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을 보는 문화에 대해 의구심이 들어서 그럼
당연히 어느 분야나 거장들은 있고 그 거장들에 대한 존경심은 있지
그런데 이과과목쪽에선 그 거장들의 원전을 읽어야한다는 의식이 거의 아예 없다고 생각함
유사문과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경제학도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보통은 거장의 생각이 훌륭하긴 하되, 시대적인 한계도 있고 핵심 아이디어를 더 발전시킨 더 나은 버전도 나타나기 마련이니
교과서라고 해야할지 정리된 책으로 다시 보는 일이 많지
원전을 봐야한다는 의식이 강한 곳은 내가 봤을 때 문사철인데
문학과 사학에 대해서는 이해가 가는 편임
사학은 역사를 다루다 보니 팩트의 자료로서 원작이 중요하고
문학은 아우라 어쩌고랑 결부시켜야 하나, 아무튼 작가의 작품이란 사실이 예술품과 분리 불가능하단 점에서 그렇다고 생각함
하지만 철학에서 원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쉽사리 이해를 못하겠음
물론 거기에는 자신의 철학담론까지 이어지는 전제와 과정이 들어있겠고, 보통 옮겨질 때는 이러한 내용이 간략화될거라고 생각하긴 함
하지만 철학은 진리를 찾는 학문이고, 특히 어느 시점까진 철학자들이 보편타당한 진리가 있다고 믿고 그들의 철학을 진행시켰음
어떠한 철학적 담론이 보편타당한 진리라면, 그 진리는 그 보편성을 보장받는 범위에서 어떠한 형태로 전달되어도 여전히 진리여야하는 것 아닌가?
내 생각에 그 진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받을 방법이라는게 원전을 보는 것일 이유는 없는거 같음
원전은 어떠한 사상에 대하여 그것을 처음으로 주장한 원작자가 그 시대 사람들에게 이해가 잘 가는 방식으로 쓴 것일 뿐 아닌가 싶음
(이건 내가 철학사를 시작으로 철학책을 읽기 시작했고, 철학이 철학자의 오롯한 창의력에서 나온게 아닌 일종의 시대정신을 표현한 것일 뿐이라는 믿음이 생겨서 그런걸지도 모르겠음)
그래서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원전을 읽어야한다고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서 모르겠음.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고 그러한 고행을 하는것에 대해 일종의 존경심도 있음
하지만 내 머리속에 생각나는 이유(특정한 철학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그 철학을 꺼낸 사람의 관심과 사랑으로 확장되어 추가적인 덕질을 한다고 생각) 말고 뭔가 있을까 싶어서 물어보는거임.
원전에서 그 사람이 무슨 철학을 도출했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원전을 보면서 사고과정을 따라가고 어떻게 도출했냐를 보는게 중요한거임
그 점은 공감하는데 그런건 이과과목이나 경제학에서도 마찬가지잖아. 기하학을 배운다고 각종 기하학 원전을 보진 않지만 후대인이 더 잘 정리한 이론들의 연계와 유도과정을 배우는거 처럼
일단 수학은 원전이 솔직히 큰 의미가 없는게 지금하고 기호체계나 교육과정이 너무 달라서 이해도 안되고 그냥 그 시간에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써놓은 증명을 이해하는게 나음 그리고 과학은 그 시절 과학은 의의는 있지만 현대의 관점에서 비과학적인 내용이 너무 많고 어차피 결론이 중요한거라서 원전 볼 이유가 별로 없음 그래도 프린키피아나 종의 기원 이런건 볼만하지 간단하게 말하면 이과는 사고과정보단 결론이 더 중요함
시대에 따라 진리가 달라졌다는 말이면 난 철학이 그게 더 심한거 같은데?
ㄴㄴ 철학은 뚜렷한 답이나 목표가 정해져있지 않지만, 이과과목은 목표가 정해져있음. 과학은 현실을 가장 잘 설명하는거고, 수학은 엄밀하고 효율적으로 증명하고 풀어가는거임. 과학자나 수학자가 어떤 사고과정을 가졌는지보다는 결론이 훨씬 중요함.
논쟁적인 주제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수학이나 과학은 명백한 답을 도출하는게 가능한데 철학은 그게 불가능하거든. 그리고 수학이나 과학의 문제는 좀더 추상적인 데 반해 철학의 문제는 좀더 구체적임. 최소한 구체적인 삶에서 시작되기 마련임. 그렇기 때문에 어떤 철학 텍스트는 그 자체 문학이라고 봐도 무방하고. 니체 같은 거. 개론서 읽는 거랑 다름. 마르크스 철학도 일종의 서사고. 꼭 원전을 읽어야 한다는 건 아닌데 철학 원전은 수학 과학 분야 원전에 비해 가치가 있다고 봄.
까스야 실존주의 좀 봤다고 꺼드럭거리지 말아라
아 다르고 어 다르니까
그리스어로는 존재, 라틴어로는 실체 이렇게 갈리는데 원전을 안 찾아야겠냐
그런건 있겠네. 철학이 변증론부터 해서 다른 학문보다 언어적/구문론적 현상에 굉장히 영향을 많이 받는거 같긴 하더라
근데 만약에 이유가 그것이라면, 번역서를 보면 원전을 보는 이유가 많이 퇴색되는거 아님?
더 와닿은 예를 든다면 전통적으로 그리스 철학에서 '덕'이라 번역되던 아레테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선 '좋음' 정도의 느낌
철학은 과학처럼 사건 → 진보의 역사가 아니라 가치 자체를 조명하는 학문인 건데 그 가치라는 게 끝없이 재판단되는 것이기 때문은 아닌지
좋은 말씀인데, 저는 원작자의 저작이랑 원작자가 저술한 생각이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어떠한 철학을 시대에 맞춰서 재평가한다는건 후자의 것을 재평가하는게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누군가가 그 재평가한 내용을 저작한다면 그걸 보는게 더 맞는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서요.. 쓰고 보니 제가 너무 발전이 빠른 분야 종사자라 그런 생각을 하나 싶기도 하네요
원전이 아니라도 상관없으니 칸트를 읽어보셈
일단 논의를 하고 싶어서 글을 쓴 것이기 때문에 좀 개개별로 반박을 하고 있는데, 답글 달아주신 분들 다 감사합니다.
납득이랑 수긍이 안되는 부분들도 다소 있지만 어떤 지점인진 덕분에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다른 학문들은 거장들이 쌓아놓은 시스템(기본 전제, 패러다임, 방법론 등) 위에서 작동하는데, 철학은 시스템 자체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라 거장들의 사고 과정을 참고하기 위해 원전을 들여다보게 됨. 철학 안에서도 시스템이 비교적 잘 잡혀 있는 전통(분석철학)은 원전을 그렇게 중요시하지는 않음.
그건 너가 진리를 보는 관점과 철학계(의 일부)가 진리를 보는 관점이 달라서이기도 함. 특히 현대 대륙철학은 객관적 진리를 아예 부정하거나 진리를 반복적인 해석을 통해 파악하고자 하기 때문에 어쩌고 저쩌고 흠 나무위키에 가다머 검색 ㄱㄱ
좆도 가치없는 유사학문임
난 네 말이 이해가 안 되는데, 원전을 읽음으로써 지금까지의 철학이 논의했던 것들을 이해하고 거기서부터 내 독창적인 철학을 시작하면 더 빠르게 위대한 성취에 도달할 수 있는 거 아님? - dc App
철학에 정답이 없다고 생각함- 늘같은 답을 할 수 없는 질문들에 대한 학문이기 때문에(분석철학이나 불확실성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범위를 좁히는 그런 철학을 제외하고) 과학처럼 계속 쌓이는 구조가 아닌 것은 그 반대의견이나 후대의 철학도 시대에 원전보다 더 높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불확실성의 완전한 해소 자체가 불가능하고, 반작용을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A라는 마음가짐과 B라는 마음가지중 하나를 선택하면 B의 효용은 얻을 수 없는 것처럼) 그래서 목적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 분석철학 전통은 논문 위주로 돌아가자너
이차문헌으로는 원전의 흐름을 완벽하게 정리하는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