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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엔 사랑이 있다." "사람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알 수 없다."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
기독교적 사고가 듬뿍 반영된 이 단편 소설이 주고자 하는 메세지는 명확하다. 작품 후반부, 천사 미하일의 입을 통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 메세지라 하면, "사람은 사랑을 지니고 있으며,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알지 못하는 이유는 하느님이 사람은 함께 살게 하기 위함이며, 사람은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다만 작중 미하일에게 식사와 옷가지를 제공한 후 세몬과 마1트료나가 나눈 대화가 인상적이다. 마1트료나가 "우리는 이렇게 남을 도와주는데 어째서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까요?"라고 세몬에게 묻는다. 하지만 세몬은 아무런 답을 주지 못하고 상황을 회피한다. 그리고 이후 작품은 이 문제를 다루지 않고 끝난다.
작품은 분명 사랑을 말하고 있다. 사람은 서로를 사랑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엔 보답받지 못하는 선행이 너무나 많다. 왜 우리의 선행은 보답받지 못하는가? 보답을 위해 선행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선행이 보답받지 않을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사랑으로 살아간다면, 왜 모두가 사랑받지는 못하는가?
작품 후반, 미하일의 정체와 그가 인간계로 떨어진 이유가 드러난다. 그는 쌍둥이를 막 출산한 여인의 영혼을 거두라는 하느님의 명령에도, 그 여인이 자신이 사라지면 아이를 키울 사람이 없다고 말하자 연민을 느껴 그 명령을 거역한다. 하지만 미하일은 이후 생판 모르는 두 아이에게 젖을 나눠주고 자신의 자식처럼 키우는 여인을 보며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우리는 흔히 생각하길, 타인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고 나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도울 이는 아무도 없으며 쌍둥이를 키울 자는 자신뿐이라고 생각한 쌍둥이의 생모처럼 말이다. 하지만 미하일의 두 번째 깨달음처럼 사람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기에 남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그리고 남과 더불어 사는 방식이 바로 사랑인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위한 염려가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가며, 자신의 사랑이 보답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을 위한 염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보답받은 줄 모른다. 그것을 아는 능력이 우리에겐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이름 모를 수많은 이들의 사랑 덕분이지만 우리는 이를 모른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감사해야한다. 기독교적 세계관에서는 하느님께, 비종교인이라면 주변 이웃들에게 늘 감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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