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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판본(아르테판)은 굉장히 특이했음. 일단 주석 방식이 그러함. 보통 우리가 읽는 책들은 대개 각주 아니면 미주임. 그런데 이 책은 무려 내주, 각주, 미주를 모두 채택하고 있음. 주석 방식을 세 개나 사용하는 책은 처음 봄. 미주 각주까지는 섞어쓰는 걸 꽤 봤지만.
또 하나는 제본 방식임. 비록 이건 책 자체의 단점이 아니지만 읽으면서 워낙 불편했기 때문에 이야기 하겠음. 아르테판은 제본 방식에 상당히 문제가 있음. 양장이면서도 완전히 펼쳐지지 않음. 무선처럼 중앙 부분이 안 펴짐. 그런데도 양장이라 휴대하기 불편하다는 단점은 그대로임. 무선과 양장의 단점만 골고루 지녔다는 점에서 이는 진정한 의미의 '반양장'이라고 칭할 만함.
뭐 제본 방식에 대한 불평은 이쯤에서 끝내고, 책 자체에 대해서 논하겠음.
스피노자 추종자가 그의 사상을 이용해서 썼다고 하니 논문 형식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음. 볼테르의 글들이 그렇듯이 이 책도 논문보다는 신랄한 만담 투로 쓰였음. 사실 대표적인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논문 형식의 저술을 자주 보여준 걸 생각하면 이 점은 특징적임.
가장 특징적인 것은 역시 내용의 파격성이라고 해야겠음.
상기한 볼테르도 기독교 세계의 탄압을 우려해서 "기독교만이 진정한 참된 종교"라는 언급을 저작 속에서 여러 번 했음. 그러나 스스로 그 말을 진지하게 믿고 있지 않다는 건 신에 대해서 언급할 때마다 드러남. 가장 파격적이었던 사회운동가이자 철학자도 기독교 세계의 탄압을 염려해서 독실한 척을 해야했던 시대라는 거임.
그런데 이 책은 그보다 한 세기 전 즈음에 출간됐음에도 매우 강도 높고 직접적인 기독교 비판을 담고 있음. 모세는 다른 자칭 예언가들과 같은 부류지만 더 영리했을 뿐인 사기꾼이고, 구약 성서는 모순으로 가득찬 헛소리라며 굉장히 노골적으로 조롱하고 있음. 예수 비판 역시 그러함. 동정녀 마리아 설은 이집트 신화를 베낀 것이며, 예수는 단지 모세처럼 되고 싶었던 것 뿐이라고 비난하고 있음. 심지어는 예수의 발언 하나하나도 전부 지적하는 모습을 보임. "죄 없는 자만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와 같은 유명한 어록들도 전부 현인처럼 보이기 위한 임기웅변이라고 말함. 그 외에도 예수의 윤리, 신성, 율법 등은 모두 고래의 것을 훔친 것이라고 지적하지만, 다 말하기에는 너무 길다고 생각함. 이 점에 대해서는 직접 읽어보라는 이야기만 하겠음.
예수와 모세의 차이에 대한 부분도 있음. 후자는 현세적인 면모를 강조했지만, 전자는 내세의 지복을 강조하는 것으로 패러다임을 바꿨다고 주장함. 사실 이런 주장은 기독교와 유대교에 대해 다루는 서적에서 꽤나 자주 접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함.
여담으로 모세 비판과 예수 비판 사이에 누마 폼필리우스의 경우도 짧게 언급됨. 그러나 누마의 경우에는 그다지 비판 받지 않고 있음. 이 저자도 마키아벨리, 몽테스키외 등이 언급한 것처럼, "누마는 로마인의 풍속을 교화하고자 신앙을 이용한 것이다." 정도의 관점을 견지하고 있음.
마지막으로 마호메트에 관해서 짧게 비판하면서 끝을 맺음. 마호메트도 상기한 두 명과 비슷한 전략으로 사기를 쳤지만, 입막음을 위해 협력자를 모략으로 암살하는 철저함까지 보여줬다고 말함.
르네상스부터 산업혁명까지를 아우르는 근대 시기 동안 이 정도로 노골적인 종교 비판은 어느 지방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웠을 것임. 이신론을 견지하던 계몽주의 철학자들도 "기독교의 현재 모습은 그 근본과 모순되고 있다. 부패한 교회 성원들과 성직자들은 진정한 기독교도가 아니다." 정도의 온건한 비판 만을 내세웠음. 이만큼 직접적인 종교 비판은 19세기에야 다시금 등장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함.
그나저나 생각보다 스피노자의 사상과 연관 있는 이야기는 그다지 없었던 것 같음. 본인의 주장 전개보다는 기존 통념에 관한 반박이 목적인 글이라 그런가.
사실 뒤에 실린 다른 글들도 있음. 그러나 그것들은 전부 다른 저작들에서 발췌된 것이라고 함. 따라서 감상문에서는 제외하겠음. 그러나 그 부분 역시 읽어볼 가치는 충분함. 매우 다양한 정보를 압축적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임. 이 책을 편찬한 사람이 대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당대의 지성이었던 건 거의 확실해보임. 자신이 쓴 글도 그렇고 발췌된 글들을 보면 식견이 대단한 것 같음.
근데 예수 호루스 파쿠리설 진위가 어떻게 됨? 어떤 연구가는 아니라고 반박하던데
동정녀 마리아 설이랑 호루스 탄생 신화는 직접적 관계가 없지 않나. 이 책에서 말하는 건 처녀수태 모티브 그 자체를 이집트 신화에서 가져왔다는 것 같던데.
그거 제일 유명하게 도는게 시대정신이라는 영화 일부 스샷인데 신빙성 드럽게 없는 음모론 영화임 예수도 여타 신화에 영향을 받아 신화화 한 인물이겠으나 호루스 파쿠리설은 이렇게 할 근거없음
다른 수많은 신화, 종교 읽어보면 그냥 신적 존재가 특별하게 수태하거나 태어나는거 흔해빠진 플롯임. 동정녀 탄생, 3이나 4라는 숫자(3일뒤 부활) 12제자 같은 상징적인 숫자, 신이면서 인간인 양쪽 중간에 있는 위치 같은거
기독교가 어떤걸 베꼈다기 보다는, '신화적 문법'이라고 생각해야됨. 그정도로 흔하니까. 물론 신화나 종교가 문자 그대로 사실을 기록한거라고 생각한 사람이라면 충격 받을 일이겠지만
시대를 앞서간 파격적인 책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