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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사람의 지성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에 따라 세계를 재구성할 수 있으며, 심지어 그 재구성된 세계 안으로 타인을 초대할 수도 있다. 지성인은 그 자체가 창조주요 우주다. "틀뢴은 하나의 미로일 테지만,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미로, 인간에 의해 해독되도록 운명지어진 미로이다."


◆ 『알모타심으로의 접근』

어쩌면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들 중에 완전히 새로운 것이란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생각은 사람을 통해 연결되고, 그 기원을 쭉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신에게나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 『피에르 메나르, <돈 키호테>의 저자』

같은 글자들의 배열도 그 글자들이 쓰인 맥락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것이 될 수 있다.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그 문장을 꺼낸 자의 맥락이다.


◆ 『원형의 폐허들』

사람은 꿈에서 사람을 만든다. 꿈을 만드는 그 사람도 누군가의 꿈에서 만들어진 존재일지도 모른다.


◆ 『바빌로니아의 복권』

행운과 액운이 정말로 잘 감춰진 배후에서 조종되는 것이고, 사건을 둘러싼 무한한 확률변수들이 그에 상당하는 무한한 추첨으로 결정된다는 비유가 재밌는 작품이었다. 물론 바빌로니아의 복권이 실존한다는 얘기는 픽션일 뿐이고 진지하게 해석한들 음모론에 불과하지만, 결국 우리를 둘러싼 사건들이 확률과 그 확률들의 무한한 곱에 의해 간신히 설명될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바빌로니아가 우연의 무한한 놀이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런 그늘에 숨은 회사의 실재를 긍정하건 부정하건 아무런 차이가 없다."


◆ 『허버트 퀘인의 작품에 대한 연구』

문학의 새로운 형식을 제시하는 작품이다. 모든 기로마다 시나리오를 세 가지 씩 구비하는 복잡한 형태. 사실 나는 이런 형식을 많이 보았는데, 재밌게도 소설이 아니라 게임에서 많이 보았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데, 어떤 게임은 실제로 주인공의 행적 하나하나가 변수가 되어 제각기 다른 시나리오로 이어진다고 한다. 서브컬처에서 이야기의 직선성보다 다양성이 이목을 끄는 요즘을 생각하면 보르헤스가 얼마나 대단한 선구자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 『바벨의 도서관』

기호 자체는 자의적이다. 즉 기호들 자체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그 배열에 사람들은 여러 가지 규칙을 배열했고, 이에 따라 수많은 문법들이 탄생했다. 제각기 다른 언어들의 규칙들을 모두 포괄하는 공통적인 규칙은 보르헤스의 시대나 지금이나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배열이 새로운 규칙에 따라 새로운 의미를 갖는 일은 인간사가 지속되는 한 무한히 지속될 것이다. 그 속에서 언어는 모습을 바꿀 것이다. 즉 의미를 잃고 새로 만들기를 반복할 것이다. "도서관은 무한하지만 주기적이다."


◆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

장르로 치면 재밌는 추리 소설이고, 사상으로 치면 『허버트 퀘인의 작품에 대한 연구』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모든 소설에서 작중 인물은 여러 가능성과 마주칠 때마다,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나머지들은 버리게 됩니다. 거의 풀 수 없는 추이펀의 소설 속에서 작중 인물은 모든 것을 (동시에) 선택합니다. 그렇게 그는 몇 개의 미래들, 즉 몇 개의 시간들을 '창조하고', 그것들은 증식하면서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거기에서 바로 그 소설이 가진 모순들이 설명됩니다." 사람은 매 순간 선택을 한다. 이에 따라 기회비용이 발생하기는 하지만, 버려진 것에도 선택된 것에도 다시 새로운 선택으로 이끄는 새로운 가능성이 내포돼있다. 그렇게 사람은 무한히 선택을 하며 무한히 세계를 만든다.


◆ 『기억의 천재 푸네스』

모든 대상을 개별적으로 본다는 것은 곧 '개념'을 만들 수 없다는 뜻이다. 푸네스는 기억의 천재였지만 정작 그 기억의 저주로 개념을 만들 수 없는 저주에 걸려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조차 없었다. 세상에 수많은 존재들이 있고 각자가 개별적인 개성을 지니지만, 그 존재들을 매개하려면 결국 일반화되어 통용될 수 있는 개념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 주는 소설이었다. "사고라는 것은 차이점을 잊는 것이다. 그것은 일반화하고 추상화하는 것이다. 푸네스의 비옥한 세계에서는 상세한 것들, 즉, 곧바로 느낄 수 있는 세세한 것만 존재했다."


◆ 『칼의 형상』

마지막의 반전이 정말 탁월한 소설이었다. 결국 사람은 행동으로든 이야기로든 자신을 늘 투영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겁에 질린 사람을 버리고 도망가는 것도 결국 자신의 겁을 증명하는 행동이듯, 비겁자에 대한 경멸이 자신의 비겁함을 경멀하는 것이듯.


◆ 『배신자와 영웅에 관한 주제』

음모론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케네디를 암살한 오스왈드가 암살당한 이야기가 떠오르는 재밌는 이야기였다.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는 모든 진실을 알 수 없다. 심지어 그 겉포장마저 진실을 손에 쥔 자들에 의해 연출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물론 이렇게까지 의심하는 것은 비합리적이지만, 어쩌면 그 비합리적이라는 프레임조차 그들에 의해 설계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자기도 역시 놀란이 꾸민 계획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음을 깨닫는다……"


◆ 『죽음과 나침반』

옛날에 추리 소설이나 만화를 보며 들었던 생각, '범인은 왜 항상 티를 내고 다닐까?'라는 질문을 정말 생각지도 못하는 방식으로 비트는 작품이었다.


◆ 『비밀의 기적』

주마등에 관한 웃긴 과장이 주제를 이루는 작품이다. 「백치」에서 도스토예프스키가 했던 회상이 떠올랐다. 결국 시간의 길이는 그 시간을 대하는 사람의 간절함이 결정하는 것이다. 즉 시간은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대로 의식의 확장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 『유다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

가룟 유다에 관한 재밌는 해석이 들어 있는 작품이다. 나도 한때는 신의 계획 속에 가룟 유다가 들어있는 것이 곧 가룟 유다도 예수만큼 비범한 작자라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보르헤스에게서도 같은 견해를 들어서 즐거웠고 영광이었다.


◆ 『끝』

사실 이 소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언가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 생각이 드는데,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한 번의 선택이 그를 이전과 영영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는 점, 즉 한 생을 끝내고 새로운 국면의 생으로 접어들게 한다는 점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지기는 했다.


◆ 『불사조 교파』

비밀에 관한 재밌는 우화다. 비밀이 남발되면 본능이 된다. 그렇게 비대해진 비밀은 은밀해지고 사람들을 지배하게 되어, 나중에는 비밀의 내용조차 모르면서 비밀에 대해 본능적인 공포를 느낀다. 이것이 사회적인 터부의 근원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남부』

처음 읽을 때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는데, 다시 읽으니 굉장히 심오한 소설임을 깨달았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주변을 무언가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한다. 자신의 현재 상황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해석하기도 하여 그것에 기쁨이나 슬픔을 느끼는가 하면,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해석하기도 하여 자신이 해석으로 도출해낸 운명 속에 일부러 뛰어들어 자신의 해석을 옳은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물론 이런 투신은 불합리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실수를 무의식적으로 정말 많이 저지른다. 심지어 그 위험함을 알면서도 말이다. 사람의 해석적인 본능에 대해 정말 잘 다룬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