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들어가며
수많은 미디어믹스를 낳으며 신화적인 성공을 이뤄낸 만화 <데스노트> 의 연재가 끝난지도 벌써 20년이 다 되어갑니다. 저는 이 만화를 중학생 시절 애니메이션을 통해 먼저 접했는데, 굉장히 몰입해서 봤던 기억이 나네요..
최근에 이 만화를 다시 정주행하면서 요즘 나오는 작품들(아무래도 애니메이션을 많이 보다 보니, 주로 애니메이션들이지만요)이나 현실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오버랩되기도 했고, 그런 것들을 메모장에 끄적거리고 있던 찰나에 만화 리뷰 대회가 진행중이길래 참가해봅니다..!
몇몇 만화나 애니메이션들에 대한 약하고 강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인용한 작품들은 가장 하단에 적어두겠습니다.
모쪼록 부족한 리뷰지만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아직은 세기말적인 세카이계
가장 최근의 이야기로 시작하자. 2025년 1분기 방영작 <BanGdream! Ave mujica> 는 토가와 사키코가 다음과 같은 말로 또래 소녀들에게 밴드 ‘Ave Mujica' 에로의 가입을 제의하며 그 서사를 시작한다. "당신의 남은 인생, 저에게 주시지 않겠어요? 1)" 그러나 같은 애니메이션 1화의 끝에서, 'Ave Mujica' 의 무대는 사키코의 의도와 통제를 벗어나게 되고, 사키코는 자신의 인생과 그 외 모든 것을 건 밴드의 제어권을 잃어버린다.
소녀들은 무엇에 설득당해 남은 인생을 사키코에게 바칠 수밖에 없었을까? 그리고 어째서 사키코는 단 20분의 러닝타임만에 그 인생에 대한 제어권을 잃었을까? 비슷한 예시로,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의 빌런 큐베의 말을 들어보자. (그 대상이 사키코와 비슷한 나이대의 소녀들이었다는 점은 우연으로 넘기고) 소녀들에게 자기 자신과 남은 일생을 바치는 계약을 맺도록 한 그 큐베 말이다. "역시 안 되겠어. 너희 인간의 감정 에너지는 사용하기엔 너무 위험해. 이런 터무니없는 결말은, 우리들로서는 온전히 제어할 수가 없어.2)" 애초에 주인공의 일생을 넘겨받은 빌런조차 제어할 수 없는, 하지만 그 제어할 수 없는 것에 맡겨져야하는 두 사람의 관계, 그리고 세계의 운명. 우리가 흔히 세카이계라고 부르는 장르를 필자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데스노트> 는 소년만화적 요소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분명 그 구조는 이런 구조와 비슷한 면이 있다. 소년이 살인 노트를 줍는다. 노트를 사용하면서 사실상 사신과 계약을 맺는다. 이 계약은 분명 - 소년이 죽을때 사신이 소년의 이름을 적는다는 다소 사소한 내용을 제외한다고 쳐도 - 그 노트의 사용 자체가 소년의 남은 인생을 사신에게 바치는 것이 된다. 소년은 - 신이 되거나, 죽게 될 때까지 - 한 번 시작한 범죄자들에 대한 심판을 절대로 멈추지 않을 것이고,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이 심판(혹은 무차별적인 살인)을 멈추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가 필요해보인다. 첫째로, 소년이 심판이라고 믿어온 행위가 살인이라는 것을 누군가에게 납득시키는 일. 둘째로, 소년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는 일. 이 두 가지 쟁점에서 나타나는 긴장감이 라이토와 L과의 관계에서 나타나고 있다.
L은 라이토가 키라라고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키라를 찾기 위해 라이토와 협력해야한다. 이 관계는 분명 묘하다. 21세기 초반의 작품이지만, 묘하게 세기말적이다. 가장 유명한 21세기 세카이계 작품,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의 첫 문장처럼, '산타를 믿지 않는 개인3)이 타인을 구원하는 일이 세계를 구원하는 일' 이라고 믿는 식의 태도는 여기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차라리 이 관계는 세계와 자신의 구원을 위해 때때로 상대의 목을 졸라야만 하는4), 보다 세기말적인 <신세기 에반게리온> 과 비슷한 관계라고 해야 할 듯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L과 라이토의 이 묘한 관계가 지나치게 세기말 일본적인 절망감과 무력감에 파묻혀있다고 해서는 안 될 것인데, 무엇보다도 이 관계는 세상을 진보시키고 또 뒤바꾼다는 것이다.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가? 누가 더 강한가? 진실이 어느 쪽으로 밝혀지느냐에 따라 세계는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바뀌게 된다.
2. 밀실의 저편
그런데 정말로 이 두 질문이 다른 종류의 질문이 될까? 니체가 그렇게나 강조하듯, 진리라는건 원정치적인 선악의 경계 저편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결국 선악의 경계라는건, 권력 구조 하에서만 이야기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L의 죽음 이후 묘사를 보면, 사실상 그 두 질문은 같은 질문이 되는 것도 같다. 세계는 키라의 심판을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많은 이들이 키라를 사실상 종교처럼 추앙한다. 그런데 L의 뒤를 이은 니아나 멜로는 키라의 선악의 분별에 대해서는 무관심 한 것 같다. 아닌게 아니라 작품은 키라의 윤리 의식에 대한 깊이 있는 반박도 드러내지 않고, 보다 강하고 결정적인 힘으로 키라를 체포하는 것이 그저 제1의 목표인듯 서사를 전개한다.
선악의 경계에 대한 이런 관점은 분명 마지막 밀실 장면에서 아주 흥미로운 그림을 만들어낸다. 니아를 죽여야 하는 키라(키라의 심판 행위가 정의라고 믿는 이), 라이토가 키라라고 믿고 키라를 체포하고자 하는 이들(키라의 살인 행위는 악이라고 믿는 이들), 그리고 키라가 정의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이가 밀실에 모여있다. 이들은 각자의 이유에서 밀실 밖에서 노트와 펜을 들고 있는, 키라 하수인의 오르페우스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들이 기대하는건 키라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 너머에 있는지도 모른다. 누가 정의인가를 밝혀내는 일. 누구도 죽지 않는다면 키라는 정의가 아닌 것이 될 것이고, 모두가 죽고 키라만 산다면 키라는 정의가 될 것이다.
20년도 넘은 이야기이지만, 필자는 요즘같은 혼란스러운 세계 속에서 이 대목이 꽤 섬뜩하게 느껴진다. 유튜브 알고리즘과 같은 개인 맞춤형 정보 제공은 양 극단의 믿음을 강화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는 제왕적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이전보다 극단적인 선동과 네거티브이고, 상대에 대한 악마화이다. 인류가 나아가게 될 광대한 네트워크는 세기말의 춘몽5)으로 끝나고, 보다 개인적이고 좁은 시야의 개인들만이 펼쳐가는 각자의 세계가 열리는 듯도 보인다. 완충은 어디에서도 일어나지 않는 듯하고, 밀실 안에서의 '누군가 죽어야만 증명되는 암투' 는 더 이상 판타지만은 아니게 되었다. 그러니까, 분명 선악의 경계를 결정짓는 일은 보다 극단적인 힘의 논리에 맡겨지게 되었다.
그런 21세기적 야만성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이 이야기의 결말은 유명하다. 누구도 죽지 않는다. 키라 하수인의 노트에는 라이토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이름이 있었으므로, 라이토가 키라임은 모두에게 자명해진다. 힘의 논리에 의존한다면, 선이 무엇인가는 명확해졌다. 총상을 입은 라이토는 밀실 밖으로 쫓겨나듯 나가 도망친다. 여기까진 <데스노트> 를 끝까지 보지 않은 사람들도 알고 있는 내용일테다.
PS. (필자는 글의 마지막에 이 지점을 반드시 강조하고 싶은데) <데스노트>의 애니메이션 판에서는, 이 직후 조금 더 주목해야 할 장면이 있다. 라이토를 의심해오긴 했지만, 천재보다는 평범한 형사처럼 보이는(그리고 라이토를 믿어온 마츠다가 최후의 순간 분노하며 상대적으로 더욱 평범한 포지션으로 남을 듯 했던) 아이자와 슈이치가 도망치는 라이토를 쫓아가는 장면이다. 힘의 논리로 선이 된 니아는 라이토가 곧 죽을 것이라고, 굳이 쫓아가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아이자와가 라이토를 쫓아가는 이유가 분명 선악의 심판과는 거리가 있어보인다는 사실을 다음 대사를 통해 알 수 있다. "네 지시는 필요 없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명확히 따라갈 수 없는 시대라면, 어느 쪽을 따르든 폭력성에 언젠가 휘말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주체성을 무엇보다도 의지해야 한다. 여기 한 가지 단서를 붙이고 싶다. 그 주체성과 주체성이 믿고 있는 믿음에 대해서도 의심해보면서. 일단은 유튜브 알고리즘도 본인 의지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선이라고 믿는 것, 그 믿음은 정말로 주체적인가? 그 믿음과 우리는 어떤 종류의,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는가? "실이 끊어진 인형은 자유를 얻을까요? 아니면..6)"
1) <BanGdream! It's mygo> 13화. 해당 회차의 다음 시리즈인 <BanGdream! Ave mujica> 의 첫 회차에서, 사키코는 이 대사를 전달받은 냐무에 의해 밴드 컨셉에 대한 주도권을 잃어버립니다.
2)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 배반의 이야기>
3)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의 도입부에서 인용
4)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의 마지막 장면
5)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의 마지막 대사. '자, 이제 어디로 갈까? 네트워크는 광대해.'
6) <BanGdream! Ave mujica>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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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료하면서도 확실한 문장 같아요..! - dc App
오 !! ㅋㅋㅌㅋ 그 분이 그런 말을 했다니 무슨 맥락일지 감이 안오네요 ㅋㅋㅋ 또 찾아볼게 생겼네요..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