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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의 내력부터 바로 간략하게 설명해보자
저자인 케이넨(慶念)은 안도(安藤) 가문 사람으로, 일본 불교의 종파 중 하나인 정토진종(淨土眞宗)에 소속된 승려였는데
우스키(臼杵)로 부임해와서는 우스키 성주 오타 가즈요시(太田一吉)의 지원으로 안요지(安養寺)라는 절을 세웠다고 한다
그런데 1597년 정유재란의 발발로 오타 가즈요시가 다시 조선으로 가게 되자, 케이넨은 62세의 나이로 가즈요시의 측근이자 전속 군의관으로서 동행하게 되었다
케이넨은 우스키에서 출발한 음력 1597년 6월 24일부터 우스키로 돌아온 음력 1598년 2월 2일까지 약 7개월 동안 일기를 적었고 그것에 일일기(日日記)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이것이 후에 일본에서 조선일일기(朝鮮日日記)로 알려지게 되었고, 국내에서는 임진왜란 종군기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 일기의 특징으로는, 승려인 저자가 종교인의 시각으로 정유재란을 체험하였기에, 전장의 비참함, 고향에 대한 그리움, 귀국에 대한 열망 등이 문장에 그대로 담겨 있으며
당시 한반도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또한 직간접적으로 나타나 있다
또 하루의 마지막에는 그날의 소감을 담은 와카(和歌)를 지었는데 전부 다 합쳐 300여수를 넘는다
그렇다면 어디 한 번 그의 행적을 따라가 보자
와카는 따로 『』로 표시했다
서문
처음에 오타 님께서 꼭 조선에 동행해주어야겠다고 말씀하셔서 삼가 승낙은 했지만, 도대체 왜 나를 부르시는지 모를 일이다. 이미 늙은 나로서는 종군 따위는 꿈에도 생각해본 일이 없었다. 더구나 여행이나 출진 경험이 없는 터라 상당히 고심했다. "오타 님의 건강을 보살피는 의술 때문이라면 젊은 사람을 쓰심이 어떻겠습니까"하고 말씀드렸지만, 꼭 함께 있고 싶다고 하시며 명령하시니 난처하기 그지없으나 할 수 없는 노릇이다. 특히 조선은 추운 나라로 알려져 있고, 험한 파도를 이기며 만 리의 해로를 헤쳐 나가야 하기에 두 번 다시 일본에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다. 늙은 나로서는 전대미문의 일이기에 어떨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으로 일기라는 것을 만들어서 보잘 것 없지만 풍자적인 와카를 읊어서 전쟁이 끝난 후에 기분전환의 재료로라도 삼을까 생각한다. 한 번 읽어보고 불 속에 던져 버릴 정도로 하찮은 것이다.
이미 60을 넘은 나이인데 성주가 꼭 같이 가달라고 하기에 어쩔 수 없이 동행하는 케이넨 스
조선의 추위와 험한 파도를 걱정하며 기왕 가는 김에 일기를 써보겠다고 다짐한다
자신의 일기를 하찮다고 표현하는데 실제로 그는 귀국 후 이 일기를 대대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6월 24일(음)
드디어 출항하는 날인데, 사가노세키(佐賀關)에 배가 도착하여 그 날 저녁에 하시모토 덴주로(橋本傳十郞)의 영접을 받으면서 이럭저럭하는 사이에 도사(土佐) 성주를 태운 배 한 척이 도착하여, 곧바로 기쁘게 대면하게 된 것을 즉흥적으로 읊어본다.
『우스키에 이르러 정박하는 황혼 무렵에, 벌써 도사 성주와 기쁘게 만나게 되었구나.』
그건 그렇고 아들인 하치로(八郞)은 환송하는 배를 놓쳐서 사가노세키까지는 올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현재 한 가지 섭섭하고 아쉬운 것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로다'하고 남몰래 눈물을 참을 길이 없어 비탄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밤이 깊어가면서 머리 속에 떠오르는 여러가지 것들과 작별을 고하고 마음을 정리하니, 이제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리고 곧 그날 밤 새벽에 사가의 가미우라(上浦)에서 배를 타야 된다고 하므로, 길을 지나가면서 서로 손에 손을 잡고 배까지 동행하여 걷기 시작했을 때 너무나도 이별이 아쉬워서 다음과 같이 읊고 배를 타고 출항했다.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기약도 없이, 지금 이렇게 정든 고향과 이별하는 늙은이의 서러움이여.』
그런데 사가를 지나서 해안에 다다랐을 때, 뒤를 돌아보니 우스키 방면은 멀리 안개가 자욱히 깔려 있고, 이렇게 떠나가는 것이 너무나 원망스러워서,
『남겨두고 온 부모와 처자식의 비통한 심정을 어떠할까. 불어오는 바람만이 가슴에 사무치는구나.』
두고 온 가족들 때문에 마음이 매우 심란한 스
정토진종은 승려들의 결혼을 허용하기 때문에 케이넨도 처자식이 있었다
6월 25일(음)
해안의 다케타즈(竹田津)에서,
『이른 새벽녘 종소리를 신호로 출발한 돛단배는 어느새 정박지인 다케타즈에 닿았도다.』
6월 27일(음)
아시야(蘆屋) 부근의 여울 아카마가세키(赤間關)로 달려나가고 있는 것을 보며,
『해안을 따라 전진하는 이곳이 바로 아시야 부근의 여울이구나. 고쿠라(小倉)의 항구 아카마가세키가 갈수록 아득하게 보인다』
6월 28일(음)
나고야(名護屋) 항구의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곳이다. 오늘은 각별히 신란(親鸞)의 기일이므로 필시 법당에서는 법회가 열리고 있을 것이다. 이를 다시는 참가할 수 없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빨리 배를 출발시키라는 지시가 있어서 그대로 닻을 올리고 출발할 즈음, 배 앞에 나아가 바라보면서 읊어본다.
『천수각이 구름 속에 우뚝 솟아있고 깃발과 지붕이 줄지어 있는 나고야 항구로구나.』
그런데, 이키(壹岐)로 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큰 섬이 있어서 사람에게 물어보니, "저것이라말로 겐카이(玄海) 섬이지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다음과 같이 읊는다.
『겐카이 섬이라고 듣고 보니 아득히 멀게 느껴지는구나. 이곳도 역시 매일같이 바뀌는 임시 숙소의 하나겠지.』
하룻밤 묵을 겐카이 섬이 눈 앞에 있어서 이와 같이 읊어보았다.
6월 29일(음)
저녁 무렵에 나가사키(長岐)의 이키 섬에 도착하여 배 안에서 다음과 같이 읊어본다.
『통과해가는 이 섬 저 섬의 믿음직한 자태여, 서로 모여서 이키의 가자모토(風本)을 이루고 있구나.』
배의 도착 장소는 가자모토 나루터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섬들도 있었다.
7월 6일(음)
쓰시마 섬의 도요사키(豊岐)라는 곳의 전방에서 성주가 탄 배에 따라붙게 되어 서로 기쁨을 나누며, 그날 밤은 배가 십 리 정도 더 나아가서 새벽녘에는 서로 가까이 붙이는 게 좋겠다는 것이었다. 오우라(大浦)라는 이름의 항구에서의 정박은 과연 좋다고 말할 수 있어서,
『가제사키(風岐)라고 해야겠구나. 성주에게 있어서는 오우라에서의 정박이야말로 특히 각별할 것이니.』
당시에 사용됐던 조선-일본간 항로를 그대로 따라 조선에 도착한 스
날씨가 좋지 않아 허비되는 날이 많았는데, 후대의 조선통신사들도 이랬던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와중에도 깊은 불심으로 정토진종의 창시자인 신란의 기일을 챙기는 모습
이후 계속해서 전장에서도 고승들의 기일은 웬만하면 기념하려고 한다
7월 8일(음)
죽도(竹島)로 출항하라고 해서 뱃머리를 죽도로 돌렸는데, 적선이 나타나서 사쓰마(薩摩)의 배 여덟 척을 빼앗아 불을 질러버렸기 때문에, 부산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적선은 싸움에 이겨 사기가 올라 큰소리를 지르면서 부산 항구의 입구를 막고 있었으므로, 오늘 밤은 반드시 적선이 항구 안으로 들어와서 불화살을 쏘아 배를 불태우려 할 것이라 하여 주위를 엄중하게 경계하고 있는데, 그러다가 배를 바꾸어 타면서 다음과 같이 읊는다.
『적선이 나타나서 공격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죽도에서는 여덟 척의 배를 읽었다.』
죽도왜성으로 향하려고 했으나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자 부산진으로 되돌아온 스
소규모 충돌이 벌어진 이유는 이때 원균이 일본군을 공격하기 위해 출정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이후 음력 7월 15일에 바로 그 칠천.량 해전이 벌어진다
7월 9일(음)
부산 거리에 상륙하여 바라보니 일본 여러 지방에서 온 상인들을 볼 수 있었는데,
『부산포 고을에는 여러 지방에서 온 상인들, 귀천노소 없이 밤이 으슥해질 때까지 시끄럽고 요란한 모습이구나.』
7월 10일(음)
적선이 거제도(巨濟島) 입구와 그밖의 섬에 이르러 있었으므로, 휴가(日向) 성주, 도사 성주, 오타 성주를 필두로 적을 무찌르고 불태워서 적병을 남김없이 죽이니, 그 이후부터 적선은 마침내 물러났다. 도도(藤堂) 성주께서 배의 선두를 이끄는 대장이셨지만 처음에는 공을 세우지 못하셨다. 전체의 형세에 의하여 비로소 선두의 전열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적선을 무찔러 공적을 올리기는 했지만, 아군은 미숙했기에 명예스러운 싸움은 아니었다.』
7월 11일(음)
부산에 불도를 수행하는 도장이 있으니 들어오라고 해서 찾아갔는데, 참으로 훌륭하고 진귀한 본존불을 안치하고 있었으며, 아래에 있는 불상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한 모습을 감명깊이 응시하며 공손히 배레하면서,
『그 어디에도 광영이 부드러운 모습이로다. 마음 속 깊이 진정으로 존경과 감사를 드리고 싶구나.』
계속해서 전투가 벌어지자 죽도로 갈 수 없어 부산에 머물게 되는 스
그동안 딱히 할 게 없으니 시장과 불당을 구경하기도 한다
(죽도왜성)
7월 15일(음)
죽도에 도착하고 보니 아득한 바다 위의 고향 산천이 보이지 않게 되어버렸구나. 이와 같이 저 멀리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고향에 늙은 몸으로 어떻게 돌아갈 수 있을까. 경국 돌아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오로지 빨리 극락왕생을 바라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무릇 덧없는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에 이와 같이 몹시 거칠게 느끼는 것이다.
『아득한 바다 위의 고향 산천이 멀어져 가는 것을 보며, 괴로운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죽도에 도착하는구나.』
7월 17일(음)
생각지도 않던 거울이 있어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니, 아이쿠 이게 웬 일인가. 어느새 이와 같이 늙은이가 되어버렸는가 하고 생각하면서, 옛말에 거울을 향하여, 그 거울에 비친 모습을 바라보면 웬 모르는 늙은이를 만날 수 있다고 한 말이 참으로, 조금도 틀리지 않는구나 하고 허탈감에 빠져서,
『조금 전까지는 청춘이었던 것만을 생각하고 노목이 된 것을 알지 못했네. 다만 오늘이라도 폭풍이 휘몰아쳐 극락왕생을 기다릴 뿐이도다.』
7월 26일(음)
다른 때와는 다르게 몸이 좋지 않은데다 감기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그렇더라도 '이런 때 고향에 있었다면 오랫동안 고락을 같이했던 처자들이 모여들어, 나를 둘러앉아 걱정스러운 듯이 "어떠세요"하고 물으며 위로하고 간호해줄 것인데...'하고 탄식하며, 베개를 비스듬히 베고 눈물을 삼키며 다음과 같이 읊어본다.
『그렇지 않아도 고통스러운데 내 고향이 그리워서 더더욱 견디기 힘들구나. 특히 감기에 걸린 오늘, 고향을 그리는 서글픈 내 심정이여.』
그렇게 어떻게든 죽도왜성에 도착했으나 거울을 보고 자신이 늙은 것에 충격을 받은 스
게다가 감기에 걸렸는데 간호해줄 사람도 없어서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여 고통받는다
7월 29일(음)
죽도에서 출발. 성주는 적을 염탐하면서 선두를 이끄는 역할을 담당하시어 전라.도 방면으로 전진했다. 지나가는 해로의 처음부터 끝까지 적선이 머물고 있었던 모든 섬에서는 적선이 파괴되어 불태워지고 있었고, 성들마다 시체가 산을 이루고 있었으므로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서 다음과 같이,
『죽도를 나와보니 시체들로 뒤덮인 섬들이 해변에 산을 이루고 있음이여. 도대체 어디까지 계속될는지 그 끝도 보이지 않는구나.』
8월 3일(음)
당항포(唐項浦) 이곳저곳 명소를 거쳐서 전라.도의 섬진강 입구에 들어가보니 끝도 보이지 않는 큰 강이다. 배를 수천 척 나열하려도 될 만큼 어느 쪽으로 가도 거침없는 곳이다. 끝이 보이지 않았으므로 다음과 같이 읊어본다.
『소문으로 듣던 섬진강(蟾津江)의 항구가 여기인가. 오십 리라도 백 리라도 끊임없이 들어갈 수 있구나.』
8월 6일(음)
들도 산도 섬도 죄다 불태우고, 사람을 쳐죽인다. 그리고 산 사람을 쇠줄과 대나무 통으로 목을 묶어서 끌어간다. 부모 되는 사람은 자식 걱정에 탄식하고, 자식은 부모를 찾아 헤매는 비참한 모습을 난생 처음 보게 되었다.
『들에도 산에도 불을 지르는데 혈안이 된 무사들의 소리가 시끄럽고, 마치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는 비참한 광경이구나.』
8월 7일(음)
이것저것 여러 사람이 약탈한 물건을 바라보니 탐이 나서, 스스로 부끄럽고 자신이 천하게 보이고, 이런 마음으로는 극락왕생할지 어떨지 생각되어,
『부끄럽구나. 보이는 것마다 탐이 나서 마음을 조용히 다스리지 못하고, 망념에 사로잡힌 나의 흉한 모습이여.』
칠천.량에서 조선군이 대패하자 전라.도를 점령하기 위해 진격하는 일본군
케이넨 스도 같이 죽도를 떠나 당항포를 거쳐서 섬진강 하구로 들어간다
가는 곳마다 약탈과 살육이 벌어지자 스는 탄식하면서도 약탈한 재물에 눈이 잠시나마 멀었던 자신을 반성한다.
8월 10일(음)
승선하고 40일 동안 지냈던 거적에서 나와, 말을 타고 진영 깊숙히 뒤따르게 되었다.
『마흔 날이나 생활했던 바다 위의 거적을 나와서 올라탄 것을 말로 바꿨는데, 말이 달리니 파도와 같은 울림이 느껴지는구나.』
8월 12일(음)
남원(南原)으로 넘어가는 높은 산은 일본에서도 아직 보지 못한 큰 산이다. 반석이 대단히 많고 뾰족하기가 칼과 같다. 여기에 또 공포스러운 폭포가 있다. 이 폭포를 잠시 그대로 보고 있노라니 온 몸의 털이 곤두서서, 마치 저승에 있는 죽은 다음에 넘어야 할 험준한 산, 아이가 죽은 뒤 간다고 하는 저승의 강이라 할 정도로 험한 강이다. 사람의 발로도 말의 단단한 발굽으로도 견딜 수가 없을 것 같다.
『소름이 끼치는구나. 저승에 갈 때 넘어야 할 험준한 산과 같다고나 할까. 구름이 둘러싼 봉우리를 나아가는도다.』
드디어 배에서 내려 육로로 이동하면서 큰 산(아마도 지리산)을 넘던 중 깎아지른 폭포에 놀란 스
조선 관광 제대로 하고 가신다
(남원읍성)
8월 13일(음)
남원성에서 오십 리 정도 가까운 쪽에 진을 치셨다. 이 성을 함락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논한 끝에, 저녁 무렵에 가까이 공격해 가기로 되었다. 명나라 사람 5, 6만 정도가 성 안에 있을 것이라고 알려졌다.
『전라.도의 성도 그 방벽이 거의 허물어져 가고 있다고 들으니, 모든 진에서 기뻐하며 휴식을 취한다.』
8월 15일(음)
성의 공격 준비가 시작되어 내일 새벽에는 공격해 들어간다고 한다. 벽의 가장자리에 딱 붙어서 벌써 해가 기울어 저녘 무렵이 되니, 모든 진에서 쏘는 포와 화살에 생각지도 않던 사람이 죽어 넘어지는 것을 보고 이렇게 읊어본다.
『적의 성을 향해 쏘는 포와 화살에 뜻밖의 사람이 죽는구나.』
그건 그렇고, 그날 저녁에 공격해서 성을 함락했다. 오타 성주의 부하들이 가장 먼저 들어갔기에, 그에 대한 포상의 주인(朱印)을 건의할까 말씀드렸는데, 그럴 필요는 없다고 하셨다.
8월 16일(음)
성 안의 사람들은 남녀노소할 것 없이 모두 죽여서 생포한 사람이 없다. 그러나 일부는 돈으로 목숨을 건진 사람도 있었다.
『무참하구나. 한 치 앞을 알지 못하는 덧없는 세상 일이라고는 하지만 하룻밤 사이에 남녀노소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죽었구나.』
남원성 전투에서는 조선-명 연합군이 패배하여 성 안의 모든 사람이 죽임을 당했다
쌓인 시체들을 보면서 이 세상의 허무함에 슬퍼하는 스
8월 20일(음)
전라.도 전주(全州)에 도착했다. 여기서 3일 정도 머물면서 교토(京都)에서 보내 온 전령과 대면하고 다른 소속 부대와 논의하여, 이윽고 지금부터 한양(漢陽)까지 진격하게 되는데, 점점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니 신속하게 길을 잘 파악하면서 전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는 아직 전주라고 한다. 전라.도 구역 안에 있는 주거 지역으로 보인다.』
8월 21일(음)
남원 전투에서 부상자가 많이 생겨 여기저기에서 약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는다. 또한 왕진을 요구하는 사람도 많다. 너무 딱하고 괴로워서,
『저마다 고통에 겨워하는 병자들로 가득하구나. 이런 때 내 몸 하나도 감당할 수 없어 한탄스럽다.』
전투가 끝나고 군의관으로서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스
남원성 다음으로는 전주로 향했는데, 남원 함락 소식을 전달받은 연합군이 퇴각하여 전주성이 비어있었기에 피해 없이 그대로 점령하게 된다
그러다 교토로부터 명이 내려서 조선의 수도 한양으로 가게 되었다
8월 27일(음)
감사하게도 기일 전날이었기 때문에 움막 안에서 신란 상인(上人)을 기리면서 기뻐했다.
『신실한 선지식(善知識)과의 만남은 결코 흔하지 않고 드문 일이다. 깨달음을 얻고서 원래의 번민이 많은 세상으로.』
그런데, 또 여기 진영에서 각각 집회가 있었는데, 배가 정박 중인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소문이 꼬리를 이어 모든 군인들도 기뻐한다.
『고국에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마음의 즐거움은 펄쩍펄쩍 뛸 정도로 기쁘기 그지없구나.』
9월 9일(음)
충청도 진천(鎭川)까지 밀고 올라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으므로, 조금이라도 배가 있는 부두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한층 더 기분이 좋고 즐거워서 읊는다.
『눈 앞에서 길을 헤매다가 이윽고 진천을 향해서 가는가 보다. 이와 같이 앞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야말로 기쁘구나.
9월 14일(음)
여기에서 배가 정박해있는 부두로 퇴진하라고 하니, 모든 사람이 즐거워함을 말로 다할 수가 없다. 소와 말에 이르기까지 원기를 회복한 것 같다.
『퇴진한다고 들으니, 즉시 모든 대군이 즐거워하며, 말도 또한 원기를 회복하는구나.』
전라.도와 충청도를 점령하자 일단 퇴각하는 일본군
음력 9월 7일에는 직산에서 명군과 소규모 충돌이 벌이지기도 했다
명량 해전이 생각날 수도 있으나, 그건 음력 9월 16일에 벌어졌기 때문에 이때의 퇴각 자체는 무언가 다른 이유 때문이다
(경주읍성)
9월 19일(음)
경상도 상주(尙州)라고 하는 고도(古都)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모든 부대와 소와 말까지도 피로를 풀면서 며칠 동안은 머문다고 하여 즐거워서,
『전해들으니 여기 이 고도에서 마음을 정해 며칠 동안 휴식을 취한다는구나. 하늘이 맑게 개는 것처럼 기쁘다.』
9월 29일(음)
이곳이야말로 훌륭한 산성이어서 각별히 이곳에서 더 머물고 싶지만, 날이 밝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 쌀과 같은 곡식은 어느 정도 있다. 그것을 보고 모든 군사가 서로 기뻐한다.
『이곳의 산성이야말로 참으로 뾰족뾰족 솟은 바위로구나. 마음도 언행도 이끼 옷을 입고.』
이곳에 머무는 동안 젊은 사람들을 많이 잡아들였고, 그 수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주계(主計) 성주의 부하들 중에서도 뛰어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각 방면에 군사들을 파견해서 적을 공격했다. 여기 또한 고도라고 전해 듣는다. 경상도 영천(永川)이라고 하는데 사실인지...
10월 1일(음)
이 근처에 명나라 군사가 많다고 하여 주계 성주가 성 안을 순찰하는 동안, 답답하고 따분하게 하루를 보냈다. 하루라도 빨리 부두에 있는 배를 탔으면 하고, 고대하는 마음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그러나 온 산을 샅샅이 뒤지라는 명령이다.
『오늘도 다시 영천에 머물면서 허무하게 날을 보내는 게 왜 이리 안타까울까.』
10월 4일(음)
경주(慶州)에 머무르게 되어 모두 쉬며 식사를 준비했다. 또, 이곳에는 더 훌륭한 숙소도 있고, 성도 있었지만 모두 도망갔고 전부 불타 부서지고 무너져 있었다. 여기에 종(鐘)이 하나 있다. 부피가 다섯 발, 길이가 열 자 남짓한 정도이다. 태풍은 더욱 더 거세지고 추운 곳이다. 가끔 고향 사람들을 꿈 속에서 만나기도 하여 한 수 읊는다.
『몸에 파고드는 이슥한 밤, 태풍이 전해주는 고향 사람들의 모습이 환영처럼 보이는구나.』
충청도에서 경상도 상주, 영천, 경주로 계속해서 퇴각하는 일본군
그런데 명군이 점점 일본군을 추격하기 시작한다
10월 7일(음)
울산(蔚山)을 향해 가는 길이 너무 멀어 도중에 하룻밤을 지새웠다. 조릿대와 같은 작은 대나무와 수숫대를 주워모아 움막을 치고, 거센 바람이 부는 쪽에 등을 두고, 앞에는 불을 지펴서 찬 바람을 막으면서 하룻밤을 지새운다. 아아, 고향에서부터 동행한 사람들은 법의(法儀)의 마음가짐을 어떻게 하고 있을까. 부주의하면 큰일이겠다. 이렇게 내가 생각하는 것을 언젠가는 찾아뵙고 말씀드려서, 서로가 신심을 깊게 하여 극락왕생을 해야 할 것이다.
『고향에서부터 동행한 사람들이 부처님에 대한 마음가짐이 부족하구나. 석가여래의 은혜를 언제쯤 깨달을 것인가.』
10월 8일(음)
오늘은 배가 머물고 있는 부두에 도착한다고 하여 모든 군사의 기쁨은 말로 다하기 어렵다. 나 자신의 기쁨은 다른 것에 필적할 만한 것이 없다. 길에는 이미 고향으로부터 급한 소식들을 전달하는 자가, 오타 성주의 대리인으로부터 편지 연락이 있다고 한다. 빨리 배로 오라는 이야기를 듣고 길을 재촉한다. 그 편지를 빨리 읽어봐야지 하는 마음이 끊이질 않는다.
『울산에 도착하자마자 고향에서 보내온 자식의 편지를 읽는 것이야말로 기쁘도다.』
10월 10일(음)
그런데, 자식들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아서 바람이 어느 정도로 부는지, 수위는 또 얼마만큼이나 올라갔는지 붙잡고 물어보지 못하는 것은 괴롭구나. 아주 쉬운 일일 것인데 하고 부질없는 걱정과 원망으로 이와 같이 읊는다.
『자식들에게서 서간이 오지 않아서 어떻게 되었는지 안절부절 못하면서 걱정만 하고 있다. 바람결에라도 고향의 소식을 들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자식들은 어려서 그와 같은 생각에 미치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와 함께 수행하던 사람들은 어떤 상황인가를 전해줄 수 있으련만. 편지 한 통 정도는 보내 주었으면 좋으련만. 이와 같이, 소식 하나 없어서 유감이라고 서운해하면서 다음과 같이 읊는다.
『인간이란 과연 진실된 우정이나 사랑이 없단 말인가. 바람결에라도 소식이 오기를 기다렸는데 아무런 연락이 없으니 말이다.』
드디어 울산에 도착해서 고향 소식을 듣게 된 스
하지만 자식들과 동료 스들이 보낸 편지는 없어서 삐져버린다
이때 현탐이 좀 왔는지 거의 두 달 동안이나 일기에서 부처님만 찾게 된다
(울산왜성)
11월 11일(음)
왼쪽 오른쪽 할 것 없이 대장장이들이 무기를 만드느라 쇠를 두들기는 소리, 칼이나 도끼를 쓱쓱 가는 소리가 새벽이 가까워지면서 한층 더 오싹해져서 잠을 이룰 수가 없는데, 밤이 으슥한 시간부터 연장 두들기는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즉흥적으로 읊어본다.
『대장장이와 목공이 서로 무기를 어김없이 두들겨 다듬는 연장에서 빨간 불꽃이 튀는구나.』
상하 관계없이 누구든지 괴로움은 있는 것이지만, 특별이 이같은 이들을 열심히 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읊어본다.
『어느 누구라도 물건이야 필요하겠지만,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일까. 마치 저승사자의 지팡이 같구나.』
11월 12일(음)
철포에 올라가 표식을 다는 무리들이나 배를 조종하는 선원들 같은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안개를 헤치고 산에 올라가 목재를 자르고 저녁에는 별이 총총할 때 돌아오며, 의욕이 없고 해이한 자는 쫒겨나며, 또 적에게 목숨을 빼앗기기도 한다. 명분도 없는 그릇된 행위이기에 백성들의 서글픔은 판단력을 흐리게 하여, 조선인의 목을 잘라서 사거리에 세워놓도록 만든다.
『저 정도까지 어둠이 깔린 밤중에 심하게 작업을 강요당하는 모습은 마치 귀신처럼 보이는구나.』
마음대로 하라고 체념하면서, 늙은 몸이 이와 같이 된 것도 정해진 인과에 의한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할 수조차 없을 때도 있으나, 그저 내 자신의 죄과라고 생각한다. 이유 없이 사람을 증오하는 것도 허무한 세상의 소행이라고 되뇌이면서, 그런 식으로 원망하지 말자고 마음 속에 다짐하면서 읊어본다.
『혹사당하고 있는 사람은 전생의 죄업에 의한 것이며, 다른 사람의 수중을 들도록 정해진 것은 구생신(俱生神)의 처벌이다.』
이와 같이 팻말에 조목조목 기록하여 조금이라도 잘못이 없도록 조심하고, 이와 같이 먼 곳에 끌려와서 한 순간의 쉴 틈도 없이 사역당하는 것은 도저히 인간의 행위라고는 볼 수 없다.
『잘못이 있으면 그것을 지독하고 격렬하게 몰아붙이면서, 괴롭고 싪어하는 표정의 눈초리도 죄라고 하는구나.』
일본군 진영에서 맡은 일 상관없이 모든 인원들에게 명령하여 나무를 베어오게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사람들을 너무 혹사시키자 탄식하며 이를 비판하는 스
왜 이렇게 되었냐면 이때 울산에서는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연합군을 막기 위해 울산왜성을 건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케이넨 스가 따르던 오타 가즈요시도 울산왜성 건설을 감독했다
이 40여일만에 지어낸 성이 조선-명 연합군의 발목을 두고두고 잡게 된다
11월 17일(음)
태합(太閤)에게서 온 전갈이 도착했다. 그 내용은, 조선에서 귀국하는 일정을 잘 계획하여 인부 한 사람도 남지 않도록 주의하여 전원 배를 타라고 하는 것이었다. 아아, 기쁜 소식이라고 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기뻐했다.
『각 지역에서 출전한 모든 백성들이 태합의 귀국 명령을 새긴 주인(朱印)을 보고 기뻐하는구나.』
이와 같은 것이야말로 백성을 가엾고 애처롭게 여기시는 마음이지만, 채비를 재촉만 하고 굶주인 승려에게 주는 식량은 충분하지 못해서, 산으로 내쫒긴 자들도 있다. 얼마나 냉혹한 행위인가.
『태합도 걱정해주시는, 농민들을 희생시키는 고통스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구나.』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떨어진 태합(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귀국 명령
하지만 이 와중에도 귀국 과정이 졸속으로 진행되어 낙오되는 자들이 발생하고 있다
지위를 막론하고 고생하는 광경을 보며 인간 세상의 덧없음 느끼는 스
11월 19일(음)
일본에서 온갖 상인들이 왔는데, 그중에서 사람을 사고파는 자도 있어서, 본진의 뒤에 따라다니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구입해서 줄로 목을 묶어 모아 앞으로 끌고 가는데, 잘 걸어가지 못하면 뒤에서 지팡이로 몰아붙여 두들겨 패는 모습은 지옥의 아방(阿傍)이 죄인을 잡아들이는 모습과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각자의 직업은 각기 마음에서 원하고 좋아하는 것에서 연유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온갖 노예상들이 몰려들었구나. 빨리 숨는 게 좋다. 대낮에 돌아다니는 젊은이들은 무사들에게 붙잡혀서 개처럼 목에 줄을 매고 노예상들에게 팔려가게 된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일본에서 노예상들이 건너와 조선인들을 노예로 팔아치웠다
그 광경을 보고 너무나도 끔찍해하는 스
자세한 수치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팔려나간 사람의 수가 꽤나 많았던 것으로
11월 30일(음)
아아, 강이 얼어붙은 것을 보니 듣던 것보다도 월씬 대단한 상태여서 즉흥적으로 읊는다.
『들었던 것보다 직접 보고 나니 더욱 더 몸이 움츠려들 정도로 한기가 드는구나, 얼어붙은 강이 보통이 아니로다.』
배를 항구의 입구까지 꺼내려고 선원들이 얼음을 깼지만, 얼음이 더더욱 두텁게 얼어서 배를 움직일 수도 없을 뿐더러 도무지 아무런 대책이 없어 전부 초조해하는 모습들을 보고 이와 같이 읊어본다.
『선원들조차 어찌할 수 없어 초조하게 만드는구나. 강물이 얼어붙어 오도 가도 못한 채로.』
12월 7일(음)
참으로 별 수 없는가 보다. 강 표면의 얼음을 큰 도끼로 배가 왕래할 정도로 깨서 땔감을 실은 배가 건널 수 있게 하려고 시도하는 걸 보니, 대단히 공포스럽고 경탄스러운 것이었다.
『전례가 없는 일이로다. 얼음을 깨고 선원들이 배를 들어오게 하려고 한다. 몸을 위태롭게 애태우면서.』
너무나도 강하고 거센 바람에 의해, 숙소 뒤 틈새로 황소바람이 들어온다. 그렇잖아도 어설픈 움막이 더더욱 볼품없이 부서져서, 강풍을 그대로 몸에 받으면서 이처럼 읊어본다.
『거센 바람이 숙소의 온갖 틈새로 불어오는데, 더더욱 견디기 힘든 것은 바람에 눈송이가 섞여 들어오는 것이다.』
12월 17일(음)
아아, 이렇게 적어두는 일도 과거의 체험이 되어 버려서, 허무하게 다시 보지도 않고 버려지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어리석고 쓸데없는 내용이로구나 하고 계속 생각해 본다.
『무엇인가를 말하여 남겨 놓는 것도, 무슨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무료할 때의 옛이야기 소재가 되어 버려지는구나.』
이 세상의 유물로 서적에 비교될 만한 것은 없다. 후세를 위한 유물이니 정성으로 잘 읽게 해서, 전해들은 사람도 공감하고 그 정취를 느끼게 해야 한다.
『사람이 남길 유물로서는 오직 필적에 버금갈 것은 없다. 여러 가지 생각과 경험은 후세에 증거로.』
조선에 오기 전부터 걱정했던 추위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하자 너무 고통스러워하는 스
울산 태화강도 꽁꽁 얼어서 선원들은 얼음을 깨서 땔감을 실은 배를 옮겨야만 했다
하지만 진짜 고통은 아직도 시작도 안 했다
후세에 남길 일기나 계속 잘 쓰자고 다짐하는 스
(조선군진도 병풍, 울산성 전투를 묘사함)
12월22일(음)
아침에 성의 동쪽에서 연기가 솟아 오르고, 대포 소리가 연달아 들려와서 어떻게 된 일인가 하고 물으니, 명나라가 개입하여 한 움막에 불을 지르고 밤에 급습해 왔다고 말한다. 그것 때문에 각 전령들이 모여 있었는데, 아침식사 할 무렵 그 공격이 맹렬해짐에 따라 반드시 성으로 습격해 올 것이라고 하자, 모두가 이구동성로 습격해 올 것이라고 말하며 제정신을 잃고 우왕좌왕 흩어지고, 벌써 오타 님이 부상을 당하셨다고 전해졌는데, 오타 님이 몸소 성에 들어가서 시찰하는 도중에 변을 당하셨다고 한다. 생각 이상으로 부상이 심하셨다. 옆에서 치료하면서,
『재빠르기가 이루 말할 데 없는 조선군과 명군들이로구나, 구름과 안개와 같이 순식간에 공격하고 철수해버렸다.』
이러한 상태인데 아군들이 자기들끼리 난쪽해지는 것이야말로 볼썽사납다.
『내가 먼저 안전한 곳으로 숨겠다고, 동료들끼리 점점 난폭해지는 것은 고통스럽다.』
이와 같이 오타 님의 부상을 치료하며, 그곳에서 밤을 새우며 간호를 하며 읊어 본다.
『오타 님께서 부상을 당하셔서, 나도 같은 천막의 침소에서 밤을 새워 간호를 한다.』
12월 23일(음)
새벽녁에 마음 속으로 생각한 것이 있다. 오늘은 법회의 전야이므로 기쁘고 좋은 날인데, 만일 명군이 성을 공격하여 부쉬버리면 기분좋게 왕생을 이루어야지 하고 밤을 지새우며 마음 속으로 기쁨을 나타낼 뿐이다.
『지식만 가지고는 체험하기가 어려우리. 불가사의하게도 법회가 열리는 날을 선택하여 왕생을 이루게 하시는 그 은덕을.』
『이 세상을 지배하는 불법의 빛을 높이 들고 어리석은 우리들을 위하여 길잡이가 되어주시는구나.』
『팔천 번이나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들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어 주셨던 것이구나.』
이와 같이 밤을 지새우며 졸지도 않고 감사를 드렸다. 그렇게 해서 밤을 새니 성은 어디라고 할 것도 없이 사람들로 꽉차서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들도 산도 분별이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데, 오타 님도 성의 중앙 건물에 가시려고 가마를 타시고 성곽 정면에 있는 곳으로 들어 가셔서 아사노(淺野) 좌경대부(左京大夫)와 함게 계셨는데, 성문의 문이 아직 없어서 명군이 난입하여 맹렬하게 벽 위 돌담 밑에서 불화살을 쏘아댄다. 더욱이 주고쿠 지방의 무리들, 좌경대부님, 오타 님의 물건들이 수없이 많아서, 부하나 무사들의 침구와 의복을 넣은 상자 등 여러 가지 재보에 불을 붙이니, 모두 남김없이 타오르는 연기 때문에 눈을 뜰 수도 말을 걸 수도 없었다. 그 불 때문에 성에 늦게 들어온 인부, 무사들은 수천 명이 타 죽었다. 그런데, 명군이 벽에 바짝 붙어 공격해 올라와 난입할 때에, 우리들에게 료신(了眞) 스님이 말을 건네는데, "오늘은 매년의 기일로써 매우 좋은 날이므로, 기쁨으로 왕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기뻐하며, 문득 웃으면서 나에게도 힘을 북돋아 주었다. 지당한 이야기로, 여기야말로 왕생의 정원이로다. 감사하게도 일본, 명나라 사람들이 제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아마 지금 이 순간에 왕생을 이룩한다면 신통력으로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꾸어 큰 쾌락을 누리며, 자유자재로 어떠한 장소에도 달려 갈 수 있는 것은, 많은 사람 가운데에도 흔치 않은 일일 것이다. '저런 성 안에 있는 가없은 자들이여'라고,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하여 마음 속은 울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나타내지 않고, 이제일까 저제일까 하고 왕생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사이에 읊는다.
『죽음과 인연이라는 것은 각각 다르기 때문에, 즉 공덕을 입은 왕생은 곧 수행에서 얻은 깨달음이나 공덕을 결코 잊어버리지 않는 단계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절명시를 읊고 왕생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 시각이 오지 않는구나. 일본의 운도 아직 다하지 않았는지, 명군도 물러 갔다.
12월 24일(음)
전날과 같이 밤을 지새우며 졸지도 않았다. 아마도 한밤 중과 미명 사이에, 다시 벽에 붙어 올라와 공격할 즈음에는, 아군은 물도 식량도 없었기 때문에 군병들은 방어할 도리가 없었다. 내일은 반드시 성이 적의 수중에 떨어질 것이라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며, 밤을 지새우면서 부처님의 자비에 감사드리고, 그 마음을 읊는다.
『평안한 극락 정토의 아름다운 연대(蓮臺)에서 모습을 바꾸어, 마음이 가는 곳이면 그 어디나 자유자재로 날아갈 수도 있도다.』
『마음을 흐트러지 않으리라고 끊임없이 다짐하면서, 무엇을 하더라도 나무아미타불.』
『자신의 처한 상황이나 연령을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황송스러워하며 아미타불의 은혜를 우러러 공경한다.』
이와 같이 기도하고 있는데, 먼동이 터서 바라보니, 다시 맹렬히 공격하려고 사람들을 시켜서 성벽을 올라오려고 하고 있다. 오늘은 틀림없이 새로운 전법을 써서 맹렬하고 끈질기게 공격해올테니, 자첫 잘못되어 성이 적의 수중에 들어간다면, 그것은 곧 왕생의 인연에 의한 제삿날이므로 감사드리면서 이와 같이 읊는다.
『기쁘게도 오늘은 특별히 선지식의 기일인데, 그와 똑같은 날에 왕생을 하는구나.』
이와 같은 상태에서, 명군 또한 부상자가 많이 나오고 대포에 맞아 수 명이 죽으니, 뒤로 물러나서 성을 에워싸서 자연히 항복토록 하려는 계략과 비슷한 형세로 보여서, 곤혹스러움이 극에 달하여 성 안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 무척 곤란했다.
12월 25일(음)
물이 고갈되어 곤란한 상태였는데,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몹시 심하게 내려서 성 안의 모든 사람들이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일본은 신국(神國)이기 때문에 자비하신 마음으로 구해주기 위해서 비를 내려 우리들의 갈증을 적셔주시는도다.』
그 정도로 물이 없었으므로, 우리들은 손을 씻을 물조차 없었다. 어떻게 씻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다 못해 빗물이 고인 곳에서 물을 퍼서 종이에 적셔서 손을 간단히 씻었다. 곤혹스러웠으나 하는 수 없는 일이다.
『오늘까지는 손 씻을 물도 없었더니, 비가 내려 그 물을 떠서 손을 정결하게 씻게 되었다.』
음력 12월 22일 조선-명 연합군이 울산왜성으로 접근하기 시작하여 제1차 울산 전투가 시작된다
연합군은 성벽을 돌파하려고 시도했으나 피해가 크자 포위해서 말려죽이려는 작전을 세운다
이렇게 되자 건설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성 안에는 식량도, 물도 부족했기 때문에 여럿이 죽어나가게 된다
이때 케이넨 스는 오타 가즈요시가 부상을 입자 직접 간호했고, 어차피 늙은 몸인데 여기서 죽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한 해가 다 가고, 음력 1598년이 되었다
1월 2일(음)
성을 포위하고 있는 명군을 아군이 포위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오지만, 아직껏 도움이 못되고 무익하다. 어째서 그럴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새벽 부터 아군의 깃발 끝이 보였으므로 너무나 기쁜 나머지 읊는다.
『적군의 포위망을 둘러싼 아군의 포위망이 보이자, 성 안의 모든 사람들이 다시 활기를 되찾는구나.』
1월 3일(음)
요즈음 4, 5일 동안은 명군도 화의를 하자고 제의해 와서, 여러가지로 가토 님과 함께 화해하는 문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오늘은 일찌감치 화해 조짐도 깨져 버려서 그에 대하여 즉흥적으로 읊는다.
『요사이 며칠 동안은 일본과 명나라가 화해하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었는데, 오늘은 그것을 깨버리는구나.』
1월 4일(음)
새벽부터 다시 공격해 올라와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대포, 돌, 불화살을 쏘고 던저며, 사다리로 돌벽을 올라오려고 하는 지점에 했불을 집어던진다. 활을 쏴서 기어오르는 자들을 떨어뜨리고 있는 사이에 날이 밝아오니, 뒤로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자 보아라. 이미 우리가 이겼다."라고 말하자, 성 안에서도 분발했고, 적의 뒤를 포위하고 있던 인원도 깃발을 고쳐잡고 뒤를 쫓으니, 언제 공격했냐는 듯이 갈팡질팡하여 도망친다. 직접 눈에 보이기는 하지만 허둥지둥 도망가는 것을 보고, 그대로 도망가게 하자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다. 참으로 기쁘기 그지없어서 읊는다.
『적군이 도망가는 것을 보니 더더욱 기쁘고, 이제야 말로 그리운 고향을 생각할 수 있겠구나.』
결국 함락 직전까지 몰리게 된 울산왜성의 일본군
화의를 맺으려고 시도도 해보지만 무산되고 다시 공격이 시작된다
그러나 울산성을 구원하기 위해 지원군이 몰려오고, 큰 피해를 입은 연합군은 퇴각하게 된다
결국은 케이넨 스도 아직은 죽을 운명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서생포왜성)
1월 5일(음)
밤이 깊어질 무렵, 오타 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케이넨은 어서 빨리 배에 타라고 하신다. 너무 기쁘고 꿈만 같아서, 현실인지 무엇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다. 료신 스님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성을 내려올 때는 눈물을 흘리면서 너무 기뻐서, 이 이야기도 공중에 뜬 것과 같이 그 심경을 비교할 바가 없다. 이러면서 배에 타고는,
『마치 꿈만 같구나. 고국으로 돌아가는 배를 타게 되어, 꿈을 꾸는 듯한 현실 속에서 노를 베개 삼고 있으니. 여태까지의 고통은 결코 전부 잊어버릴 수 없구나. 생각해보면 참으로 마음이 오싹해질 정도의 나날이었다.』
1월 6일(음)
울산에서 배를 출항하려고 했을 때, 너무 기뻐서 이같이 읊는다.
『주위를 살펴 보니 강가의 주변까지도 울산(蔚山)이로다. 귀국하기 위해 서둘러 배를 띄우는 오늘의 이 순간, 기쁨이여.
1월 7일(음)
서생포(西生浦)에 도착하여 하룻밤을 샜다. 이곳은 가토 주계님이 맡고 계신 성이다. 배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즉흥적으로 읊는다.
『삼국의 전쟁에서 가토 주계님이 명나라와 조선의 병사들을 무찔렀다.』
드디어 귀환하라는 명령을 받게 된 스
울산에서 배를 타고 서생포로 이동하나, 고향으로 가는 여정은 계속해서 지체되고 만다
1월 17일
저녁에 귀국하여도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아, 참으로 감사하구나. 광대한 부처님의 은덕의 정도는 정말 황송할 따름이다. 이런 자비를 입고 있으면서도 게으르고 어리석은 생각을 한다면, 다시 부처님의 가호에 보은의 예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한층 더 신심을 북돋아 방심하지 않도록 두 번, 세 번 마음가짐을 다져야 할것이다.
『귀국의 소식을 휘익 불어오는 바람결에 들으면서 마음은 들떠서 흐느적거린다.』
『귀국의 소식을 휘익 스쳐 지나가면서 알려주는 그 바람 소리에, 기쁨은 하늘을 오를 정도여서 그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구나.』
1월 19일
부산에 도착하여 아직 배에서 내리지 못하고 있는데, 고향 소식을 듣고 한층 더 기쁨의 정도가 비할 데 없다. 서둘러 한시라도 빨리 고향 사람들과 만나고 싶은 생각 뿐이다.
『부산해에 도착했다 싶으니 고향 소식이 들려와서 한층 더 마음이 바쁘구나.』
1월 21일
해가 저문 후 맑게 개서 순풍이 되니, 새벽부터 출선하여 그날 저녁에는 쓰시마 섬의 서쪽 부두에 도착했다. 곧 언덕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바로 배를 탄 뒤에 문득 생각이 나서 읊는다.
『오늘만큼은 염원하던 배를 타게 되어, 쓰시마 섬 서쪽 항구에 닿았도다.』
1월 24일
기일이긴 하지만 귀국 중이기 때문에 마음 속 깊이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말씀드릴 수 밖에 없다.
『밤과 낮의 격차가 없도다. 언제나 기쁨으로 나무아미타불의 여섯 글자를 정성으로 외운다.』
『이번 여행에서 살아 돌아와서 이끼의 해협에 도착했구나. 아아, 빨리 돌아가고 싶다고 염원하는 사이에 멀리 겐카이가 보인다.』
이 와카는 명소를 보고 느낀 마음을 읊은 것이다. 이키의 지역인데, 장소의 이름은 세토(瀨戶)다. 그곳을 출항하여 저녁에 도착한 곳은 겐카이라고 하는 곳이다. 거기서 정박하여 즉흥적으로 읊은 것이다.
1월 27일
아아, 이번 제사날에는 고향의 나루터에 도착하기를 조선을 떠날 때부터 기원하고 있었는데, 항해하는 관습이 그러하므로 순풍이 불기를 학수고대하면서 겐카이라는 곳에 체류하며 속절없는 날을 보내어 마음이 깨끗함과 순수함을 잃어간다고 생각된다.
『죄가 많고 깊으며 악에 바친 우리들에게는 오로지 나무아미타불을 외는 것만을 권유하고 계실 것이다. 가르침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아미타의 명호를 외우기만 하면 된다는 관대한 서원을 선택하셨도다.』
아침 식사 후 겐카이를 출발하여 밤이 될 무렵 시모노세키(下關)의 작은 해협 안에 배가 도착하여 다음과 같이 글을 맞춰 읊어본다.
『아침에 출발하여 저녁에는 해협 안으로 들어왔는데, 숙박한 뒤에는 바로 내일을 향한 출발이다.』
드디어 귀국하는 배를 타게 된 스
부산에서 출항하여, 중간중간 날씨가 험한 날에는 쉬어가기도 하며 드디어 일본 본토에 접근한다
(구 아미다지, 현 아카마 신궁)
1월 29일
시모노세키의 날씨가 좋지 않은 까닭에 체류하게 되니, 사람들이 "자아, 아미다지(阿彌陀寺)에 갑시다"라고 말해서 참배하고, 안토쿠(安德) 천황의 초상화를 배견하니, 감격하여 눈물을 참을 수 없다. 그런데 이와 같이 이 변방 지방에 모셔놓고 이러한 무상한 현실과 직면하게 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밖에, 일족의 초상화, 신분이 높은 분들, 기모노를 입힌 상궁들, 이들 모두가 한 칸의 방에 걸려 있다. 그 다음에, 조케이(常經), 노토(能登)의 수령, 노리쓰네(敎經)의 초상화, 이상 12일의 모습은 모두 한 가지로 그리고 있다. 그 다음의 방에는 안토쿠의 탄생 모습부터 시작하여, 겐지(源氏)의 군대가 시코쿠(四國)에서 배로 해전을 하는 모습, 나가토(長門)의 아카마가세키까지의 상황을 모두 그려 나타내고 있다. 진정코 비교할 것이 없을 정도이다. 아미다지의 주지 스님이 나오셔서, 그때의 상황이 하나하나 기록되어 있는 것을 읽어서 들려주셨다. 아아, 진실로 허무한 이 세상은, 오늘은 내일의 과거가 되어 흘러가 버리는 것으로, 이와 같이 적고있는 보잘 것 없는 글까지도 모두가 옛일이 되어버리겠지만, 늙어 모습이 흉해지는 것은 어떠한 사람도 피할 수 없는 일이기에, 그 이전에 후
세를 생각하여 보고 느낀 정경을 남겨서, 때에 따라 화제거리라도 되었으면 하고 염원하고는, 이 늙은이도 늘 이와 같은 일만을 생각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카(狂歌)를 지어온 것이다. 이것을 보는 모든 사람들은 마음에 새겨서 여기에 기록해놓은 것을 읽어보아야 할 것이다. 모든 일에 있어서 사리분별이 깊은 사람이라면, 하이카이(俳諧)와 같이 우스갯소리까지도 마음에 두는 것이야말로 그 무엇보다도 기특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에 두길 바라며, 특히 젊은 사람은 충분히 마음에 새겨 교훈으로 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일 것이다
『참으로 가련하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구나. 그 지난 과거에 이미 구름이 되어버린 사람들에 대하여.』
『구름이 되어 비가 내린 뒤에는 그 누구라도 아무 흔적도 없어지는 것을, 그러면 어느새 옛이야기가 되어버리는구나.』
『눈물이야 흐르건 흐르지 않던 간에 별 다름이 없다. 제삼자가 보는 시각에서는.』
날씨가 좋지 않아 시모노세키에 계속 머물면서, 할 게 없으니 다른 사람들과 같이 관광하는 스
이때 아미다지에 있는 안토쿠 천황의 능을 참배하게 된다
안토쿠 천황은 헤이안 시대 말기에 벌어졌던 겐지와 헤이시(平氏)의 싸움인 겐페이 전쟁의 마지막 전투에서 패배하자, 삼종신기를 품고 바다에 뛰어들어 8세의 나이로 죽었다
그 장소가 오늘날의 시모노세키로 여기에 절을 세워 기렸는데, 근대에 신불분리 정책으로 절은 없어지고 지금은 신사만 남아 있다
일본 깊숙히 들어가는 해로의 입구에 있기 때문에 조선통신사 일행도 이곳을 방문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안요지)
1월 30일(음)
시모노세키에서 새벽에 배로 출발하여 날이 밝을 때까지 파도에 출렁거리면서 밤 배를 타게 되었다.
『밤을 벗삼아 아카마가세키에서 노를 저어 출발하여, 파도에 출렁거리는 속에서 목침을 베고 하룻밤을 새우는구나.』
2월 2일(음)
고향인 우스키에 귀선하여 열망했던 대로 손자들과 만나니, 그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다. 진정으로 우라시마타로(浦島太郞)라고 하는, 일곱 살 된 손자와 만난 것에 예로 들어, 지금 자신의 몸에 정말로 고향에 돌아온 것을 알린다.
『아아, 이 아이란 말인가. 일급 살 난 손자와 만나게 된 것까지도 지금의 자신에게 알'리고 확인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구나.』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은 우스키에 있는 기원의 바다에 길게 돌출된 곶에까지 각각의 손자들을 데리고 온 것을 보고, 너무 기쁜 나머지 이렇게 읊은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내 집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불전에 참배하여 종군 할 때 원하던 의지를 이루게 된 것이다. 종군하게 된 것은 어떤 숙명적인 인연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한층 더 법당의 내부 장식이나 수리가 이루어져 홀륨하게 꾸며져 있어서, 그렇게 기뻐하는 자신이 싫을 정도로 기쁨을 참기가 어렵다.
『즐거움은 이 세상의 덧없음을 생각할 겨를도 없게 하는구나. 내 자신의 모습이지만 어쩔 줄 모르고 기뻐하는 것이 바보스러울 정도로다.』
게이초(慶長) 2년 6월 2일 도항(渡航)의 명에 복종하여 뒤따르다.
게이초 3년 2월 2일 귀국하다.
추필(追筆)
안요지의 개조(開祖)인 케이넨의 교카이다.
붓을 들 수 조차 없는 몸이 되었지만, 그리움과 서글픔이 교차되는 옛 이야기를 다시 옮겨 써 두자꾸나.
드디어 음력 1598년 2월 2일, 약 7개월만에 자신의 절로 돌아오게 된 케이넨 스
자신의 손자가 마중나온 것을 일본의 전래동화인 우라시마타로 이야기에 비유하고 있다
돌아와서 보니 절도 이전보다 더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서 스스로 부끄러울 정도로 기뻐한다
그 후 정유재란은 약 9개월 뒤에 끝났고, 케이넨은 약 13년 뒤인 1611년에 입적한다
종군 중에 몇 번이나 죽을 위기를 겪으며, 차라리 죽어 극락왕생하자고 다짐했지만 결국에는 천수를 누리게 된 것이다
주군이었던 오타 가즈요시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의 편을 들었으나, 사형은 면하고 영지를 몰수당해 교토에 은거, 1617년 사망했다
이 일기는 케이넨의 추필대로 나중에 한 번 더 옮겨적은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초고본과 전사본 2개 버전이 전해 내려온다
케이넨 자신은 일기를 대단치 않게 여겼지에 생전에 대대적으로 공개하지는 않았고, 근대에 와서 지역 향토사학자들이 연구해서 널리 알려졌으며, 대한민국에서는 1997년에 출간되었다
여러모로 전쟁의 어두운 면이 절절하게 배어나왔던 책이었다
여러 전황의 묘사에 대해서는 사료로써의 가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끝
정성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