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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속물들의 이야기를 많이 접해보았지만, 「고리오 영감」만큼 철저히 속물들이 이끄는 이야기는 읽어 본 적이 없다. 부패한 사회, 위선적인 사교계 같은 소재들은 지금에 와선 흔한 것이 돼버렸다. 그런데 끝내 낭만주의의 손을 들어 주는 여타 작품들과는 달리 「고리오 영감」은 처음부터 끝까지 현실적인 색채를 잃지 않는다. 마지막 장에서는 고리오를 대신해서 절규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라스티냐크는 마음 한편의 순수함을 잃지 않으려 정말 부단히 노력한다. 성공을 목적으로 삼기는 하지만 영혼을 팔지는 않으려 애쓴다. 하지만 이렇게 순수를 애써 바쳐보았자, 그 순수함을 받는 사람들이 썩어 있으면 아름다움을 이끌어낼 수 없다. 미덕으로 무장해보았자 관문을 넘기 위해서는 통행료가 필요한 것이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았다. 법과 도덕은 부자에게서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 세상 최후의 논리'를 돈에서 보았다." 라스티냐크를 이끄는 멘토들도 이 법칙에서 예외는 아니다. 조건 없이 정열을 바쳐도, 정열만 먹고 사라지는 사기꾼들에게 속을 뿐이다. "이게 바로 진짜 인생의 모습인 거야. 부엌보다 더 멋질 것도 없고 부엌만큼이나 고약한 냄새도 많이 나지. 음식을 훔쳐 먹고 싶으면 손을 더럽혀야 하는 거야. 단지 손을 잘 씻는 법은 알아두게. 우리 시대의 도덕은 이게 전부라네."
나는 작품을 읽으며 내내 라스티냐크와 고리오를 응원했다. 특히 부성애의 화신인 고리오를 응원했다. 하지만 고리오의 말로에 철저히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분노하고, 아버지를 그렇게 착취하고도 끝까지 오지 않은 딸들에게 2차로 분노했다. 객관적인 독자의 시선에서는 정말 치가 떨리는 일이다. 하지만 작중 인물들에게는 정말 아무런 가치가 없는 일이다. 생계라는 단어가 늘 그럴듯한 변명이 되어준다. "돈에 감정을 섞는 것, 그건 끔찍하지 않아요? 당신은 나를 사랑할 수 없을 거예요." 델핀이 라스티냐크에게 한 이 말은 복선이었다. 동시에 고리오를 둘러싼 모든 이들이 나에게 하는 변명처럼 느껴진다.
"아름다운 영혼들은 이 세상에 오래 머물 수 없구나. 하긴, 위대한 감정들이 치사하고 편협하고 피상적인 사회와 어떻게 한통속이 될 수 있겠어?" 말미에 나오는 라스티냐크의 절규다. 전적으로 그 절규에 공감한다. 정을 생각하며 오지랖을 넓히기에는 세상은 너무 넓고 빠르게 흐른다. 속고 속이는 싸움의 규칙을 선한 사람들이 작당해서 뒤집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선택지는 '멍청하게 복종하느냐 아니면 반항하느냐' 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반항아는 오래 살지 못하니, 만약 이 세상 가운데서 자신이 이루고 싶은 무언가가 있거든 게임의 규칙에 따르는 수밖에 없다. 남들이 나를 속이는 만큼 나도 남들을 속이고, 남들이 나를 필요에 따라 대하는 만큼 나도 필요한 만큼만 대우해야 한다. 「고리오 영감」에서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면, 좌절한 고리오의 의지를 끝까지 붙드는 것보다 현실을 깨닫고 파리와 싸워보려는 라스티냐크에게서 배우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고리오에게 여전히 동정심을 느낀다. 혹자는 애초에 고리오가 현실을 읽지 못하고 모든 것을 분에 넘치게 쏟아부은 탓에 딸들은 타락하고 자신도 모든 것을 잃었다고 비판할 수 있다. 그 말도 물론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음을 전적으로 의지할 존재가 없는 세상에서 과연 누가 살아갈 수 있을까? 인생 자체가 커다란 사기극이라 해도, 사람들은 그 속에서 미미하게 등장하는 조건 없는 애정으로부터 삶의 의미를 찾기 때문에 끝까지 인생을 놓치 않고 악착같이 살아간다. 그런 사랑의 힘은 물론 약하다. 게임에서 불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사랑은 계속 필요하다. 그것 없이는 게임에 참여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나는 고리오의 실패가 애정의 영원한 추방이라고 믿지 않는다. 현실을 사는 법을 알면서도 사랑할 줄 아는 사람, '사랑이 주는 모든 것을 받을 만한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나의 영원한 꿈일 것이다.
해설에 따르면 라스티냐크의 이야기는 「고리오 영감」에서 끝나지 않는 것 같다. 이 사건을 겪은 라스티냐크가 다른 작품에서 어떤 모습으로 내게 돌아올지 궁금하다. 발자크의 소설을 지금까지 「루이 랑베르」 외에 읽은 적이 없는데, 이번 독서를 계기로 라스티냐크를 비롯한 당대의 현실을 탐구하며 삶의 자세를 고민해봐야겠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