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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400쪽 분량의 미완성 장편소설 '실종자'와 실종자와 관련된 세 단편소설, 그리고 십수개의 단편소설과 카프카의 편지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의지가 박약해서 적당히 읽었더니, 결국 실종자와 편지 일부분만 읽고 독서모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일주일 내에 읽기엔 적지 않은 분량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카프카의 소설은 낯설어서 잘 읽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물의 성격을 파악하여 행동을 유추하고, 드러난 행동을 통해 심리를 파악해가며 인물의 가치관을 더듬어서 인물을 총체적으로 이해해가는 게 제가 소설을 읽는 방식이었는데, 실종자를 그렇게 읽었다가는 과부하에 걸릴 것 같았습니다. 또한 인물의 성격이 고정되어있지 않다는 느낌이 들어 그것에 의미가 있을 거 같지도 않았고 사건은 사방팔방으로 터져나가듯이 종잡을 수 없이 진행되어 더욱 의미가 없을 거 같았습니다. 그러니 낯설었고, 낯설다보니 재미 붙이기도 힘들었으니 무리할 생각이 들만큼 흥미가 생기지도 않았습니다.

글이 재미가 없었다거나 문장력이 형편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글의 목적을 알 수 없었습니다.

독서모임에서 그런 부분을 언급해가며 왜 그런지를 하나하나 설명하다보니, 내가 받은 느낌을 의도하고 책을 썼다는 확신이 들었는데, 그러지 않고서 소년, 소녀가 밤에 주택에서 일대일로 만나서 별다른 맥락도 없이 우격다짐을 벌인 후에 소녀가 소년을 육체적으로 제압한 후에, 사실 소녀는 레슬링 숙련자였다는 서술은 쓰일 수 없지 않을까요?

문제는 이러한 생경함을 왜 불러일으키고 싶은 것일까요? 편지들에 나온 말에서 그 답이 있다고 느꼈는데, 이 포스트의 사진으로 쓰인 북슬리브즈는, 필요에 의해서 적당한 가성비를 추구하여 선정한 알라딘 북슬리브즈들에서 문구와 그림이 제일 마음에 들어 산 것이었는데, 문구의 내용은 '책은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얼어붙은 바다를 깨기 위해 이러한 생경함을 불러일으킨 것이 아닐런지? 이러한 생경함은 왜 불러일으켜지는걸까요? 그것은 일반적으로 연상되는 상황을 제시하고 그 상황을 빗겨나감으로써 독자는 맥이 빠지게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말하자면, 얼어붙은 바다라고 하는 것은 모든 사회적 편견과 선입견이라 할 수 있고 그것을 깨려고 하는 이유는 카프카 본인이 그런 선입견의 희생양이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한강작가가 폭력에 천착한 것처럼 카프카는 편견과 선입견에 눌러붙어있는 게 아닐지.

다만 그것이 왜 책이어야 하는지요. 그저 카프카가 작가였기 때문이었을까요?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말도 있는데, 아마 단서 정도는 될 수 있을 듯합니다.

'나는 문학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나는 다른 그 무엇도 아니고 다른 그 무엇도 될 수 없다.'

오그라드는 표현은 차치하고 문학은 당시 시대 상황상 책으로밖에 쓰일 수가 없으니, 그(문학)에게 있어 책은 그래야만 했던 것이 아닌지.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문학이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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