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키릴로프의 사상
- 키릴로프는 자살하고자 한다. 키릴로프는 “무신론자들이 신이 없다고 믿으면서 어떻게 자살하지 않을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 하겠다.”고 말한다. 신이 없다면 이 삶에는 아무 의미도 없고 따라서 삶에 수반되는 이 모든 고통을 견디는 것에도 아무 의미가 없으며, 허무주의자들이 흔히 말하듯이 ”자살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키릴로프는 허무주의자로서 자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숭고한 목적에서 자살하려는 것인데 이유인즉슨 신이 없다는 것을 확증하기 위해서이다.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이 순교함으로써 부활과 구원을 확증했듯이 키릴로프는 스스로의 자유 의지로 자살함으로써 신의 부재를 확증하는 것이다. 키릴로프는 작중 삶을 사랑하고 즐기는 선한 인물로 표현되는데, 이것은 키릴로프가 고통으로부터 회피하기 위해 자살하려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그러나 키릴로프는 모든 무신론자들이 자살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오직 자기 자신만 그러하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아직까지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자유 의지로 삶을 그만둔 인간이 아무도 없었던 탓에, 누군가는 그 최초로서 새로운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새로운 그리스도란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선택지로서 존재한다.”고 확증하는 인물을 의미한다. 그래야만 모든 인간이 인신으로서 신을 극복하고 삶을 사랑할 수 있다고 보았다. 키릴로프는 신을 “인간이 유한함을 인식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상상으로 만들어낸 관념”으로 보았는데, 이 유한함이란 죽음의 공포를 의미한다. 즉 신은 죽음의 공포인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죽음을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합리적이고 현명한 선택지로 바라봄으로써 신이라고 불리는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삶을 사랑할 자격을 얻는 것이다. 자유 의지가 없는 인간이 도덕적 인간이 될 수 없듯이(악을 선택할 자유가 없다면 선할 수도 없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이 삶을 사랑할 수는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즉, 키릴로프의 견해에 의하면 인류 역사상 삶을 사랑한 인간은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키릴로프는 자살함으로써 “인류가 신을(죽음을) 극복하고 삶을 사랑할 수 있는 기반“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키릴로프는 이런 모든 숭고한 사상에도 불구하고 희극적 결말을 맞이하는데, 자살하기 직전 자신의 신념을 감당치 못 하고 추하게 삶에 집착함으로써 자신의 사상을 살해한 것이다.

아래는 키릴로프의 사상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이다.
- 나는 키릴로프의 사상에 동의할 수 없다. 키릴로프의 사상에 따르면, 인간에게 죽음을 ‘선택’할 자유가 허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선택지로서의 죽음’은 존재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선택지로서의 죽음’이란 구조적으로 ‘자살할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의 자살’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자살할 이유‘에는 무엇이 있을까? 구체적으로 나열하자면 셀 수도 없겠지만 간단하게 분류하면 삶에 아무 기쁨이 없을 때, 고통이 너무 많을 때 자살 충동이 일 것이다. 만약 당신이 교통사고를 당해 사지가 마비됐다면, 따라서 기존에 누리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앞으로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면 자살 충동이 일 것이다. 만약 당신이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잘못된 선택의 결과로, 가족도 친척도 친구도 연인도 없고 꿈도 비전도 없어서 어디에서도 위안을 얻을 수 없다면 자살하고 싶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성공한 사업가로서 승승장구하던 중 결정적인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실패를 겪게 되었다면 역시 자살하고 싶을 것이다. 세부 사항은 저마다 다르지만 역시 자살 충동은 기쁨과 즐거움에 비해 고통이 압도적으로 많을 때 찾아온다. 또한 삶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전혀 기대할 수 없다면 그 사실 자체가 고통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키릴로프가 말하는 ’선택지로서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제는 좀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선택지로서의 죽음‘이란 ‘삶에서 충분한 기쁨과 즐거움을 기대할 수 있고, 고통도 과하지 않을 때의 자살’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신나간 소리다! 이 세상의 누가 ‘삶에서 충분한 기쁨과 즐거움을 기대할 수 있고, 고통도 과하지 않을 때‘ 자살을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키릴로프 또한 삶을 사랑하는 인간으로서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는 인간이었고, 그 때문에 자신의 이론에 그토록 확신을 가졌음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회의를 극복할 수 없었던 것이다. 권총을 관자놀이에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그 순간까지도 “정말 자살해야 할까? 내가…?”라는 의문을 버릴 수 없었으리라. 키릴로프의 마지막 추태는 이런 회의감에서 기인한 것이다. 누군가는 ‘안락사’를 거론하면서 인간도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황혼을 앞둔 사람이나, 불치병이나 말기암을 앓고있는 사람에게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할 수 있는가? 과연 안락사를 ‘삶에서 충분한 기쁨과 즐거움을 기대할 수 있고, 고통도 과하지 않을 때‘ 죽는 것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안락사 또한 고통으로부터의 회피하기 위한 죽음이다. 그러므로 나는 어떤 경우에도 죽음은 선택지가 될 수 없다고 단언함으로써 키릴로프의 사상을 부정한다.

- dc official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