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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가 일부러 거드름을 피우며 나를 모욕 하려고 생각하고 있는 정도라면 별로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렇다면 침이라도 퉤 뱉어 주면 그만이다. 그러나 나를 모욕 할 생각은 추호도 없고 자기 편이 나보다는 훨씬 우월 하기 때문에 보호자와 같은 입장에서 나를 대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그의 바보 같은 대가리에 정말로 떠올랐다면 어쩔 것인가? 이렇게 생각만 해도 나는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 상대와 대등한 인간으로 인정받고 싶은 주인공의 병적인 열망이 잘 드러난 대목이다. 차라리 상대방이 주인공에게 모욕을 주려는 의도로 거만하게 굴었다면 주인공은 상대와 대등한 관계에 있는, 그에게 경쟁 의식을 갖게 하거나, 그의 감정에 일련의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물로 여겨지는 것이니 오히려 주인공을 기쁘게 하는 셈이다. 그러나 상대가 진정으로 주인공을 자기보다 열등한 존재로, 가엾고 딱한 존재로 여기고 있다면 주인공은 그 동정에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라는 것이다! 동정에는 경멸이 깃들기 마련이므로 상대의 진정 어린 경멸이 주인공의 자기 비하와 공명하여 비대한 자의식과 허영심을 짓뭉개는 것이다.
- 주인공이 유독 자신을 향한 멸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열등감 때문이 아니다. 열등감은 자신을 남보다 못한 존재로 여기거나 과소평가하는 감각을 의미하는데, 주인공은 오히려 그 반대이다. 주인공은 스스로를 고결한 윤리 의식과 심오한 사상, 뛰어난 두뇌를 가진 훌륭한 인물로 평가하고 있으며, 우매한 대다수의 사람(자연과 진리의 사람, 실천적 활동적 인간)들이 자신의 빼어남을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여긴다. 그리고 "이것은 '대다수 우매한 사람들이 나의 빼어남을 알아채지 못 하는 것' 하나 때문이 아니라, 나의 볼품없는 외모와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 탓에 사람들이 나의 내면에는 관심조차 갖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주인공이 유독 자신을 향한 멸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열등감이 아니라 허영심 때문임을 알 수 있다.
- 열등감과 허영심에 대해 생각해보니 사람들은 열등감에 잠식된 사람에게는 동정의 시선을 보내는 한편, 허영심에 중독된 사람에게는 경멸의 시선을 보내는 것 같다. 동정과 경멸이 무슨 차이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호의와 적의는 큰 차이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