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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온 것이 피부로 느껴지는 요즘이다. 가로수에는 개나리와 목련이 피어났으며 매화의 분홍빛 연무는 엊그제 내린 비로 벌써 떨어지고 있다. 화마가 환란을 일으켜 어지러운 요즘이지만, 생명은 기적처럼 늘 그 자리에 돌아와 싹을 틔운다. 황무지는 생명의 가능성을 언제나 품고 있다. 자연의 조화는 경이롭다. 달리 무슨 말로 나의 느낌을 표현할 수 있으랴. 「땅의 혜택」은 이토록 아름다운 봄을 맞아 자연을, 그리고 자연과 하나 된 인생의 아름다움을 모두 느끼기 위해 읽은 작품이다.
이사크가 황야를 '셀란로'라고 이름 붙여진 낙원으로 스스로 바꾸어가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황야는 개간되어 더이상 원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었다. 축복이 내려진 땅이었고, 오랜 꿈이 실제 삶으로 실현되었다. 아이들이 집 주위에서 놀고 있었다. 푸른 산까지 아름답고 넓은 숲이 펼쳐져 있었다." 이사크가 어떤 경로로 황무지에 왔는지, 이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끝내 알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사크가 황무지에 꿈을 실현한 것이 너무도 중요하기에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 또 이사크는 자연에 대해 특정한 관념을 갖지 않는다. 강경한 자연파도 아니어서 기계를 다루고 국가의 행정 절차에도 성실히 참여한다. 그는 관념을 실현하기 위해 자연을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 타성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삶의 낙원이 이사크의 목표였다. 그래서 그는 자연을 돈벌이로 보는 다른 인물들, 자연으로 돌아와놓고 의지가 부족해 미적거리는 다른 인물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땅의 혜택」의 등장인물들 중에서도 이사크가 물질적으로도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기는 했지만, 그 점을 배제하더라도 다른 불순한 목적 혹은 수단이 전도되어 생긴 목적이 아니라 '행복한 삶'을 목표로 자연에서 사는 이사크야말로 진정한 현자다. 스스로 파종하고 스스로 거두며 그것에 만족하는 이사크의 태도는 모든 생명의 귀감이었고, 실제로 이사크는 가축과 작물뿐만이 아니라 많은 생명을 번성시켜 셀란로를 삶이 넘치는 곳으로 만들었다. 서로 조화를 이루며 자신에게 필요한 것 이상을 탐내지 않고 스스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건전히 노력하는 그의 태도가 퍼져서 셀란로의 기적을 빚어낸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의 부단한 노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이사크가 셀란로를 번성시키기 위해 쏟은 노력은 말 그대로 광범위하고 고단한 작업의 연속이었다. 감히 나로서는 따라 할 엄두조차 안 날 노력이다. '낙원을 일궈내려면 이 정도의 노력은 해야 하는구나'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대목들이 많았다.
한편 「땅의 혜택」은 아름답기만 한 전원시(田園詩)는 아니다. 「땅의 혜택」의 아름다운 장면들을 좀먹는 장면들도 계속 나온다. 이 장면들은 모두 '허영심과 질투'라는 단어로 묶어서 설명할 수 있다. 결국 사람은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피할 수 없으며, 어울리면서 본능적으로 자신과 상대를 비교하는 것도 피할 수 없다. 잉에르와 올리네가 서로의 콤플렉스로 서로를 시기하고, 바르브로가 낙원을 자신의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 억지로 찾은 결과, 「땅의 혜택」에서는 영아 살해 사건이 두 건이나 일어난다. 정말 충격적인 장면들이었다. 사실 이들의 갈등의 단초는 삶 전체를 놓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었다. 시간을 두고 자신의 마음을 돌보고 대화를 나누며 풀어갈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하지만 조급해진 마음은 그럴 생각을 하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죄를 저지르고 만다. 문득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라는 기독교의 교리가 이런 의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고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만족을 하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 같다. 삶을 단거리 경주처럼 짧은 시간에 성과를 내야 하는 경쟁의 연속으로 보지 말고, 그저 자신 앞에 주어진 것들을 써서 최선을 다해 살아보고, 그 결과가 좋든 안 좋든 과정에 만족하며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잉에르가 강제로 겪은 도시 생활이 그녀에게 고풍스러운 성장을 선물했듯이, 인생 속 사건들은 인생 전체에 어떤 영향을 줄지 예상할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당장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손에 돈이 없다는 사실을 원망하지 말고, 지금의 부족함 또한 나에게 주어진 자원이라 생각하고 만족하며 활로를 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늘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자연은 늘 풍족하게 베풀지는 않기 때문에 좋은 수단은 못 된다. 오히려 좌절을 선사하는 악마처럼 보일 때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고 오만함을 버린 채로 자신의 꽃을 피우기 위해 노력한다면, 즉 자연의 일부로서 자신의 삶에 충실하면, 자연은 인간의 행복을 빼앗지 않는다. "자연은 서로 다투지 않고 서로 옳다고 인정해주며, 서로 경쟁하거나 어떤 이득을 얻기 위해 경주하는 대신 손을 잡고 가지. 자네들 셀란로 사람들은 그 한가운데에 있으면서 번창하고 있어. 자네들은 이 땅에 꼭 필요해. 자네들이 생명을 유지하지. 한 세대가 다른 세대를 잇고, 한 세대가 죽으면 죽으면 다른 세대가 그 자리를 채워. 영원한 생명이란 바로 그런 거야. 그래서 자네들이 얻는 게 뭔가? 올바르고 정의로운 생활, 어디로 보아도 진실하고 솔직한 삶이지. 그래서 자네들이 얻는 게 뭔가? 셀란로의 자네들은 누구에게도 억눌리거나 지배받지 않고, 간섭받지 않고 힘과 권력을 누리지. 모든 게 자네들에게 호의적이라니까. 자네들이 얻는 건 그거야."
현대인은 안타깝게도 자연으로 돌아가기 여의치 않다. 우리 시대에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조차 자본이 많이 든다. 도시의 안락함을 겪은 사람들은 특히 자연으로 돌아갔을 때 적응하기 정말 힘들 것이다. 이사크의 아들 엘레세우스가 그랬듯이. 다만 삶의 본질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커다란 나무든 높은 빌딩이든 변하지 않는다.핵심은 내게 주어진 것들에 만족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 내 앞에 있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다고 팽개치는 것은 오히려 이치에 맞지 않는다. 세상에는 다양한 생명들이 있고, 모두가 각양각색의 형식으로 삶을 향유하고 있다. 이 모든 모습들은 각자 특별함을 갖고 있다. 이사크처럼 자연의 낙원을 세우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하지만 자신만의 낙원을 찾아 미국으로 떠난 엘레세우스를 두고 결코 허영심에 찌들어 잘못 선택했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소년기에 꼬인 그의 운명도 그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조건이다. 엘레세우스가 아버지의 무의식적인 지혜를 그대로 본받을 수는 없게 됐지만, 셀란로에서 자라며 배운 것들을 기억한다면 엘레세우스도 미국에서 분명 자신이 뿌리내릴 곳을 찾아내 굳세게 앞날을 버텨내리라 믿는다. 나아가 우리들도, 아파트를 버리고 산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지만, 이렇게 책과 사유를 통해 자신의 조건에 만족하고 최선을 다하는 삶의 자세를 배워감으로써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땅의 혜택」으로부터 정말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것을 배웠다. 아름다운 전원시, 세속적인 인간들의 희비극, 인간과 사회에 대한 성찰이 모두 들어 있는 종합 소설이었다. 굳이 치면 작가가 만년에 보인 행적 외에는 흠이 없는 소설인 것 같다. 물론 그마저도 「땅의 혜택」이 가진 흠결이라고 보기에는 어렵지만. 마지막으로 산불이 전국에서 기승을 부리며 많은 생명들을 해치고 있다. 이것이 인재인지, 책임을 누가 져야 할지는 나중에 판단할 문제다. 그저 같은 생명으로서 동정심을 느끼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그렇게 자연이 입은 상처가 빨리 회복되기를 바랄 뿐이다.
잘 봤음 - dc App
감사합니다 ㅎㅎ
필력 뭐임.. ㄷㄷ 굶주림 읽으려 하는데 읽어보셨나용
읽어봤는데 엄청 오래 전이라 잘 기억이 안 나네요... 근데 읽다가 뭔가 정신병 옮을 것 같아서 인상적이었던 건 기억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