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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의 사조는 '쾌락주의'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쾌락이라는 단어 자체가 광범위하고 보통은 퇴폐적인 개념들과 어울려 사용되기 때문에, 나도 쾌락주의라는 단어에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자신의 신경에만 좋으면 무슨 짓이든 해도 된다고 주장하는 사조로 오해했던 것이다. 선집을 읽고 나니 참 터무니없는 오해를 하고 있었다.
에피쿠로스의 사상을 다른 단어로 정의해 보라고 한다면, 나는 '직관주의'라는 말을 쓰고 싶다. 에피쿠로스는 삶의 목적을 쾌락에 두고 있다. 그런데 이 쾌락은 술이나 성행위를 통해 얻는 그런 쾌락이 아니다. 에피쿠로스의 쾌락은 지성에 근거한다. 세상을 사유하고, 이 사유를 바탕으로 자신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취하고 불필요하며 상념을 야기하는 것들은 피해 가는 것이 에피쿠로스가 제안하는 삶의 자세다.
여기서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핵심인데, 에피쿠로스의 지성은 여타 형이상학자들이 제시한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형이상학자들은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 물질 외의 가상의 개념들, 이를테면 이데아나 범주 같은 것들을 설정해서 복잡한 논리를 전개한다. 에피쿠로스는 유물론자로, 가상의 개념들을 최소화하려 한다. 그가 말하는 지성이란 '세계를 해석하는 능력'이 아니라 '세계를 있는 그대로 느끼는 능력'에 가깝다. 그는 이 논리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자연학을 제시한다. 사실 이 자연학에 대해 자세히 파고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시대의 과학과 너무 괴리가 크기도 하고, 결국 그도 현실을 해석하기 위해 가상의 개념을 만드는 실수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가 '세계 자체'가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는 원리'에 초점을 둔 것에는 충분히 의의가 있다. 세상이 운행하는 방식 자체보다 그것이 우리에게 느껴지는 방식을 바탕으로 세상에 대한 이론을 구현한 것은 흥미롭다.
그렇게 우리의 직관에 맞춰진 에피쿠로스의 자연학이 완성된다. 그 너머의 일은 우리가 직관적으로 알 수 없는 부분이며, 따라서 삶을 사는 데 의식할 필요조차 없는 것들이다. 인간의 인식의 한계가 그어진 셈이다. 이제 에피쿠로스는 자신이 그려준 한계 안에서 '평정심(아타락시아)'을 얻으라고 독자들에게 권한다. 우리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은 우리가 구태여 생각할 것도 없는 것들이다. 우리는 우리 곁에 없는 것들 때문에 불안해하는 일은 그만두고 우리 곁에 이미 있는 것들을 통해 만족을 얻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들 중에서도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만을 골라 만족만을 추출해 내는 요령을 익혀나가야 한다. 이것이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쾌락의 삶'이다. "쾌락의 삶을 만드는 것은 오직 맑은 정신으로 이성적으로 추론하여 모든 선택과 회피를 위한 근거들을 찾아내고, 마음에 가장 큰 소동과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잘못된 생각들을 몰아내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이자 가장 큰 선은 '사려 깊음'이다."
에피쿠로스의 말을 들어 보니, 내가 그동안 철학을 독학하면서 이론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물론 세계에 관해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자신의 삶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개념을 상정하고, 이에 몰두하다가 정작 실제 삶에서의 행복을 놓치는 것은 분명 실수다. 삶이 우선하고, 행복을 바라는 반성의 의미에서 이론이 그 뒤를 따라와야 한다. 문학을 읽을 때는 여러 번 깨달았던 덕목인데, 정작 철학 책을 읽을 때는 방금 읽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문장이 학술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골몰했던 것 같다. 결국 텍스트를 읽는 목적은 선현의 지혜를 내 삶에 연결하기 위함이다. 지혜를 시험공부하듯이 외우면 느끼는 바가 없이 삶과 유리된 채로 계속 지낼 것이다.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어떤 사조를 공부하든 그것을 내가 처한 현실과 직관적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그동안 플라톤의 개념들을 플라톤의 언어 그대로 주워 담는 것을 중시했던 나 자신을 돌아본다. 물론 그것에도 의미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플라톤의 언어가 나의 언어가 됐다면 내 눈에 보이는 결실이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 철학을 공부하면서 유지할 자세에 대해 다시금 성찰해 보아야겠다. 일단은 에피쿠로스가 설파한 직관의 중요성, 그리고 삶을 통제하는 지혜의 중요성을 꼭 기억해두어야겠다.
윤리와 사상에서도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주의로 나오더라. 물론 배우다보면 우리가 아는 쾌락주의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