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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정신』을 굉장히 인상 깊게 읽었기 때문에 다른 대표작인 이 책도 읽어봤음. 책 제목만 봐도 알겠지만 로마사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읽는다면 재미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함. 내 경우에는 로마사를 개괄적으로는 숙지하고 있는지라 재밌게 읽었음.
『법의 정신』과 다르게 일관되게 한 가지 소재만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더 직관적이라고 생각함.『법의 정신』은 여러가지 소재를 모두 포괄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임. 그러나 그 점 때문에 다소 난잡하다는 지적도 받은 바가 있음. 그런 지적을 한 대표적 인물은 또다른 저명한 법철학자인 제러미 벤담인데, 『도덕과 입법의 원칙에 대한 서론』에서 몽테스키외는 책이 진행됨에 따라 점점 골동품 수집가로 전락한다고 지적하고 있음. 이 말은 요컨대 다소 서문에서 밝힌 목적과 멀어보이는 부분이 많다는 이야기일 것임. 대비되는 이유로 체사레 베카리아의『범죄와 형벌』에 대해서는 호평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그럴 것이라고 추정됨. 아이러니한 점은 베카리아가 상기한 저작에서 '위대한 몽테스키외' 같은 언급을 할 정도로 이 저자의 열렬한 찬양자였다는 점이지.
다시『로마인의 흥망성쇠 원인론』으로 돌아가보겠음.
의외였던 점은 생각보다 마키아벨리의『로마사 논고』와 거의 말하려는 바가 일치한다는 거임. 로마의 몰락 원인이 청빈 사상의 상실, 법치의 동요, 전쟁 상태의 소강 등에서 기인한다고 본다는 점에서 그러함. 또한 로마 공화정의 사례를 통해 용병에 의존하는 경향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다는 점도 비슷한 듯. 물론 몽테스키외는 카르타고와 로마를 비교할 때에만 넌지시 언급했음. 왜냐하면 당대 프랑스 왕국은 자국군을 기용했기 때문임. 그래서 그 부분은 그다지 자세히 이야기할 이유가 없었던 것 같음. 그러나 역시 흔한 역사논평이 그렇듯 당대 프랑스군과 고대 로마군의 비교는 등장함. 요약하자면 "작금의 우리 군대는 기강이 심히 해이하다. 위대한 로마인들의 군대를 본받아라." 정도에 가깝다고 생각함. 이런 소리는 실은 모든 시대에서 볼 수 있는 것이지. 지금도 곧잘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최초의 상비군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이후로 언제나 되풀이 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듦.
이외에도 로마 왕정 부분 등에서도 둘은 의견을 같이 함. 그러나 이건 거의 대부분의 학자들이 다 비슷한 골자로 이야기하는 것 같음. 타르퀴니우스의 참주적 폭정이 민중들의 자유에 대한 열망을 각성시켰다는 거지. 루크레티아 사건은 혁명의 도화선이었고.
사실 근본적으로 하는 말은 비슷해도 표현은 두 철학자의 것이 다소 다르다고 생각함. 몽테스키외의 사상에 대해서 들여다볼 수 있는 건 바로 이 부분에서겠지. 몽테스키외는 로마가 제 2차 포에니 전쟁 이후 주변 4대 강국들응 전부 복속하면서 '정복'이라는 원동력을 잃었다고 말함. 왜냐하면 당대 무역의 중심이었던 카르타고와 이집트를 정복함으로써 막대한 이득을 취했기 때문임. 게다가 시리아를 점령하면서 그들의 사치스러운 문화를 배워오기까지 했음. 그런 이유로 로마라는 국가가 서서히 나태해졌다고 지적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 공화국은 오랫동안 번성했음. 몽테스키외에 따르면 두 가지 보완적 요소가 존재했으며 두 가지 몰락의 요인이 아직 출현하지 않았기 때문임.
전자는 감찰관과 호민관 직위의 존재임.
감찰관은 정치 조직 및 민간 사회의 부패 행위에 대해 감시하는 직책이었음. 감찰관직을 통해 공직자들이 사사로운 권력 남용을 도모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음.
호민관은 원로원이 다수의 인민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을 막기 위한 직책이었음. 호민관직을 통해 귀족과 인민들 간의 갈등 상황을 조정할 수 있었음.
후자는 상술한 대로 두 가지 요인으로 구성됨.
그 중 첫째는 정복지 주둔군들의 사병화임. 점점 로마의 강역이 넓어지면서 그들은 이탈리아 반도에서 먼 지방에도 상시 군대와 총독을 주둔시켜야 했음. 그 기간이 길어지니 그들은 서서히 원로원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음. 실제로 이러한 사병화된 주둔군들이 공화국 멸망에 큰 역할을 한 바가 있음. 그 대표적인 예시는 술라, 마리우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삼두들이 있겠음. 실제로 공화정이 폐지된 것은 반 정도는 이들의 지분이라고 봐야겠지.
그 중 둘째는 로마 시민권자의 급격한 증가임. 로마가 부강해지고 로마 시민권이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권력인 것처럼 변질되게 되었음.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열위에 있었던 동맹국들과 다시 전쟁을 벌일 위기에 처하게 됨. 결국 상황이 이렇게 되니 이탈리아 반도 전체에 로마 시민권을 수여했음. 그런데 그들은 정작 성벽 내의 로마 시민들과는 풍속, 법, 체제 등이 모두 상이한 터라 커다란 혼란을 불러오게 되었음. 요컨대 이때부터의 로마인은 이전의 그 로마인이 아니게 된 거임.
사실 이 두 가지에 포함은 안 되었지만 뒤에 등장하는 다른 요인들이 몽테스키외의 사상은 더 잘 드러내는 듯함. 그것은 다음과 같음.
처음에는 로마에서 사인들의 재산이 매우 적었음. 그러나 로마가 4대 강대국들을 모두 손에 넣으면서부터 그러한 기조는 바뀌게 됨. 서서히 공공의 영역을 넘어서 로마의 사인들까지 부유해지면서 경제적 불평등이 극심해졌음. 점점 원로원이 부유층을 위한 정치권력으로 변질되기 시작함. 권력자들이 금전을 탐하여 각종 부패 행위를 벌이게 되니 공화국의 헌정질서가 무너져가게 됨. 그런 상황에 염증을 느끼던 민중들의 지지를 이용하는 참주들이 여럿 등장함. 그 중 가장 결정적인 인물이 카이사르였던 거지. 그가 정치체를 완전히 장악해버리고 사실상 왕처럼 되면서 거기서 공화국 체제는 끝났다는 것이고.
결국 극심한 재산의 불평등이 시민사회의 붕괴를 야기했다는 골자가 바로 몽테스키외의 사상과 연결될 수 있다고 봄. 그는『법의 정신』에서 공화국에서는 정치적 덕성이 최우선이라고 했음. 이 정치적 덕성은 공리주의적 사고관과 준법정신 등을 포괄하는 의미에 가깝다고 봄. 그렇게 보면 로마와 그 시민들은 번영하면서 오히려 정치적 덕성을 상실한 것이지. 이것이 몽테스키외의 견해였다고 생각함.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공화정에 관한 부분이나, 제정에 관해서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도 간단히 적어보겠음. 사실 몽테스키외가 다른 근대 철학자들과 비교하면 제정에도 꽤 비중을 두는 편이라고 생각함.『법의 정신』에서도 제정과 그 이후 프랑크 왕국 등이 상당히 비중 있게 등장함.
제정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부분을 보면 전제정에 대한 몽테스키외의 부정적 인식이 그대로 전해짐. 이는 그의 대표작 전반에서 나타난다고 볼 수 있음. 예컨대『법의 정신』에서도 전제정에 대해 "오직 공포와 전제자의 독단적 명령으로만 유지되는 정체이다. 잠시라도 그가 긴장을 늦췄다가는 곧바로 아비규환 상태에 이른다."라는 내용의 지적을 한 바가 있음. 사실 오현제 제위기에 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호평하고 있긴 함. 몽테스키외는 비록 전제정이 지배자의 사적 감정에서 기인하는 명령과 그에 대한 민중의 공포를 통해서만 움직이지만, 유능한 지도자가 취임할 경우 전제적 권력이 국익에 있어 효용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인정했기 때문임. 물론 그렇다고 그가 전제정 옹호자였던 건 당연히 아님. 그는 입헌군주제에 가까운 정체를 지향했음. 게다가 그가 칭송한 전제군주들은 모두 문민 정권을 기반으로 한 이들이었음. 그는 결코 군사 정권 기반의 정체를 지지하지 않음. 군사 정부를 되살리려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계획을 두고 "나는 생각만 해도 역겨운 이런 구상을 굳이 다시 들춰내고 싶지 않다."라고 언급하는 데에서 알 수 있음.
그 점은 이 저작 내에서도 꾸준히 드러나는데, 군인 황제 시절을 다룰 때에 특히 그러함. 알다시피 제정 중기 즈음에 와서는 군인들이 공화정 시절의 횡포를 한참 넘어선 행보를 보였음. 아예 황제를 마음 대로 추대하고 폐위시키기까지 했으니까.
"그들은 최고 통치자의 자격으로 국가의 재산을 마음 대로 쓴 것이었다. 따라서 황제는 군대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선출한 폭력적인 정부의 일개 장관이 아니라면 무엇이었겠는가?"(241페이지)
그럼 왜 이때 제국이 멸망하지 않은 것일까? 구사일생할 만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임. 바로 로마가 성장하던 이민족들의 침공을 방어해냈고, 그 과정에서 참주였던 갈리에누스가 전사한 사건이 그것임. 이후 집권했던 클라우디우스, 아우렐리아누스, 타키투스, 프로부스 등이 유능했던 덕분에 제국은 몰락의 위기를 피했음.
제국이 동-서로 나뉘게 된 것도 최초에는 전술한 군국주의 시대의 폐해를 타파하기 위함이었음. 물론 그게 결국 분열의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분열 이전 제정기에 대해서는 의외스러운 부분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관한 평가임. 우리는 흔히 그에 대해 로마를 다시 살린 명군으로 평가함. 그러나 몽테스키외는 역으로 콘스탄티누스의 천도가 서방을 약화시켜서 분열을 낳았다고 말함. 요컨대 이때부터 동-서 양극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거임. 그러나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미 당시부터 수도 로마는 쇠락해 있었다고 함. 상기한 몽테스키외의 평가는 다소 자료의 시대적인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음.
제정기 후반으로 갈 수록 로마가 이민족에게 자주 고통 받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임. 몽테스키외에 따르면 군대의 유지 비용이 지나치게 부담이 되는터라 이민족 용병의 힘을 빈번하게 빌렸기 때문임. 이러한 정책은 로마를 세계의 지배자로 만들어준 관행과 온전히 대립되는 것이었지.
게다가 자국군의 운용이 줄어든 시점이라 이민족들을 전쟁으로 견제하기보다는 금전적으로 회유하려고 한 경향 때문도 있음. 참고로 평화를 돈으로 살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몽테스키외도 마키아벨리와 거의 같은 이야기를 함. 평화를 판매한 사람은 그것을 금전을 이용해 산 사람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한다는 거지. 왜냐하면 평화를 사는 사람은 그것을 지키고자 하면 계속해서 다시 사게 강요당할 것이니까. 그것이 당시의 로마제국이 놓인 상황이었다는 게 몽테스키외의 서술임.
서로마제국이 먼저 멸망한 이유는 그에 따르면 다음과 같음. 이민족들이 침입해올 당시 서로마제국에는 제대로 된 해군력이 없었음. 그러나 행정적으로 분리된 동로마제국은 해당 이민족들과 동맹을 맺고 있었음. 따라서 서로마제국에 해군 병력을 지원해줄 수 없었음. 이에 서로마제국에서는 이민족 침략자들에게 평야를 내주기로 결정했음. 이는 최선의 선택이었지만 결국 군대가 배신을 꾀했기 때문에 이 작전은 실패했음. 몽테스키외는 이 부분에서 또다시 마키아벨리와 비슷한 이야기를 함. 이때까지의 로마인들은 결코 양면전선을 구축하지 않았다는 거임. 동양식으로 말하자면 이이제이 같은 방법론을 고수해서 한 번에 한 국가와만 전면전을 벌였지.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시기의 서로마제국은 사방에서 이민족의 침공 위협에 시달렸음. 결국 서로마제국의 지배층들은 라벤나로 도망쳤고 그렇게 수도를 잃은 제국은 멸망하게 됨. 이 시기에 동로마제국이 큰 피해를 입지 않은 이유는 서로마를 점령한 이민족들이 서로 내전을 벌였기 때문임. 유스티니아누스가 서방 탈환을 계획한 배경도 거기에 있고.
동로마 멸망에 대한 몽테스키외의 견해는 그다지 특징적이지 않다고 봄. 우리가 아는 그대로에 가까움. 종교 권력의 세속에 대한 개입, 그로 인해 파생된 해상 패권의 감소, 또다시 선행하는 이유에서 기인한 상업의 쇠퇴, 그리고 페르시아와 이슬람제국의 침략. 동방 지역의 상업이 쇠퇴하면서 다시 서방 지역으로 부가 옮겨가기 시작했음. 대표적으로 옛 서방 지역에 있던 베네치아 공화국 등이 해상 무역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었지. 거기에 오스만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킴으로써 동로마제국 멸망의 쐐기를 박은 거라고 볼 수 있음.
쓰다보니 감상문이 아니고 로마 역사 요약처럼 되긴 했네. 근데 몽테스키외의 생각을 구체적인 역사 논평을 통해서 엿볼 수 있는 게 이 책의 주된 가치인지라.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