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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있으니까, 살아가니까,
과거에 끊임없이 얽매여 있으면서도,
레드애플을 꼬나물고, 가끔은 술도 한 잔 하면서,
계속해서 미래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거겠죠.
한 줄 요약
가볍게, 그러나 경망스럽지 않게.
서평단을 신청해서 받은 책이다. 사실 첫 서평단인데 서평 마감 날짜가 있는지 모르고 기한을 넘겼음(...) 뭐, 늦은 건 늦은 거고, 읽은 건 읽은 거니 소임은 다해야겠지.
김쿠만을 처음 접한 건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가작 '옛날 옛적 판교에서'가 처음이었고, 그 다음엔 신들린 게임과 개발자들이었다. 단편 하나, 장편 하나 접한 상태에서 김쿠만 석자는 독갤 아웃풋 내게 있어서 '가벼운 작가' 쯤으로 인식됐다.
여기서 말하는 가벼움은 부정적 의미의 가벼움이기보다는, 경쾌함 내지는 산뜻함(?)의 가벼움에 가깝다. 긍정도 부정도 아니라 그냥 말 그대로 가벼운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주제파악이 된 문장들이 제자리를 당연하다는 듯 차지해서 앉아있는 모습들은 다른 작가에게선 보기 힘든 것이기도 했다.
굳이 스펙트럼을 따지자면 '옛날 옛적 판교에서'와 '신들린 게임과 개발자들'은 블랙코미디 향이 0.002% 정도 첨가된 산뜻한 가벼움이었었는데,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판교'로 묶인 단편집들은 똑같이 블랙코미디 향이 첨가됐지만, 산뜻하기보다는 조금 미적거리는 '느린 가벼움'이었다.
이 단편집에서 핵심적인 키워드 3개를 꼽으라면 '과거' '현재' '미래'가 될 것이다. 농담이 아니라 표제작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판교(옛날 옛적 판교에서)부터 마지막 단편 미래까지, 시대 배경을 막론하고 모든 단편이 과거를 추억하거나 회상하는 현재가 있지만 그 끝은 미래를 바라보게 된다는, 굉장히 도식적인 결론을 맺는다.
요컨대, '어떤 추억(혹은 회상)할 만한 과거'가 존재하고, 그 과거를 되살리는 현재의 주체가 있으며, 그 주체는 어찌됐든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의 다양한 변주가 이 단편집의 단편들인 셈이다. 이렇게 보면 굉장히 식상할 것 같긴 한데, 실제로 식상해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만, 내겐 조금 독특하게 다가온 점도 있었다.
첫째로 과거에 대한 태도가 굉장히... 가볍다. 어떤 중요하고도 진중한 과거가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엄청 슬프거나 씁쓸하거나 찝찝한 과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영광스럽거나 리즈 시절 같은 과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땐 그랬었지...에 가까운 과거들이고, 과거가 더 좋냐는 물음에 모든 단편이 섣불리 긍정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그랬던 과거가 있던 것이고, 미래를 모르기에 과거를 떠올리는 식으로 다뤄진다. 오히려 과거를 청산하거나 과거는 과거로 두는 식의 결론이 종종 나오기까지 한단 점에서, 과거는 그렇게 특별한 지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면 대체 왜 과거를 떠올렸는가? 라는 질문에는 윗문단에서 언급했듯, 그건 미래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래를 아는 자 역시, 과거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한다.(단편 '미래')
즉, 미래로 향하기 위한 과거는 굳이 특별할 게 없어도 된다. 떠올릴 만한 과거면 뭐든 좋다는 식이다. 그게 설령 끝이 좀 안 좋았던 전 여친이 됐든(단편 '남해, 자율주행 금지 구역'), 100년 전의 장교와 병사가 됐든(단편 '백년열차'), 혹은 전쟁 영웅이 된 뽕짝 가수가 됐든지(단편 'Encyclopedia of Pon-Chak') 간에 말이다.
그렇기에 과거는 굳이 붙잡을 것도 없다. 이 단편집들의 주인공들은 과거에 특별한 미련과 애착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과거를 증오하거나 결별하려고 애쓰는 것도 아니다. 과거에서 미래로 향하는 과정은 지극히 당연하고, 또 자연스럽다. 마땅히 그래야 할 것처럼.(단편 '남쪽 바다의 초밥')
둘째로 이러한 도식을 SF에서도 그대로 적용시켰단 점인데, SF라기엔 거의 이름만 빌린 수준이라, 어떤 SF적 이미지를 가져오기보다는 굉장히 보수적인(?) 변화를 담아낸 근미래SF라고 봐도 될 것이다.
사실 이건 전에 읽은 장편에서도 대강 눈치를 챘기에 따로 실망하진 않았지만, SF가 구색에 가까운 건 사실이다. 뭐, 이것도 SF다! 라고 하면 딱히 부정할 말이 없는 구색이지만, 동시에 SF적인 무언갈 기대하기엔 한없이 부족한 것 역시 사실이다.
특히 뽕짝 가수나 백년열차는 가상의 세계선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것 하나 새롭게 다가오지 않음은 소재의 레트로함보다는 그걸 다루는 문장이 '전혀 특별할 것이 없다는 듯'한 태도를 취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단편집 전체를 통틀어봐도 화두를 던지는 소설은 없다. 단언컨대, 없다. 다만 '당연하다는 듯' 흘러가는 김쿠만 세카이의 현재, 그리고 미래는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한다.
분명 소설 속 세계는 우리가 아는 세계와 현실과 분리됐고 분기됐지만, '공통된 과거(주로 레드애플을 위시한 타란티노적 오마주와 각종 소재들)'를 통해 묶인 하나의 '가능성'으로 제시된 이상, 우리는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단편집은 SF라고 부를 수 있다. 장르소설적 재미는 기대하면 안 된다는 게 마음이 아프긴 해도 말이다.
전체적으로 강렬한 작품은 없었다. 그러나 특출나게 못난 작품도 없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단편 '타란티노의 마지막 필름'이 좋았다. 대놓고 타란티노가 나와서 그런 건 아니고, 현재와 과거, 상상과 현실을 뒤죽박죽 섞어버린 점에서 구성적으론 제일 튀었기 때문에 좋아한다.(여담으로 노벨문학상 언급이 있는 걸로 봐선 한강 수상 이후에 쓴 단편이거나, 수상 이후에 수정한 듯하다)
단편 하나하나 리뷰하지 않는 까닭은, 직접 읽어보면 아는데, 연작을 노린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단편집으로 엮일 걸 가정했는지 몰라도 다른 단편의 소재들(특히 백년열차)이 꾸준히 작중에 언급된다. 작가의 의도가 하나의 연작, 하나의 작품으로 읽히길 원하는 것 같으니 나도 그렇게 전체적으로 리뷰를 해봤다.
좀 늦은 서평이긴 해도 즐거운 독서 시간이었다. 끝.
+
과거를 굳이 붙잡을 것도 없다(작가는 데뷔부터 지금까지 영찔이만 아는 타란티노를 울궈먹는다)
어허 애용한다고 해주시죠
다른 갤럼 평은 레트로마니아 때보다 훨 나아졌다던데
레트로마니아는 내가 안 읽어봐서 몰?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