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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독후감을 쓸 때 페이지 수와 내용을 필요한만큼 적고, 그 밑에 감상을 남깁니다. 출판사는 문예입니다.
23p
그럼 이번엔 이 생쥐의 행동을 살펴 보기로 하자. 가령 이 생쥐도 모욕을 당하고(이 놈은 노상 모욕을 당하고 있지만) 역시 복수를 벼르고 있다고 하자. 이 생쥐의 마음 속에는 필시 자연과 진리의 사람 보다도 더욱 증오심이 쌓이고 쌓여 있을 것이다. 또 같은 악으로 모욕자에게 복수해야겠다는 더럽고 저열한 욕망이 이 생쥐의 뱃속에서는 ’자연과 진리의 사람‘보다 몇 배나 더 추악한 모양으로 들끓고 있을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자연과 진리의 사람‘은 천성이 우둔함으로 자기의 복수를 그저 간단히 정의 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생쥐는 강렬한 의식 때문에 이런 경우 정의라는 것을 부정해 버린다. 그리고 결국은 일 자체, 복수 행위 자체에 달려든다.
- 수기의 주인공은 ‘자연과 진리의 사람’은 천성이 우둔하므로 자신의 복수 행위를 간단히 정의라고 여겨 버린다는 점을 지적한다. 여기서 복수란 당연하게도 상대방의 모욕 행위를 모욕으로 갚아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 ’자연과 진리의 사람’은 자신이 모욕을 당했으니 내가 상대를 모욕하는 것은 정의롭고 정당한 일이라고 쉽게 생각해 버리지만, 사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화자는 ’상대방의 모욕 행위‘에서 ’자연율‘을 느낀다고 표현하는데, 정말 탁월한 표현이다. 화자의 심리를 예상컨대 “상대방의 그런 언행은 필연적이었다.”, “나였어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 사람의 인격이 그 모양인 것이 온전히 그 사람 탓은 아니지 않은가!”등의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수기 중 다른 부분에서 “복수의 대상이 사라진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 수기 전체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사람의 행동은 이성적, 합리적, 논리적, 실리적 사고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존심, 질투, 위신, 고집, 반항심, 자유 등 실리적 이익에 배반되는 동기들에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나에게 모욕을 준 상대방의 행위가 진리의 관점에서 부도덕하더라도 그 부도덕한 행위가 필연적이고 자연율이라면 그 부조리(이 수기의 주인공은 ’벽‘이라고 표현한다.) 앞에서는 아무 행동도 할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인공은 “나였어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자신의 복수심에 회의를 느끼고, 자신에게 가해진 모욕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고결하고 미련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모든 이유 때문에 주인공은 모욕에 대한 복수를 꿈꾸다가도 자신의 추악한 악의에 회의를 느껴 복수의 대상조차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잡탕’속에서(위에서 서술한 모욕, 필연, 자연율, 부조리에 관한 모든 질문들) 복수 행위 자체에 몰두하는 것이다.
26p
“반대란 있을 수 없다. 이건 2×2는 4니까! 자연은 너의 의견 같은 건 듣지도 않는다. 너의 희망이야 어떻든 자연의 법칙이 너의 마음에 들건 말건 그런 건 자연에는 문제도 아니다. 너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며, 따라서 그 결과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한다. 벽은 어디까지나 벽이니까…..운운” 제기랄, 도대체 이 법칙이니, 2×2는 4 식의 수학이 내 마음에 안 드는 이상 자연율이니 수학이니 하는 게 나한테 무슨 상관이냐 말이다. 물론 나는 이마빼기로 이 벽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 그만한 힘은 내게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결코 이 벽과 화해하지는 않겠다. 왜냐? 내 앞에 돌벽이 버티고 서 있으나 나는 그걸 무너뜨릴 힘이 없다는 이 한가지 이유 만으로도 충분하다.
- 이 부분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사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인 ‘부조리’에 관한 내용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이반과 알료사가 ‘수도’에서 나누는 대화를 읽어보면 도스토예프스키가 ‘벽’에 대해 가지고 있는 울분을 느낄 수 있다. 세상이 이루어져 있는 방식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지성인으로서의 숭고한 분노와 착잡함이 문학의 형태로 녹아 있는 것이다. 이 수기에서 언급되는 ‘벽’들을 몇 개 나열해 보겠다. 볼품없는 외모로 인한 차별과 그에 따른 불이익, 태어난 환경에서 기인하는 물질적, 정서적 격차, 비천한 사상을 가졌지만 다수라는 이유로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자연과 진리의 인간들’, 이율 배반적인 인간의 의사 결정구조 등 이 수기에는 지하생활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벽’들이 문학적으로 나타나 있다. 작은 키와 심술궂어 보이는 얼굴, 학창 시절부터 굳어진 타인과 어울리지 못 하는 성격 때문에 건강한 자아상이 형성되지 못 했고, 사람을 마주할 때마다 '이 사람이 나를 깔보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지내게 되었다. 주인공은 이 모든 것이 '벽'에서 시작된 필연, 자연율이라고 바라보고 있다. 어디 가서 털어놓기도 부끄러운 이러한 사정 때문에 화자는 현실의 삶에서 도피해 지하의 세계에서 멍청한 타성에 젖어 있는 것이다.
- 화자는 수기 후반부에서 '영업집 여자'인 리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던 도중, 나도 부모가 있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더라면 이런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라며 한탄한다.
27p
그러나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논리적 콤비네이션의 길을 택하면서 이 돌벽에 관해서도 뭔가 자기한테 잘못이 있다는 식의 영구불변의 테마에 빠져 더없이 저주스러운 결론에 도달 하는 것이다(물론 자기한테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건 여기서는 불을 보듯 명백 하지만 말이다). 그 결과 말없는 무기력한 저주를 계속할 뿐, 화를 내려 해도 상대가 없음을 어렴풋이 의식하면서 멍청한 타성 속에서 감각을 마비시켜 버린다.
- 앞서 23p에 관한 내용에서 서술했듯이 ‘잡탕‘속에서 고뇌의 시간을 보내다 보면, 복수의 대상은 사라지게 된다. 돌벽에 관해서도 뭔가 자기한테 잘못이 있다는 내용은, 행위로서의 잘못에 대한 내용이 아니다. 자신 또한 세상의 벽과 부조리와 자연율에 영향을 받는 피조물인 탓에, 그 모든 것의 결과물인 상대방과 상대방의 모욕적인 행위에 대한 복수를 실행하기는커녕, 일말의 복수심마저 증발해버리는 것이다.
게이야 벽돌이라 못 읽겠잖노
견뎌내라 - dc App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