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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아우스터리츠와 체코슬로바키아 (유년시절)
1933년, 자크 아우스터리츠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도 프라하에서 마가타 아우스터리츠와 막시밀리아 아우스터리츠 부부 사이에서 출생. 그 이후 마가타 아우스터리츠의 친구 베라와 가족이 함께 생활함.
1938년 9월 30일, 뮌헨 협정 발효. 체코슬로바키아에도 나치 독일의 마수가 뻗치며 유대인들의 안전이 위협에 빠짐.
1938년 여름, 아우스터리츠 가족이 마리엔바트로 마지막 휴가를 떠남. 그 이후로 아우스터리츠는 가족들과 다시는 휴가를 떠나지 못함.
1939년 2월, 아우스터리츠가 표지의 사진을 촬영함.
1939년 3월 14일, 막시밀리안 아우스터리츠가 체코 슬로바키아를 떠나 프랑스 파리로 피신. 마가타 아우스터리츠는 남편의 제안을 거부.
1939년 3월 15일, 체코 독일에 합병. 유대인 2등 시민 정책 실시.
1939년 7월 무렵, 유대계 재산 몰수 정책 시작. 이 때 자크 아우스터리츠와 관련된 모든 물건은 전부 압수되서 사라지거나 불탐. 남은 것은 사진 한장 뿐임.
1939년 8월, 세계 각국에서 유대계 아이들 구출 작전 (kinder transport)를 실시함. 자크 아우스터리츠가 이를 통해 영국으로 떠남. 마가타 아우스터리츠는 나중에 가족이 파리에서 만나기를 소망함. 그러나 이루어지지 못함. 자크 아우스터리츠는 영국의 브로드가 역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그의 양부모 일라이어스와 그웬돌린을 만남.
1939년 9월 1일, 2차대전 발발.
1941년 늦가을, 아가타 아우스터리츠 슈포르코바 게토로 강제이주.
1942년 1월 20일, 반제 회의 체택. 유대인들을 상대로한 절멸 계획이 시작됨.
1942년 12월, 테레지엔슈타트로 체코슬로바키아의 유대인들이 이송됨. 아가타 아우스터리츠 또한 이곳으로 끌려감.
1944년 5월 21일, 테레지엔 슈타트에서 아우슈비츠로 체코슬로바키아의 유대인들 대거 이동. 아가타 아우스터리츠는 이 때 혹은 그 이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됨.
1944년 가을 즈음, 아가타 아우스터리츠가 나치 독일의 프로파간다 영화 <테레지엔슈타트>에 출연함. (홀로코스트 백과사전에서 볼수있는 버전에서 1:01에 나옴.)
1945년 5월 8일, 종전.
#2 아우스터리츠와 웨일즈(1940년대~1950년대)
1888년, 일라이어스의 고향인 레인딘 마을의 침수.
1939년 8월, 자크 아우스터리츠가 독일 제국을 가로지르고 네덜란드를 거쳐 프라하 호를 타고 북해를 지나 도버 항구에서 브로드 스트리트 역에 도착. 그곳에서 아우스터리츠는 처음으로 일라이어스와 그웬돌린 부부를 만남. 그 이후 웨일즈의 발라 시로 거주함.
1939년~1946년, 아우스터리츠가 발라 시에 살면서 여러 이야기들과 접촉함.
1946년 가을, 오스웨스트리 사립학교에 아우스터리츠 입학.
1947년 1월 6일, 그웬돌린 사망. 일라이어스는 덴바이에 있는 요양소 입원.
1949년 여름, 아우스터리츠가 자신의 본명이 데이비드 일라이어스가 아닌 ‘자크 아우스터리츠’임을 전해들음. 그 이후로 아우스터리츠는 자신의 이름인 아우스터리츠에 대한 여러가지 역사적 사실을 공부함. 그 과정에서 교사 힐러리에게 여러 도움을 받음.
1954년 초, 덴바이 요양소에서 일라이어스 사망. 힐러리의 도움을 받아 아우스터리츠 영국 국적 취득. 그 이후 스토워 그레인지 기숙학교 입학. 제럴드를 룸메이트로 만남.
1955년, 제럴드 가족의 별장(호반 도시 바더스 외곽)방문. 제럴드가 사망할때까지 주기적으로 방문.
1957년 10월 초, 제럴드의 삼촌 이블린과 증조부 알폰소 사망.
1962? 1963 늦여름, 케임브릿지에서 제럴드와 비행.
1965년 가을, 제럴드 우주 연구를 위해 제네바로 이주.
1966년 초여름 무렵, 제럴드 비행 사고로 이해 사망.
#3 아우스터리츠와 프랑스 파리 (1997년 이전)
1939년 3월 14일, 막시밀리안 아우스터리츠가 체코 슬로바키아를 떠나 프랑스 파리로 피신. 마가타 아우스터리츠는 남편의 제안을 거부.
1941년 8월 혹은 1942년 7월, 막시밀리안 아우스터리츠가 독일 프랑스 점령 구역 아래에서 체포된 것으로 추정됨.
1942년, 아우스터리츠-톨비악 창고 아래에 유대인들의 물품이 보관됨. 그 위에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지어지며 그 기억은 묻힘.
1942년 말, 구르스 수용소로 막시밀리안 아우스터리츠가 이송됨. 그 이후 1943년 즈음에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됨.
1958년 11월, 자크 아우스터리츠 프랑스 파리로 건축 공부를 위해 이주. 아멜리 세르프의 집에 하숙을 놓음.
1959년 겨울, 자크 아우스터리츠와 르무안의 만남. 르무안은 그 후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사서로 취직함.
1960년 9월, 아우스터리츠 심장발작으로 살파트리에르 병원입원. 완전한 기억 상실후 그곳에서 마리 드 베르뇌유와 첫만남(실제로는 여러번 만났으나 아우스터리츠가 기억을 상실하며 첫만남이 됨.). 마리 드 베르뇌유의 간호를 받으며 아우스터리츠는 기억을 회복함.
#4 아우스터리츠와 벨기에 (1967년)
1967년 여름, 벨기에 안트베르펜 중앙역에서 화자 W.G.제발트와 아우스터리츠 첫만남후 건축에 대한 대화.
1967년 6월, 리에주의 카페 테 에스페랑 술집에서 다시 만남 아우스터리츠와 다시 건축 이야기.
#5 아우스터리츠와 마리엔바드 스파 (1972년)
1972년 8월, 아우스터리츠가 마리엔바트로 마리 드 베르뇌유와 여행을 떠남. 그곳에서 마리 드 베르뇌유와 이주해 새로운 삶을 사는 것에 대해서 고심해보았으나, 아우스터리츠는 마리엔바드 스파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을 느낌. 그렇게 그 곳에서 마리 드 베르뇌유와 헤어지고고 다시는 마리 드 베르뇌유와 만나지 못함.
#6 아우스터리츠와 영국(1980년대)
1984년, 아우스터리츠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브로드 가 역에 애수를 느끼고 브로드가의 발굴 현장을 방문함. 그곳에서 유골들의 사진을 찍고, 그 이후로도 아우스터리츠는 그곳을 정기적으로 방문함.
1986년 일요일 어느날 아침, 아우스터리츠는 1968년 11월 마리 드 베르뇌유와의 대화에서 영국에 아우스터리츠가 첫번째로 도착한 순간을 연상해냄.
#7 아우스터리츠와 프라하, 테레지엔슈타트 (1993년)
1993년 봄, 아우스터리츠가 유대계 아이들 구출 작전에 관련한 라디오 방송을 듣고 자신이 그들 중 하나임을 떠올림.
1993년 봄, 아우스터리츠가 체코로 떠남.(체코슬로바키아는 한 국가였으나 동유럽 혁명 이후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해체됨.) 그곳에서 카르멜리츠카 문헌 보관소에서 테레자 암브로소바 부인의 도움을 받아 아가타 아우스터리츠의 집을 발견함.
'', 그곳에서 베라 리샤노바와 재회. #1에 대한 이야기 시작.
베라 리샤노바를 만난 다음날, 아우스터리츠 테레지엔슈타트(테레진)으로 이동. 테레진에서 그는 폐허만을 찾을 수 있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폐허속에서 자신의 기억과 몇몇가지 상징들을 기억해냄.
#8 아우스터리츠와 독일 (1993년)
1993년 봄, 아우스터리츠는 프라하 월슨 정거장에서 출발해 네덜란드 후크로 향하는 열차를 탑승함. 위 노선은 아우스터리츠가 유대계 아이들 구출 작전 (kinder transport)때 탑승했던 노선과 완전히 일치함. 아우스터리츠는 열차에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함. 중간에 뉘른베르크를 지나며, 라인강 근처의 수몰된 도시 바하라흐에서 르윈들린을 떠올림.
#9 아우스터리츠와 프라하, 테레지엔슈타트 (1997년)
1997년 초, 아우스터리츠가 프라하로 여행해 베라 리샤노바를 만남. 그곳에서 몇가지 추억을 베라로 부터 들은 후 프라하 연극 문헌소에서 <테레지엔슈타트>를 발견하고 그것에서 자신의 어머니 아가타 아우스터리츠가 출현함을 확인함.
#10 아우스터리츠와 파리 (1997년)
1997년 9월, 아우스터리츠 파리로 이주. 자신의 친아버지 막시밀리안이 살던 곳 인근임.
1997년 9월, 프랑스 미테랑 도서관에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탐구, 어머니가 읽던 발자크 소설, 그리고 마리 드 베르뇌유에 대한 추억, 아우스터리츠-톨비악 창고에 대한 사실을 떠올리며 르무안을 만남.
1997년 어느날, 자크 아우스터리츠가 자신의 아버지와 마르 드 베르뇌유를 찾기위한 여정을 계속하기로 말하며 W.G.제발트에게 자신의 집 열쇠를 넘김.
#11 아우스터리츠, W.G.제발트, 파리와 런던과 안트베르펜. (1996년 12월~1997년)
아우스터리츠가 W.G.제발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든 순간들. 1996년 12월 케임브릿지에서 만나 1997년 파리에서의 만남과 그 이후 안트베르펜으로 떠나 #1에서 보았던 브렌동크 요새로 간 W.G.제발트를 끝으로 <아우스터리츠>는 막을 내림.
<아우스터리츠>에서 시간의 순서
#4 -> #11-> #2 -> #6 -> #7 -> #1 -> #5 -> #8 -> #9 -> #3 -> #10 -> #11
남은 것들: 상징, 건축물들, 기억, 노아의 방주와 물
다 니가 한 거?
ㅇㅇ
이 정도면 논문쓰거나 책 재번역할때 박을 만하지 않나ㅋㅋ 씹스터문학이라 누가 그대로 쓸 일이 없나
이렇게 자세히 몰라도 울림 있는게 제발트 장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