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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심오한 철학이 있는거같은데 딱 와닿지는 않는 소설이었다. 뒤에있는 역자해설을 기대했건만 뭔 해설논쟁이 뭐가 옳고 이런소리만해서 도움이 안됐다. 역자해설을 위해서는 다른 출판사의 책을 보는것을 추천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세상 무심한 성격의 사나이다. 소설을 많이 읽어본것은 아니지만 하루키소설이나 헤밍웨이의 소설의 주인공처럼 주인공은 별 노력없이 그저 묵묵히 세상에 순응해가며 감정없이 살아간다. 책에는 주인공의 감정묘사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유일한 감정의 표현은 그저 그의 여자친구에게 성욕을 느낀다는 것일 뿐이다. 이점이 하루키와 비슷하다 느꼈다.
주인공의 어머니가 죽었다는 비보를 접하며 소설은 시작된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오늘 어쩌면 어제일수도' 라는 임팩트있는 유명한 대사로 말이다. 주인공의 시각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신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애초에 가난했기 때문에 부양을 하고있지 못하던 터였고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한 절실한 감정을 주인공은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다니던 작은 회사를 휴직하고 주인공은 초상을 치른다.
어머니의 초상을 치르고 주인공은 그토록 욕망하는 여자친구와 시간을 보낸다. 여자친구는 그에게 그를 사랑하냐고 물었고 그는 아니라고 말했다. 결혼하자고 했을때는 그러자고 말했다. 사랑없이 결혼할수 있냐는 말에는 그런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주인공에게는 성욕의 감정이 있을뿐 삶과 죽음 사랑과 영원의 약속 등의 추상적 가치는 너무나 멀리 있는듯 보인다.
주인공은 별 계기없이 자신을 창고관리인이라고 소개하는 포주와 인연을 맺는다. 포주는 아랍인 남편이 있는 여자를 희롱하다가 그들의 무리와 시비가 붙게되고 주인공에게 그들 일행이 칼을 휘두르자 주인공은 총을 쏴서 살인을 하게된다.
재판의 과정에서 검사는 그가 어머니의 죽음에 태연하고 애인과 놀아나는 사이코패스이기 때문에 그는 사형을 당해야한다고 주장했고 판사 역시도 신을 믿으라는 그의말을 무시한 주인공을 동정할 생각이 없다. 변호사는 훌륭한 변론을 했다고 보여지나 판사의 마음이 돌아갔으니 그는 사형을 당한다.
여기서 궁금한것은 왜 아랍인의 칼을 찔렀는데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느냐는 것이고 검사의 증거없는 어머니와의 관련성이 왜 유일한 증거로 받아드려지느냐는 것이다. 물론 문학적으로는 중요하지 않겠지만 장치적으로는 허술하다고 느꼈다.
주인공은 묵묵히 사형을 기다린다. 어머니의 죽음이 그에게 감응이 없었듯 그 자신의 죽음도 그러하다. 그는 묵묵히 공상하며 하루를보낸다. 가끔 면회오는 여자친구에게는 여전히 욕정을 느끼지만 말이다. 그는 회개하라는 간수에게 마지막으로 화를낸다. 그에게는 신과 삶과 죽음이 확실한것이 아니라 지금 자기 자신만이 확실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도 자신의 죽음도 신에대한 믿음도 마지막까지 거부했다. 그저 살아있었고 여자친구를 욕정했다.
어머니는 요양원에서 죽기전에 남자친구를 사귀었다고 한다. 주인공은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말하며 글을 닫는다. 삶과 죽음에 슬퍼할 권리보다 그저 눈앞에 있는 욕망의 대상을 욕망하며 오늘을 사는 태도에 대해 공감한것이다.
그 재판 파트의 허술함이 소설의 포인트임. 그런 부조리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표현하는거거든.
뫼르소가 총을 4발 쏨. 정당방위였다면 한발만 쏘면 됐을텐데, 아랍인이 죽은 이후에도 연달아 총을 쐈기 때문에 문제가 된거임. 주인공 서술도 안전을 위해 쏜 게 아니라, 태양이 눈부셔서 쏜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