인생에서 문제해결도 미세한 심리적 관찰과 직관으로 밖에 해결안됨
무슨 유심론자니 유물론자니 ㅡㅇㅇ론자ㅡ 파벌따위가 아니라 니들이 좆병신이라 아직 인식의 한계가 조악해서 내말을 못알아듣는거임
니들이 떼부자되려고해도 인간들 미세한 욕망의 압력차이를 감지해서 이 루트를 먼저 뚫어주는걸 찾아야 할꺼다 ㅋㅋ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개소리 오지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