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 종료된거지? OK
통치성이 영미권에서 좀 다르게 쓴 거는 있었지. 그런데 내가 생각한 통치성은 영미권 통치성이 아니라 푸코의 통치성이었음.
1. 이 책은 사실 "통치성의 역사"를 다루는 책임. 하지만, 이 통치성이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우스 같은 초기 동방정교회에서 시작한다는 건 진짜 과도한 말임. 로마 시대에서도 비슷한 건 분명 있었을 거고, 아감벤의 왕국과 영광조차 그걸 지적함. 그런데 이거 관련해선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폴 벤느일 거거든. 근데 그 분은 코멘트안해서 그냥 보류상태였음.
2. 미셸 세날레르라고, 프레데리크 그로와 함께 강의록 관리했던 사람이 있음. 그런데 이 사람의 책을 읽으니까 이게 그냥 푸코를 계승했다 같은 게 아니더라. 영미권 사람과 다르게 그 근대시기를 연구하면서 또 다른 결과를 제공한다고 봤음.
3. 이게 또 있음. 칼 슈미트ㅋㅋㅋ 칼 슈미트 더 알고싶어서 메스트르 - 보날드 - 코르테스를 다룬 논문들을 읽다보니 이런 반근대주의자들의 논의들이 푸코가 말하는 거랑 충돌한다고 느껴졌다. 이건 어쩌다보니 내가 직접 찾은 사례가 되겠음...
그냥 쌩 독학이다보니 "통치성에 대한 좋은 책"을 찾으려는 여정이 어째 푸코 논의의 문제점 지적으로 흘러가더라고...
진짜로 푸코는 역사로 읽어야만 했음...
역사로서의 푸코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했음. 그리고 난 어째저째 저 부분에서 했고.
역사가에겐 푸코가 누군지는 분명함. 수학자가 "이런 건 철학에서 하세요"라고 하는 바로 그 방식으로 "푸코는 철학을 하고 있습니다" 라고 하는 거지.
만일 역사로 읽지 않는다면? 발리바르조차도 헛걸음치는 어려운 데로 들어감...
그러면 푸코의 "위치"가 있게 되는 거임.
이 사람은 진짜 능력있는 역사가가 되어 비슷한 저술을 할 수 있었음.
하지만 포기한 것임.
마치 생명과학 석사인 사람이 과학철학을 전공하겠다고 할 때 "ㅋㅋ 쟤 생명과학의 역사 연구한다며?" 라는 비난을 받는 것처럼
비난을 무릅쓰고 어떻게든 무엇으로든지 철학적 논점을 꺼내서 그 책을 철학서로 만들려 한 것임.
그리고 이건 어쩌면 당연한 거였음. 그가 게이니까... 역사만으론 되는 문제가 아닐 테니까...
이거랑 똑같은 길을 간 사람이 비트겐슈타인이었음.
내가 지금까지 확실히 아는 푸코의 오류가 많은 곳은 이 책들임.
하나는 임상의학의 탄생. 이 책은 의학사가 아니라 여기서 어떻게든지 the medical gaze가 있다고 끌어올리는 철학적 저작임. 근데... 어디선가 좀 아니라는 글을 본 적도 있고 좀 아닌 거 같음.
다른 하나는 바로 이 안전 영토 인구. 앞에서 말한 상황 때문에 플로우차트에서는 통치성과 대항품행이 뭔지 정도는 알려주는 강의만 읽고 빼라고만 함...
다른 하나가 바로 주체의 해석학임. 피에르 아도의 책을 읽는다면 주체의 해석학만을 읽는 자들의 해석, 푸코는 헤겔주의를 벗어났느냐 따위의 질문은 답할 필요가 별로 없다고 확신할 수 있겠지.
푸코는 참 힘든 사람인데, 잘 이해해주는 사람도 없는 것 같음. 황현산의 900여쪽을 들여서 책 한 권을 썼는데 그 책 제목이 "잘 표현된 불행"이더라. 난 그 제목만 봐도 너무 많은 게 느껴짐.
흠 그렇군
치안, 영토, 인구 재밌는뎅... 강의에서 언급하는 책들 직접 읽어봐. 푸코는 어떻게 읽었는지 역추적 해보는거지.
이거랑 똑같은 길을 간 사람이 비트겐슈타인이었음. 이 부분이 잘 이해가 안가는데
내가 본 비트겐슈타인은 그렇다고 수정할게...
https://m.dcinside.com/board/reading/498972
https://m.dcinside.com/board/reading/498973
https://m.dcinside.com/board/reading/498974
다른 하나가 바로 주체의 해석학임. 피에르 아도의 책을 읽는다면 주체의 해석학만을 읽는 자들의 해석, 푸코는 헤겔주의를 벗어났느냐 따위의 질문은 답할 필요가 별로 없다고 확신할 수 있겠지. -> 이게 뭔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네. 내가 읽었을때 피에르 아도와 푸코는 둘 다 공통적으로 철학적 영성이 지식과 실천의 분리되지 않는 지혜라고 말하는데, 헤겔주의가 왜나옴?
집에 혹시 주체의 해석학 있음? 진짜 맨 마지막, 강의 끝부분에 정신현상학 언급하는 게 있을거임. 이거 보고 "푸코는 결국 헤겔주의와 타협했고 들뢰즈만이 헤겔에서 벗어났다"같은 말을 하는 게 있었음. 나도 진짜 이건 좀 너무하다고 생각했지만 뭐 어떡함
"푸코는 결국 헤겔주의와 타협했고 들뢰즈만이 헤겔에서 벗어났다" -> 이걸 피에르 아도가 말한거지? 만약 너가 이걸 토대로 푸코의 주체의 해석학이 오류가 많은 책이라고 말하는거면, 할말이 없음.
피에르 아도가 말할 말이 아님 그건...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말이지...
그럼 너가 저 책들을 오류가 많다고 무슨 이유든간에 생각하는건가?(그렇다면 이유를 말해주면 좋겠음)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하는 평가(터무니없지만 너가 인터넷에서 돌아다닌다고 말하면서 인용한거)에 따라서 너가 저것들을 오류라고 말하는건가?
일단 첫째로, "A라는 철학자는 B라는 철학자와 다소 동일한가"라는 주제 자체가 얼마나 소모적인지는 알 거 아님...? 저 마지막 문장 보고 헤겔주의자이냐 하는 게 마케팅 용어만큼 소모적인 건 알지? 이건 넘기겠음.
두 번째로 그냥 논문만, Reflections on the Idea of the 'C1ultivation of the Self'랑 An Interrupted Dialogue with Michel Foucault: Convergences and Divergences만 읽어도 주체의 해석학과 다른 건 알아채지 않음??
아니 내가 진짜 고대 쪽은 아예 몰라서 "오류"라고 말한 것은 사과하겠음. "난점"이라고 하는 게 나았을 거 같음. 그런데 님이 지금 엄청 화난 거 같아서 이 고대 쪽과 피에르 아도 관련해서 엄청 잘 아는 사람인 거 같거든... 알려주면 감사하겠음...
아, 그러니까 네 말은 푸코가 마지막에 헤겔 언급한 거 자체가 사실 틀렸다기보단, 그거 때문에 사람들이 (특히 아도 같은 맥락 모르고) '푸코는 결국 헤겔주의자냐 아니냐' 같은 껍데기뿐인 소모적인 이야기로 빠지기 쉬우니까, 그걸 '오류' 또는 '난점'이라고 본다는 거구나?
ㅇㅇ... 내가 잘못 썼음 미안함... 그리고 푸코와 아도 간의 교류는 내 관점으론 아주 생산적인 것에 비해 그런 형태의 구분짓기는 전혀 비생산적이라고 생각함
"그런 형태"는 그러니까 푸코는 헤겔주의자인가 식의 그것
ㅇㅋㅇㅋ 이해했음. 근데 나는 좀 다르게 보는 게, 그 헤겔 언급 부분이 네가 말한 그런 피상적이고 논쟁적인 독자들 문제랑은 별개로, 오히려 푸코 자신의 어떤 성향이나 고민 같은 걸 보여주는 것 같아서 흥미롭게 느껴지더라고. 단순히 다른 사람들이 오해해서 '난점'이 된다기보다는, 그 언급 자체가 푸코를 이해하는 데 뭔가 재미있는 지점을 던져준다고 생각함.
또 미안함 사족만 던졌네...
ㄴㄴ 유익한 대화였다고 생각함. 다만 너가 궁금해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 예전에 생각했던게 있어서 댓글을 쓰려고함. 푸코의 도식(자기배려/자기지식, 영성/지식, 정화적인것/정치적인것)에서 내 입장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는 별개로, 너가 푸코를 깊이 이해하는걸 어느정도 목표로 삼는 것으로 보여서, 나도 그 목표에 헌신한다는 가정을 두고 푸코에 대한 내 이해를 밝히겠음.
나는 정신현상학이 원대하다는건 알겠는데, 영성에 대한 노력의 정점이라는 푸코의 평가에 처음에는 굉장히 당황했음. 그래서 1) 푸코가 헤겔을 나이브하게 오해했거나 (헤겔이 진지하게 뭔가를 한다고 믿었음) 2) 푸코가 영성이 주체와 대상의 관계, 그리고 분절화된 지식과 실천의 불가분으로써 서구 형이상학의 최소한의 자리를 온건하게 관철하려고 했고, 그게 무의식적으로 헤겔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로 이어졌거나 둘 중 하나라고 보았지. 1에 대해서는 철학은 아니지만 비슷한 사례가 있어 (너가 유비analogy를 좋아하는것 같길래) :
M3 정책은 경제 안정을 이루지 못하였다. 1979년에서 1983년까지 영국 경제는 무섭도록 깊은 경기 침체에 빠져들었다. 실업률이 5.4퍼센트에서 11.8퍼센트로 치솟았다. 불황은 예상한 것보다 너무 심해서 영란은행은 스스로 설정한 M3 목표를 깨고 불필요하게 여겨질 정도로 통화를 확대 공급하는 정책을 임의로 시행하였다. 이와 같은 탈선을 영국의 통화주의자들은 금융 산업과 금융 시장의 구조 변동과 같은 특수 사태가 발생하였기 때문에 불가피한 것이라고 설명하고자 하였다. 그들은 본원 통화가 M3보다 훨씬 서서히 확대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영란은행은 기존의 M3 목표를 고수하였다.
그러나 실물 경제가 변덕스런 하강세를 반복함에 따라 영국의 통화 당국은 목표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없는 압력을 계속 받았다. 마침내 1986년 영란은행은 통화 목표 발표를 완전히 포기하였다. 이것은 미국의 식자층들조차 한번도 의식해 보지 못한 중요한 교훈이었다. 미국에서는 통화주의가 실제로 시행된 적이 없고 연방준비이사회의 경우에는 겉으로만 통화주의를 표방하는 일에도 무성의하였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진정한 통화주의자들이 온 정성을 다하여 통화주의 원리에 입각해서 경제를 운용하였고 완전히 실패하였다.’ (폴 크루그먼, 폴 크루그먼의 경제학의 향연)
아무튼 여기서 푸코가 말하는 영성과 지식, 정화와 정치 사이의 도식에서 계보학을 본다면, 둘 중의 하나를 완전히 거부하고 분리시키는 케이스들을 생각해볼수가 있지. 나는 그리고 그러한 케이스들의 발전과정을 역사적으로 기술하는게 푸코의 계보학 컨텐츠의 한 목적이라고 생각함. 그리고 푸코가 주체의 해석학에서 계속해서 강조하는건, 둘을 분리해서 보면 안된다는거야.. 그래서 나는 다시 헤겔에 대한 푸코의 코멘트로 돌아가서, 이게 푸코의 탐미적인 면을 드러낸다고 생각해. 푸코가 예전에 이런 말을 한적이 있지 :
유행, 열광, 심취, 과장 같은 것들이 어느 순간에 문화의 한 풍요로운 근원을 드러내준다는 것을 어느 역사학자에게 설득시켜야 할까? 미셸 푸코, 미발표 원고(1975)
나는 이게 도덕적이지도 정치적이지도 않고, 단지 탐미적이라는 인상을 받았어. 그러니까 도덕적으로는 다소 무책임하다는 평가를 받을수 있고, 정치적으로는 다소 효과가 없다, 무력하다는 평가를 받을수도 있는거지.
주체의 해석학에서 이 부분이 사실상 나는 푸코의 입장에 대한 쐐기를 박는다고 생각해 : 제가 “힘”이라고 말하는 것은 분명히 다소 은유적입니다. 여러분도 기억하시겠지만 지난번에, 그리고 이것이 제가 올해 여러분에게 말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저는 gnôthi seauton(자기 지식)과 자기 돌봄 사이의 이러한 어렵고 역사적으로 광범위한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농담처럼 말했지만, 농담이 아닌 “데카르트적 시점”이 라고 부른 것에서 찾으려고 노력한 이유 때문에 현대 철학이 gnôthi seauton에 모든 강조점을 두게 되었고, 따라서 자기 돌봄의 문제를 잊어버리고, 그늘 속에 남겨두고, 다소 소외시키는 경향이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올해 오랫동안 gnôthi seauton(자기 지식)에 부여된 특권과 관련하여 이 자기 돌봄을 다시 부각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자기 돌봄을 다시 부각시킨다고 해서 gnôthi seauton이 존재하지 않았거나, 중요하지 않았거나, 종속적인 역할만을 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사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훌륭한 예를 가지고 있습니다) gnôthi seauton과 epimeleia heautou(“너 자신을 알라”와 자기 돌봄)의 뒤얽힘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텍스트 전체에서 두 가지 것들이 뒤얽혀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알키비아데스에게 자신이 무엇인지 조금 되돌아보라고 상기시켜줌으로써, 우리는 그가 “네, 사실입니다. 나는 내 자신을 돌봐야 한다”라고 말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 가 이 원칙을 제시하고 알키비아데스가 그것을 받아들이자마자 “돌봐야 할 그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는 문제가 다시 제기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세 번째로, 우리가 돌봄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생각해 보면, 우리는 gnôthi seauton을 다시 찾게 됩니다. 여러분은 gnôthi seauton과 epimeleia heautou(자기 지식과 자기 돌봄)의 역동적인 뒤얽힘, 상호 호출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뒤얽힘, 이러한 상호 호출은 제가 생각하기에 플라톤의 특징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그리스, 헬레니즘, 로마 사상의 역사 전체에서 다시 발견할 것이며, 분명 히 다른 균형, 다른 관계, 한 가지 또는 다른 것에 다르게 주어진 강조, 다양한 사상에서 자기 지식과 자기 돌봄 사이의 순간에 대한 분포가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뒤얽힘은 매우 중요하며, 이 뒤얽힘에서 두 가지 요소 모두 다른 것을 위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미셸 푸코, 주체의 해석학, 1982년 1월 13일 강의 두 번째 시간 일부 발췌)
그러니까 "푸코는 결국 헤겔주의와 타협했고 들뢰즈만이 헤겔에서 벗어났다"라는 혹자의 말에서 들뢰즈가 벗어났는지는 난 잘 모르겠지만, "푸코는 결국 헤겔주의와 타협했다"라는 말은 저 사람이 당시에 전달하려고 했던 것보다 더 많은걸 담고 있을 수 있는거지. 주체와 세계 사이의 뒤얽힘, 영성과 진리 사이의 뒤얽힘으로 본다면 그게 결국에 뭘 뽑아내든지간에 헤겔이랑 관련될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저 지나가던 사람의 말은 어느정도 사실이라고 나는 생각해.
여기서 "이거랑 똑같은 길을 간 사람이 비트겐슈타인이었음."라는 너의 평가와 관련된 재미있는 대화 : 비트겐슈타인 : 버클리와 칸트는 매우 깊은 사상가라고 생각해 드루어리 : 헤겔은 어떨까요 비트겐슈타인 : 나는 헤겔이랑은 맞는다고 생각안해. 헤겔은 다르다고 볼 수 있는 것들이 사실은 같은 것이라고 항상 말하려고 했던것 같아. 그리고 여기에 대해 내 관심은 같다고 볼 수 이는 것들이 사실은 다르다는데 있지. 나는 리어왕의 "나는 너희들에게 여러가지로 서로 다른 것들을 가르쳐 주겠다"라는 인용구를 사용하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어.
나는 이렇게 깊게 읽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수긍하겠음. 나는 너가 말한 철학적 방식과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있다는 선에서만 이야기하겠음. 플로우차트에서 푸코로서 보여주고 싶었던 건 "철학적 논지가 무엇인가"보다 "푸코는 그런 철학적 논지를 어디에서 얻었는가?"였음. 이런 입장에서 푸코는 플라톤과 세네카, 헤겔보다 1년 전 강의였던 "주체성과 진실"에 있던 평민들, 그리스 시절 의사들에서 그 나와 나와의 관계, 자기 배려를 찾아냈다고 생각함. 코끼리 성관계랑 구강성교 내용은 기억하는데ㅋㅋㅋ 이런 이상한 사료를 가져왔기 때문에 그걸 킥스타터 삼아서 알키비아데스, 7번째 편지, 성의 역사 3권의 자기 배려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함.
(주체의 해석학은 헤겔주의보단 드레이퍼스랑 라비노우가 다 써놓은 곳에 답변한 "주체와 권력"처럼, 주체화, 특히 "예속적 주체화"라는 얼핏 보면 모순적으로 보이는 말에서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또 싸울까봐 말 삼가겠음... 그리고 탐미적인 건 전적으로 동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