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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의 화자
- 주인공은 비대한 자의식과 강렬한 의식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매 순간 자신이 타인의 시선에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의식한다. 이것은 습관적으로 이루어진다. 말하자면 의식의 틀인 셈이다. 자신의 몸짓이나 말투가 우스꽝스럽게 보이지는 않을지, 초라한 외견때문에 비천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을지 매 순간 의식하고 괴로워한다. 이것은 과도한 허영심과 그에 미치지 못 하는 자존감에서 기인한다. 속으로 ‘나는 대단한 사람이고, 그래야만 한다.‘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나는 실제로는 보잘것 없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주인공은 고결함에의 의지와 천박함을 동시에 가진 인물이다. 시궁창 속에 빠져있을 때조차 고결한 불꽃의 열기를 느낄 수 있는 강렬한 의식을 지닌 인물이며, 복수를 꿈꿀 때조차 자신의 악의를 의식하는 민감한 감각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자연과 진리의 사람‘이나 ‘실천적 인간’과는 다르게 강렬한 의식을 바탕으로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사고를 하는 인물이다. 때문에 타인의 무례한 행동에서도 자연율을 느끼고, 자신의 정당한(일반적으로) 복수에서도 추악한 악의를 느끼는 것이다. 또한 주인공은 타인과의 모든 관계에서 우열을 따지러 드는데, 타인의 시선, 몸짓, 말투 모든 것에서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여기는지‘ 의식하고 상상한다. 이것은 비대한 자의식과 열등감에서 기인한다.

주인공이 무엇보다도 견딜 수 없는 점은 자신의 이런 처지, 자신에 대한 타인의 평가, 자신의 이런 처지를 초래한 모든 굴욕적인 사건들이 부당하다는 데 있다. 첫째로, 보잘것없는 외모와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 겪는 불이익이 그렇다. 둘째 이것이 무엇보다도 부당한데, 주인공은 모든 것을 알아채는 강렬한 의식과 왕성한 두뇌 활동으로 남들보다 심오한 사상과 윤리 의식을 가진 사람이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진리의 그림자조차 알아채지 못 하는 주제에 자신을 진리의 사람인 양 여기며 아름답고 고귀한 모든 것을 찬미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대다수 ‘자연과 진리의 사람’들이 편을 이루고 오히려 주인공을 이상한 사람 취급하여 무리에서 쫓아내고 박해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부당한 것이다. "나는 고상한 인간이고 저자들은 천박한 인간들이라, 마땅히 저들이 나를 숭배해야 하지만 오히려 나를 멸시하고 있다"는 불합리한 현실이 주인공을 지하의 세계에 붙잡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벽'에게 복수한다던가 '벽'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기에(주인공은 81p에서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병적으로 두려워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하의 세계에서 분을 삭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 그 당시 나를 괴롭히던 것이 또 하나 있다. 다름 아니라, 누구 하나 나를 닮은 자도 없거니와 나 역시 아무와도 닮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외톨이인데 저자들은 모두가 한통속이다'하는 생각에 나는 사로잡혀버렸었다. - 8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