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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었는데도 아래 링크글을 썼을 때랑 여전히 인상이 변하지 않음.
https://gall.dcinside.com/m/reading/705012
스포) 유리알 유희 매력적이다갑자기 등장한 저 문장을 읽고 뜨끔했는데, 곧이어 뭔가 묘한 감정이 들었음. 별거 아닌 문장같아 보이지만, 진작에 죽었을 터인 헤세라는 작가가 오랜 친구인 양 내 눈앞에 살아있는 채로 말을 걸어온 느낌이었음. 분명 내gall.dcinside.com크네히트의 전기는 아름다운 동화처럼 느껴짐. 읽는내내 기분이 좋음.
유리알 유희의 맨 처음 서문에서 글이 어렵다고 느껴질 수 있는데, 유리알 유희의 의미 정도만 흘려듣고 크네히트 전기를 전부 읽은 후에 서문을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함.
어차피 서문을 전부 읽고나서 크네히트의 전기를 읽든 서문을 스킵한 채로 읽든 결국 1권 끝까지 읽고 나면 서문을 다시 읽어서 되새김질하고 싶은 욕구가 생김.
유리알 유희 1권 안에서도 가장 아름답게 느껴지는 부분은 요제프와 음악 명인과의 관계, 그 중에서도 초반에 어린 요제프를 교육하는 음악 명인의 합주라던가 아직도 여운이 남음.
음악 명인이 은퇴하고 말을 거의 안 하는 부분에서는 싯다르타가 떠오름. 아마 고타마는 언어를 통해 진리를 전파하려 했고, 싯다르타는 흐르는 물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진리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고 했었지. 그리고 온화한 미소, 그 부드러운 태도. 싯다르타와 음악 명인의 모습과 태도는 굉장히 유사하게 느껴짐.
요제프가 명인이 되고나서 음악 명인과 유사하게 점점 어린 학생들을 직접 교육하는 데에 행복을 느끼는 부분도 요제프가 음악 명인의 계보를, 의지를 이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게 되어 아름다움.
카스탈리엔은 헤세가 기존의 세계에 덧그린 매력적인 기관으로 보임. 아마 헤세가 이 세계관에 환생한다면 반드시 카스탈리엔에 들어가려고 했겠지.
아마 작품이 전반적으로 카스탈리엔을 집중조명했기 때문에 동화같다고 느꼈을 가능성이 높음.
오직 학문과 예술과 명상의 소세계. 이 매력적인 세계는 어떤 관점에서는 묘하게 인위적인 느낌이 플라톤 이상국가의 헤세버전으로 보이기도 하며,
내 관점에서 카스탈리엔은 에너지(국비라던가)를 공급해서 엔트로피를 극단적으로 감소시킨 시스템, 인위적이지만 살균되어 있는 온실같이 보임.
데시뇨리라는 친구를 통해 간접적으로 현실사회와 대립되어 보이는데, 왜 인위적인데도 불구하고 기계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신성하게 느껴질까? 하면 그곳에는 경건함, 명상, 순수한 학구열, 진리를 향한 사랑이 있기 때문이겠지.
그럼에도 카스탈리엔에 유신론적인 측면이 느껴지지 않는 점도 매력적임. 헤세는 베네딕투스 수도회를 통해 확실하게 기독교와 카스탈리엔 사이의 선을 긋고 있음.
크네히트와 데시뇨리의 논쟁은 전기에 있어서 음악 명인과의 만남 다음으로 중요한 사건으로 느꼈음.
이에대한 페로몬테의 감상은 마치 정반합 변증법을 떠올리게 함.
"플리니오의 이 고백은 음악가인 내게는 마치 하나의 음악적 체험과도 같았어. 세계와 정신이라는 대립 혹은 플리니오와 요제프라는 대립이 내 눈앞에서 서로 용납하지 않는 두 원칙의 투쟁을 통해 하나의 협주곡으로 승화하는 것이었네."
엄밀히 따지자면 초기의 데시뇨리와 후기의 데시뇨리는 대변하는 무언가에 있어서 꽤 성질이 다름.
초기의 데시뇨리와 요제프의 대립은 자연에 의한 세계 vs 이성에 의한 세계와 같다면,
후기의 데시뇨리와 요제프의 상황은 현실사회에 찌들어진 인간 & 책임과 의무에 속박당한 인간같이 느껴짐.
전자는 최근에 읽었던 카뮈의 시지프 신화가 떠오름. 나는 부조리의 감정을 합리를 추구하는 이성과 비합리적인 세계 사이의 괴리감으로 이해했었지.
데시뇨리는 자연에 의한 세계를 예찬하는 반면 카뮈는 비합리적인 세계를 증오함에 가깝다는 데에서 차이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열린마음을 가진 두 인물이 열정적으로 대화함으로써 대립되는 두 항을 인정, 존중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역시나 아름답고 낭만적임.
아직 2권은 손대지도 않았지만 데시뇨리가 젊은시절 결국 포기했었던 카스탈리엔 정신을 체득해서 현실사회에 물들어진 그 정신과 조화시켰으면 하는 바램이 있고,
카스탈리엔이라는 기관이 현재 외관상으로는 나름 멀쩡해 보이지만 내부를 들여다 보면 불안정하고 비틀거리는 느낌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2권에서 이 두사람을 통해 잘 극복되었으면 좋겠음.
여담으로 352페이지에서 데시뇨리와 요제프 사이의 논쟁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헤세가 언급하는데, 이전까지 전기를 읽어오면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이야기 전개를 잘 이해하고 있구나, 더 나아가서 이 문단은 내용을 잘 따라오는 독자들에게 있어서는 맨 위에 링크글에서 말했던 깜짝상자와도 같으며, 그렇지 않은 독자들에게 있어서는 친절한 헤세씨가 내용정리를 한번 짚어주는 상황으로 느껴짐.
테굴라리우스라는 인물도 언급하고 싶은데, 맨 처음에는 그냥 역사적 자료를 제공한 크네히트의 동료1인 줄 알았음.
그러나 테굴라리우스는 유리알 유희라는 분야에 있어서 거의 유일하게 크네히트와 동등한 수준의 연구동료이며, 120%의 상리공생 시너지를 내게 만드는 훌륭한 파트너임.
크네히트가 명인이 되고 그림자를 알아서 뽑아달라고 하는데, 헤세가 의도적으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때는 그림자로 누가 선출되는지 언급하지 않음.
이후 은연중에 갑자기 언급하는데, 뭔가 감동적이고 영화의 한 연출기법을 보는 느낌이었음.
"테굴라리우스는 명인이 지시한 일에 대해서는 온 힘을 기울였다. 그가 자신의 약점이라든가, 자기가 직무와 책임에 부적합하다는 것을 정말로 안타깝게 여기고 결함이라고 느낀 적이 있다면, 그것은 조수로서 관리로서 '그림자'로서 저 경탄할 만한 인물 곁에 머물며 그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랐던 바로 그 시기였다."
이외에도 야코부스 신부와의 관계 역시 아름답고, 그와의 대화도 굉장히 흥미롭고 인상깊은 부분이 많았음. 요제프가 명인이 되고나서 카스탈리엔 정신에 대해 일종의 연설을 하는 대목도 인상적이고, 마지막에 절망을 고백하는 데시뇨리와의 대화에서 조언하는 문장이 정말 아름다움.
"보게. 구름이 띠를 두르고 펼쳐져 있는 저 하늘 풍경을. 얼핏 보기엔 저기 가장 어두운 곳이 심연 같겠지. 그러나 이 어둡고 부드러운 부분은 구름일 뿐, 우주 공간의 심연은 이 구름 산맥의 가장자리와 협곡에서 시작되어 끝없는 허공으로 빠져드는 거라네. 거기 우리 인간들에게 명료함과 질서의 최고 상징인 별들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지. 우주의 심연과 신비는 구름이 검게 덮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네. 심연은 맑음 속에, 청랑함 속에 있어. 부1탁이야, 자러 가기 전에 잠시 이 별이 가득한 항만과 해협을 바라봐 주게. 그러면서 떠오르는 생각이나 꿈이 있거든, 물리치지 않도록 해 보게."
아직 2권을 읽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유리알 유희는 군더더기 없고, 낭만적이고, 은은한 불쾌감마저 전혀 없어서 너무 좋음.
지금까지 헤세책 싯다르타 - 수레바퀴 아래서 -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 데미안 - 황야의 이리 순서로 읽어 왔는데, 사실 싯다르타가 제일 마음에 들었음.
그런데 유리알 유희는 싯다르타랑 동급 혹은 그 이상으로 느껴짐. 처음에 언급했듯이 낭만적인 동화의 느낌이 있어서 그냥 읽다보면 기분이 좋아짐.
한편 데미안이랑 황야의 이리는 신화랑 결이 비슷함. 겉내용의 개연성이나 논리, 합리적 일관성보다는 내면, 상징의 깊이와 그 잠재된 직관에 더 비중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느껴짐.
아무튼 유리알 유희 2권 다 읽으면 싯다르타 지만지 번역으로 다시 읽고 유리알 유희도 다른 번역본으로 다시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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