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문제
내가 지금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임의의 집합족이 선택 함수를 갖느냐 하는 문제(*1)보다는 훨씬 사소한 것이다. 심지어 가산(countable) 선택이나 유한 선택도 아닌, 단 한 번의 선택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눈 앞에 두 벌의 옷이 있다. 그 중 하나를 입어야 한다면 어떤 것을 입을까? 둘 중 하나에 큰 결함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한 쪽이 명백할 정도로 더 가까이에 있지도 않다. 지금의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별 문제 없이 한 쪽을 선택해내지만, 6살(*2) 무렵의 내게는 이것이 불가능한 과제였다. 나는 부모님이 '아무 거나 골라 입으라'며 던져준 옷들을 멀뚱히 쳐다보기만 했다. 부모님은 타일러 보기도 했고 엄하게 야단을 쳐 보기도 했지만, 매번 아무런 효과도 없이 결국은 직접 옷을 골라 주시는 것으로 소동이 끝났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 나는 "다음 문장의 빈 칸을 채우세요. '나비가 ________ 날아간다.'"같은 국어 문제에 대해 답을 제시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여러 개의 가능한 답들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수학 문제에 대해서는 언제나 하나의 답이 있긴 했지만.
어째서 간단한 선택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저 '선택 장애'가 정확히 몇 살 때 시작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6살 무렵에 어설픈 형태로나마 내 머릿속에 들어있었다는 게 분명한 두 가지 생각은 다음과 같다.
1. 선택의 인식론적 불가능성: "그냥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고 하는데, 내가 어떤 것을 마음에 들어하는지는 어떻게 알지? 마음이란 게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2. 선택의 비윤리성: "내가 두 벌의 옷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가 쓸쓸해 할 거야. 하루 종일 옷장 안에 처박혀 있어야 할 테니까. 내가 어떤 옷을 입지 않는다고 해서 옷이 외로워할 거라는 근거는 없지만, 그렇지 않다고 확신할 근거도 없다. 게다가 옷 같은 물건들은 표정을 볼 수가 없으니까 대체 얼마나 큰 고통을 느끼고 있을지 알 수 없고. 어쩌면 무한대가 아닐까? 물론 옷 뿐만 아니라 시계, 공기 분자들, 소설의 주인공, 그리고 '단어들'도 마찬가지다. 무수히 많은 존재들의 무한한 고통을 막아내기 위해서라면 내가 옷을 입지 못해 감기에 걸려도 무슨 상관일까?"
지금은 저렇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지만, 당시 나는 '가능한 것'과 '윤리적인 것'을 구분하지 못했다(않았다?). 즉, '선택은 비윤리적이지만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으니까 하는 수밖에'라는 식으로 생각할 수 없었고, 선택의 비윤리성과 불가능성은 내가 선택을 하지 않는 데 대한 '두 가지'가 아닌 '한 가지' 이유였다. 그 이유를 대충 추측해보면,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윤리성 기준을 내게 준 사람들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들과 겹치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부여받은 윤리성 기준을 논리적 극한까지 몰고 나가면 정작 그 사람들의 지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 아이러니였지만.
만약 '비윤리성' 부분이 처음 두 문장으로 끝났다면 '귀여운 아이'라는 말을 듣지 않았을까. 하지만 거기에서 끝낼 수 없었다는 데에서 모든 문제가 발생했다. 물론 저렇게 분명히 생각할 수 있게 된 건 9살 무렵의 일이었지만. 지금 보니 비윤리성 논증은 어떻게인가 파스칼의 영향(*3)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단어들'을 강조한 이유는, 그야 나비는 나풀나풀 날아갈 뿐만 아니라 하늘하늘 날아갈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를 당시의 내가 모르던 어려운 표현인 '개념들'로 대체하고 나면 그 위험성이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개념의 바다는 수영이나 낚시보다는 질식하기에 알맞은 곳이다.)
선택 문제는 그 뒤에 내가 경험할 문제점들의 전형으로, 다른 사람들이 아주 간단히 할 수 있는 일이라도 내게는 불가능하거나 극히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어떻게 저 사람들은 '분명히 불가능한 일'을 마치 당연한 것처럼 해내는가? 그리고 나는 왜 그럴 수 없는가?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이 꾸러미의 중심 주제 중 하나다.
선택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었는가? 나는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복잡한 체계를 고안해내면서, 일단은 아무 것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체계가 어떤 것이었으며 과연 그것을 선택 문제의 '해결'이라 할 수 있었는지는 다음 글인 <과속 방지턱을 지나가는 올바른 방법>에서 알아보자.
*1 선택공리에 대해서는 http://en.wikipedia.org/wiki/Axiom_of_choice를 참고하라.
*2 특별히 지정되지 않을 경우, 이 꾸러미에 포함된 모든 글에서 모든 나이는 태어날 때 1살이며 매년 1월 1일에 한 살을 더 먹는 '한국식 나이'를 말한다.
*3 파스칼의 내기(http://en.wikipedia.org/wiki/Pascal%27s_Wager)를 참고하라.
솔직히 내 빈약한 지식과 두뇌로는 너무 난해한 것 같아
인생 쓸데없이 복잡하게 사네
씹덕같아요
씹덕맞아요
얼추 뭘 얘기하는지는 알겠는데?
그래? 다음거도 올려도 되나?
언어로는 열린 선택, 사실은 닫힌 선택.
이게 뭔데? 독서랑 무슨 상관?
누가 쓴거냐..
여기서부터 뭔지 모르겠음 >>>>선택의 비윤리성과 불가능성은 내가 선택을 하지 않는 데 대한 '두 가지'가 아닌 '한 가지' 이유였다. 그 이유를 대충 추측해보면,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윤리성 기준을 내게 준 사람들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들과 겹치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부여받은 윤리성 기준을 논리적 극한까지 몰고 나가면 정작 그 사람들의 지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 아이러니였지만.
나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두 가지 모두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하라는 것 뿐인데 두 가지를 극한으로 가면 서로를 상충해서 아무것도 못 한다는 거 같아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