걍 삘받은대로 끄적여봄


한줄요약

중국에도 그리스 신화 영웅같은 군주들이 많았을텐데, 이걸 죄다 덕인 예니 하는 획일적인 이미지로 표현한 유교사관의 삭막함이 아쉽다.



동아시아 역사, 특히 중국사를 해체함에 있어 보다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화하 개념을 재정의하고자 한다.

화하란 본디 중국문명과 그 지역을 칭하는 용어로 전설상의 국가인 하나라에서 유래한 것인데, 나는 예서 화와 하를 구분하고자 한다.

화가 중국문명이 동아시아에서 차지하는 문화적 중심성을 나타낸다면, 하는 지역적 중심성을 나타낸다.

내가 드러내려는 것은, 그간 중국을 동아시아의 중심으로 만든 원동력은 화와 하의 균형적인 상호작용이라는 것이다. 허나 실제 역사에서 중국은 끊임없이 화를 은폐시키고 하를 강조해왔다. 즉 중국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문화를 발전시킨 주체들의 인간적 노력보다 중원이라는 땅을 더 중요한 요소로 평가해왔다는 것이다.

가령 공자는 당대 기준으로 중국 역사상 중요한 인물로 요, 순, 우, 탕왕, 문왕, 무왕, 주공단 7명을 언급했다. 동시에 이들이 위대한 이유는 천명을 따라 예를 바로세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헌데 이는 마찬가지로 공자가 언급한, 중원에 임금이 없는 것이 오랑캐에게 임금이 있는 것보다 낫다는 내용과 세가지 지점에서 모순된다.

첫째, 위에서 언급한 인물들 각각이 그 전후로 중국의 문화, 혹은 신앙체계 자체가 바뀌었다. 가령 요순시대는 세습군주가 없던 사실상 선사시대였다. 탕왕이 시작한 상나라는 조상신을 섬기고 인신공양을 일삼던 국가였다. 문왕, 무왕, 주공이 시작한 주나라는 비로소 천명사상에 따라 예법으로 다스리던 나라이다.

예서 천명이란 주나라 이후에 등장한 개념이고 그 이전에는 주나라의 원형인 주족이 믿던 토착신일 따름이었다. 이는 달리 말하면 천명이 있어 주나라가 세워진게 아니라 주나라가 세워졌기에 그들이 믿던 천신도 중국대륙의 최고신이 될 수 있었다는 의미이다.

둘째, 천명론에 따르면 군주가 덕이 있는지 유무에 따라 천명이 이동하고 새로운 군주를 세운다. 즉 천명이란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위의 7명의 군주는 각기 다른 지역에 기반한 세력이었으나 모두 천명에 따라 군주가 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헌데 공자는 천명이 오직 중원이라는 한정된 지역 내에서만 이동한다고 단정짓고, 그 근거를 중원이 가지고 있는 문명성, 혹은 중심성에서 찾는데 이는 순환논리라고 본다. 애초에 군주가 덕이 있어 예법이 바로서고 이에 따라 천명이 함께하는 것이라면 오랑캐의 군주라고 해서 덕이 있고 예법을 바로세워서 천명이 함께하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 몽골고원, 만주, 한반도, 심지어 일본의 군주에게 천명이 이동할 수는 없는가?

셋째, 공자가 간과한 가장 중요한 것은 위에 언급한 7명의 군주가 모두 당대 기준으로 미개하다고 멸시받는 변방 오랑캐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기록이 있는 탕왕과 주 문왕, 무왕, 주공은 확정적으로 당대 기준으로 오랑캐였다. 나아가 나는 서경에 기록된 요순우 임금의 치수사업, 관료 파견, 그리고 이들이 활동한 지역을 고려할 때 이들 역시 서역에서 건너온 오랑캐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공자는 중원이 늘 중심이라고 했지만, 정작 공자 시대의 중국 문명이 있기까지 역사를 주도한 세력들은 중원이라는 경계에 위치하던 오랑캐들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경계 개념인데, 아예 중화문명 외부에 있는 미개부족이라면 중국 문명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을 것이다. 반대로 경계 안쪽에 있는 세력들은 병 속의 파리 신세이기에 그 시대 중국문명의 패러다임 바깥에서 사고하기가 어렵다. 가령 주나라가 당대 보편적이었던 상나라의 인신공양 전통을 끝장내고 덕치라는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 문명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면서도 서방의 선진문명과도 접촉이 가능했던 지리적 특성 때문이었다고 본다.

다시 화하 개념으로 돌아온다면, 화가 중국 문명을 혁신하는 주체, 즉 경계인이라면 하는 직전 시대의 중국 문명을 나타낸다. 가령 상주교체기에 상나라가 하 개념이라면 주 문왕, 무왕, 주공 단과 같은 영웅들은 화 개념이다. 하고 중국의 유학자들은 화와 하를 균형있게 보기보다는 자신들이 살던 시대의 모습을 과거로 소급해서 투영함으로서 중국 문명을 변화시켰던 인물들의 영웅적인 면모와 개인적인 서사들을 은폐시켰다고 본다. 가령 주 무왕의 덕이란 사실 그가 이끄는 서방 군대의 무력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상나라는 아즈텍 제국, 주나라는 스페인 제국, 주 무왕은 코르테즈, 주나라의 천명사상은 기독교에 비유되곤 한다. 스페인이 아즈텍 제국을 공격하자 그간 아즈텍 제국에 인신공양 제물을 징발당하는 등 짓밟혀왔던 주변 부족국가들이 일제히 봉기하여 스페인에 협력하여 아즈텍 제국을 멸망시킨다. 주나라가 상나라를 멸망시킨 과정이 사실상 이와 똑같다. 이 때 코르테즈나 주 무왕이 실제 덕이 있고 인품이 훌륭한지 여부와 무관하게 주변 부족들에게 이들은 당연히 칭송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주 무왕과 코르테즈의 영웅적인 서사가 덕으로 받아들여지고 천명이라는 명분이 더해진 것이지 그 역순이 아니라는 것이다.

해서 내가 하고자 하는 작업은 중국 역사에서 유교사관에 의해 끊임없이 거세되어왔던 화의 개념을 재조명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작업이 유교사관에 대한 비판이나 반대냐, 결코 그렇지 않다. 단지 그간의 유교사관이 갖고있는 내적 모순을 드러내고 재구성함으로서 좀 더 완성도있고 짜임새있는 유교사관을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이를 위해서는 유교사관이 군주들에게 요구한 덕과 예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밝혀야 하는데, 당연하게도 이는 불가능하다. 왜? 시대마다 군주마다 맥락에 따라 덕과 예로 평가받은 요소가 다 달랐을테니까. 허나 지금까지 유교사관은 덕과 예의 개념을 획일적으로 적용해왔다. 그것은 결국 중국의 귀족이던 유학자들의 기득권과 권위를 존중하는 것을 덕과 예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