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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절이조차 담글 수 없는 없는 사회



작품에서는 의류유통 계열사에 종사하는 평범한 영인과 왼쪽으로 치우친 성향을 팍팍 드러내고 다니시며 시위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하시는 인범이 등장한다


불과 몇 페이지만에 쿠팡 노동자 사망 사건과 팔레스타인 전쟁 수요집회 창녀발언 사건 이태원 참사 당시 공천에 빠진 정치계(이거도 뭔 사건을 긁어온 거 같은데 모르겠다) 등


굵직한 시사 이슈들을 순식간에 인범의 입에서 드러낸다


평범한 영인은 그러한 것들을 달가운 대화주제라 생각하지 않고 넘기려 하나, 팔레스타인 사건을 단순 전쟁으로 치부하는 실수로 인해 인범에게 꼬투리가 잡혀 팔레스타인 전쟁은 전쟁이 아니라 이스라엘 정부의 학살극이다! 라고 일장연설을 듣고 만다.


하지만 일장연설은 듣기 지루한 법, 당연히 흘러 들으면서는 본인과 너무나도 공간적, 정신적으로 거리가 먼 일이라고 치부하고 만다.


그런 기류를 인범이 읽었을까, 인범은 나즈막히 본인의 고민을 토로하는데, 일장연설한 사람은 도대체 어디가고 이러한 중요한 일이 영인과도 같은 사람들에게 사사로운 일로 치부당하고 있다고, 그러한 사람들이, 사회의 기류가 나를 죽이고 있다고 토로한다.



죽인다, 도대체 무어가 그녀를 죽이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영인은 나중에 인범의 인스타를 보고 본인이 다니는 회사가 만드는 음료수의 원자재가 이스라엘의 것이라고 낙인 찍는 게시물을 보게 된다.

그걸 본 영인은 피꺼솟해서는 인스타 DM으로 한껏 쏟아내려다 결국 다 지워내고 만다. 지우고 쓰고를 반복하다 마지막에는 너는 그러한 일로 죽을 수 없다. 그건 너의 일이 아니다. 고 단언하려다가 결국 그것마저 지워내고 만다


하지만 인범이 그러한 것을 올려내는 것에 알고리즘이 감염된 것일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인육치킨으로 만들어 버리는 영상들이 영인의 알고리즘에 침범해오고, 그녀는 기존의 수면유도 기조의 릴스들에서 자극적인 전쟁 참사 릴스들로 알고리즘이 까득히 차버리고 그걸 다 탐독해버리고 만다.


사람 팔다리 날라가고 으깨지는 걸 여자의 몸과 정신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힘들었던 것일까, 그녀는 팀장에게 불려가선 최근 보고서의 글이 엉망이라는 지적을 받게 된다.



쓰잘데 없는(필자 개인 생각임) 일들이 지나가고 영인이 인범의 차를 얻어타게 된다.


영인은 인범을 닮아가나, 본인도 악에 대하여 고뇌하고 있다며 토로한다. 그러면서 내가 저지른 일은 아니지만, 내 손이 아예 안 거친 일은 또 아니라고 한다.


과거 회상을 하는데, 영인이 친구들과 갯벌에 놀러가서 게를 가득 잡았을 때의 일이었다. 갯벌에서 어쩌다가 새끼 낙지를 주웠는데, 그걸 게가 가득 담긴 통에 무심코 넣으니 게가 낙지를 순식간에 낙지탕탕이로 만들어버리더라~ 하는 과거의 일이었다. 낙지탕탕이가 너무나도 빠르게 만들어지는 모습에 충격먹은 영인은 갯벌에서 빠져나간다.


그러한 일을 회상하며, 어릴 때 철이 없었지 ㅇㅇ... 악의는 없었고 그저 멍청했을 뿐이라며 내려치기를 시전한다.


그러면서 목적지로 가던 와중, 터널서 벽을 들이박은 사고차가 가만히 있는 걸 보고 영인과 인범은 비상등을 키고 내린 채 도와주러 간다. 


사고차에는 틀딱과 농기구 여럿이 놓여 있었는데, 할범은 뭐 음주사고라도 저지른 건지 늦은 보험료 할증이 무서운 건지는 몰라도 영인과 인범이 도와주려고 하자마자 액셀을 밟는 미친 기열찐빠를 벌인다. 하지만 앞을 들이박은 노인네가 피를 철철 흘리면서 액셀을 밟아보려 해봐야 얼마 못 갔고, 결국 인범이 차를 세우는데 성공한다.


영인은 인범이 그러는 동안 신고를 하며 뒤에 터널을 돌아보는데, 터널 입구가 밝아서 밝은 도로를 지나오던 사람들은 차를 발견하지 못 하겠다- 라는 생각을 하고, 실제로도 차들이 쌩쌩 밟아서는 들이박을 뻔한 일이 일어난다.


개같이 밟아대는 차 새끼들을 보며 영인은 비상등 보고도 속도를 안 늦추는 새끼들에 빡치고 만다. 내가 왜 저 새끼들을 믿고 있나, 내가 저 새끼들이 속도를 늦출 거라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을 자기 몸의 떨림이 이미 긍정하고 있지 않느냐, 라는 생각까지 닿아서는 인범의 차에 가서 경적을 존나게 눌러대며 소설은 끝난다.




전형적인 동화되기의 형식인 한국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양극의 말을 둘 다 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작가는 주인공의 편이고 역으로 주인공은 작가의 편이고 말이듯


결국 주인공이 이스라엘이 영토확장 한답시고 총질하는 거를 부정적으로 드러내는 정신착란과 중후반부에 드러나는 인범과의 동화가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괜히 한국문학이 겉절이라고 불리는 게 아닐거고

사실 모든 리얼리즘을 다루는 현대문학은 겉절이, 겉절이도 넘어서

그냥 자극적인 신 맛 팍팍 나는 초장에 버무려낸 '초무침' 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필자입장에서는

팔레스타인이 반대로 하마스로 민간인 발모가지 짤라서 걸고 다니고 뭐하고 뭐하고는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 참으로 특정 성향에 입각한 작품이 아닌가 싶었다


'그딴 걸 드러내면 그게 82년생 김지영이지 문학이냐?' 라고 하겠지만, 그래서 난 현대의 사건을 다루는 모든 문학들이 자극적인 '초무침' 일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는 거였다


팔레스타인이 하마스로 사람 발 모가지 자르고 다니는 것도, 이스라엘이 건물째로 백린탄 쏴서 인육치킨 만드는 것도, 사실 이게 누가한 것인지 정확히 알질 못 한다. 그저 우리는 뉴스를 보고 저 멀리의 것, 우리의 일이 아닌 남의 죽음을 소비할 뿐이지


심지어는 여기서 빵에 들어가셨다가 나오신 분의 명설 '현대전은 하이브리드전' 말답게 여론전으로 서로의 전쟁 범죄를 서로에게 떠넘기고 앉아있는 촌극까지 벌어지고, 이러한 하이브리드전, 혹은 그러한 '전'이라고 붙일 수조차 없을 정도로 첨예하게 온갖 문제들이 드나들고 꼬여있고 산재되어가고 있는 온갖 사회 문제와 심지어는 그러한 문제들이 이 조그마한 디시에서조차 벌어지고 있는 현대사회의 비참한 말로 속에서


실리적이고 합리적인 저울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이상 그 어떠한 사건이든 누가 잘못했네, 누구 편 들어야겠네- 할 수가 없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본인의 일이 아니라면. 혹은 본인의 일조차도.


그러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정신적 피로를 토로하는 영인과 정신적 피로감을 설파하고 다니는 인범이 나온 작품은 초반엔 실로 인상 깊었으나


결국 어떠한 중립, 혹은 이 불쾌한 현실을 그대로 떠 옮긴듯한 긴장을 유지하지 못하고 어느 한 축으로 흘러버린, 무언가의 불편한 기류로 흐르고자 토로하는 듯한 결말에 나는 조금 실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