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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좋았는데 결말이 너무 충격적임.



우선 유리알 유희1 감상때 카스탈리엔을 보고 플라톤의 이상국가 헤세버전 같다고 했었는데, 실제로 2에서 플라톤의 국가에 대한 언급이 나와서 반가웠음.


크네히트가 사표내고 카스탈리엔 손절치는 건 예상 밖이었지만, 여전히 플리니오랑 뭔가 빌드업을 하면서 카스탈리엔을 위기로부터 구해낼거라 추측했음.


그런데 수레바퀴 아래서에 나오는 한스마냥 갑자기 픽 죽어버렸네? 이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동화책의 결말을 이딴식으로 끝낸다고?


헤세가 이런 비극적인 결말로 마무리한 이유가 뭘까? 그 의미가 뭘까?


즉 나는 유리알 유희 감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크네히트의 죽음에 대한 해석이라고 느껴짐. 


그러나 헤세, 적어도 크네히트 전기를 들려주는 화자는 해석을 하는 게 쓸모없고 옳지 않아 보인다고 함.


"명인이 사라져 버린 일과 그 원인에 대해, 그가 그런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긴 일의 옳고 그름에 대해, 그의 운명의 의미와 무의미에 대해 동료들이 말하는 온갖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마치 나일 강 홍수의 원인에 대한 디오도루스 시켈로스의 잡다한 추론이라도 듣는 기분이었다. 그런 종류의 이야기에 새로운 것을 덧붙인다는 것은 쓸모도 없거니와 옳아 보이지도 않는다. 그보다는 차라리 수수께끼를 남기며 속세로 뛰어들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보다 더 낯설고 신비로운 피안으로 넘어가 버린 명인에 대한 추억을 가슴에 간직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메모장에 티토, 전 음악 명인, 크네히트에 대한 분석을 장황하게 끄적여봤는데, 정말로 잡다한 추론처럼 보여서 보류했고, 사실 가장 직관적으로 알려주는 것은 크네히트의 유고에 실려있는 '단계'라는 시임.


-단계- (초월하라!)

꽃이 모두 시들듯이,

젊음이 나이에 굴복하듯이,

지혜도, 덕도, 인생의 모든 단계도

제철에 꽃피울 뿐, 영원하지 않네.

생의 부름을 받을 때마다 마음은

슬퍼하지 않고 용감하게

새로이 다른 인연으로 나아가도록

이별과 새 출발을 각오해야 하지.

그리고 모든 시작에는 이상한 힘이 깃들어 있어

우리를 지켜 주고 살아가도록 도와준다.


공간에서 공간으로 명랑하게 나아가야지

어디에도 고향인 양 매달려선 안 되네

우주 정신은 우리를 구속하고 좁히는 대신

한 계단씩 올려 주고 넓혀 주려 한다.

생의 어느 한 영역에 뿌리내리고

친밀하게 길드는 바로 그 순간, 나태의 위협 밀려오나니

떠나고 여행할 각오된 자만이

습관의 마비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


죽음의 순간에조차 아마 우리는

젊게 새로운 공간으로 넘어가는지도 모른다.

생의 부름은 결코 그치지 않으리니......

그러면 좋아, 마음이여, 작별을 고하고 건강하여라!




이 시에는 크네히트가 유리알 유희 명인 자리를 반납하고 카스탈리엔을 완전히 떠나려는 이유, 죽음에 대한 추측이 이미 제시되어 있음. 


분명 크네히트의 갑작스런 죽음에 헤세의 어떤 의도가 깃들어 있음은 확실함.


그것은 단순히 인간은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른다는 메시지일 수도 있다고 봄.


아니면 인도의 이력서처럼 인생무상에 대한 메시지일 수도 있겠지.


적어도 크네히트는 이 비극적인 미래를 알고 시간을 되돌린다 하더라도 여전히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음.


크네히트는 실수했다거나 착각했다기보다는 그저 각 현재들의 매 순간순간에 충실했으며, 파도의 흐름에 몸을 맡겨 서핑보드를 타듯이 역사의 흐름에 탑승했을 뿐이겠지.




크네히트의 유고에는 크네히트의 이력서 세 편이 있는데, 이력서란 '원하는 과거의 어느 시대로 자신을 옮겨 놓는 가상의 자서전'임.


제목은 각각 기우사, 고해사, 인도의 이력서이며, 기우사는 원시부족, 원시문명에 대한 이야기, 고해사는 기독교, 종교인에 대한 이야기, 인도의 이력서는 왕족출신이 요가 수행자로부터 깨달음을 얻는 이야기로 볼 수 있음.


이력서는 어떤 의미에서 일종의 유희이기 때문에 거창한 의미부여를 하기보다는 크네히트가 이력서를 작성했던 시기 정도만 살포시 염두해두고 읽으면 되는 느낌이었음.


셋 다 흥미로운 이야기인데, 고해사에서는 데미안에 나오는 영지주의와 관련해서 더 디테일한 얘기가 나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