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공산품들로 가득한 장소이다. 모든 것이 똑같고 예측가능하며 신비로움이 없는 장소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숲에 비하면 문명이란 얼마나 끔찍한가.
라는 생각이 요즘의 사람들에게 만연해 있다만 사실 사선무늬형 B타입 블록 담장(모형 마을-블록 담장의 경지 참조)과 A타입 블록 담장의 차이를 알지 못한다면 강변의 바위와 나무 아래 바위의 차이 역시 알 리가 만무하다. 대량생산된 상품들은 일단 길거리에 배치되고 나면 자신만의 시간을 견뎌내며 다른 것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도시의 행정제도와 경제법칙은 사물들을 평균화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들의 예측불가능한 반응들을 이끌어내는 앙금처럼 기능할 때가 있다. 판판야는 바로 그런 도시의 호흡들, 출혈들, 골절과 배설과 섭취를 그려낸다.
여기서는 단편집 <주먹밥이 굴러가는 마을>에 수록된 <츠쿠바 산 관광 불안내> 연작들을 살펴보자. 작가에 따르면 츠쿠바 산은 만엽집에 소재로 한 시가 실리는 등 예로부터 일본인들에게 명성이 있었던 산이지만 후지산의 인기에 밀려 정작 관광을 해본 사람은 많지 않다. 주인공은 우연히 경품에 당첨되어 츠쿠바 산을 여행하고, 기묘한 일들을 겪는다.
1. 과학기술
판판야는 작품세계상 SF적 요소에 종종 가닿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으면서도 SF적인 것들과 상당히 불화하는 특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초기작품들이 수록된 <아시즈리 수족관>의 <새로운 세계>에서는 미래의 물건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이라는 소재를 내보이지만 작가의 단발적인 발상들의 나열일 뿐 미래적이라는 인상을 받기 힘들다. 그가 묘사하는 "문명"의 매력은 그 수많은 에세이들에서도 드러나듯 실존하는 도시 풍경에 대한 주의 깊은 관찰과 수집, 그리고 그런 정성을 작품화할 치밀한 밀도의 배경묘사에 있기 때문에, 풍경 전체가 환상으로 가버리면 힘을 잃는다.
그렇지만 <츠쿠바산 관광 불안내>에서는 처음부터 관광 안내 인공지능이 등장한다. 또 츠쿠바에 도착하고 맨 처음 보이는 것도 최첨단 연구시설들이 모여 있는 "과학도시"로서의 모습이다. 그야말로 00년대 학교 포스터에서 등장했을 상투적인 SF 도시의 모습이 평소의 디테일하고 그로테스크한 묘사 없이 데포르메된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묘사는 <새로운 세계>에서 실패했던 시도의 성공이라고 생각된다. 바로 "미래적임"을 미래에 존재하는 저 먼 꿈으로 그려내는 게 아니라, 현재에 미래라는 이름을 달고 앉아 있는 꿈으로 그려내는 것. <새로운 세계>에서는 미래적 이미지들을 위해 박물관이라는 별개의 장소를 제공했지만 여기서는 도시 풍경의 일부로 결합시켜 그려냄으로써 사변적 공상에서 미래를 분리시켜 도시 풍경 안에 복속시킨다. 쓸데없이 커다란 경품 당첨 티켓에 부착된 인공지능, 도시의 컨셉과 무관하게 표준화된 규격을 지키는 초록색 교통 안내판, 시속 400키로를 달릴 수 있지만 교통 법규상 40키로만 가는 미래카 등이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가?
판판야는 데포르메된 캐릭터와 낡고 위압적인 도시의 대비로 유명하지만, 그런 특성이 없는 "밝고 깨끗한" 도시의 이미지도 판판야의 세계에 일부를 이룰 수 있다. 그건 바로 도시를 신비롭고 다층적인 공간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도시를 벗어나 본격적인 산행에 오를 때 그 다층성은 명확해진다. 여기서는 츠쿠바의 미래적 이미지는 사라지고 낡은 기계와 건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티켓 인공지능에 따르면, 이는 산행은 그 자체로 비실용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실용적 기술은 이토록 가까운 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까지 올라오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마치 풍토에 맞게 자라나는 들풀이나 나무처럼.
2. 산의 비밀
츠쿠바 산의 특산물은 산에 서식하는 개구리의 몸에서부터 채취한 개구리 기름이다. 등산길에 펼쳐진 낡은 관광지는 개구리 관련 상품들로 넘쳐난다. 판판야는 이미 유명한 섬세한 솜씨로 이 작은 거리를 매력적으로 그려낸다.
츠쿠바 산의 낡은 거리가 가지는 특징은 종종 목적이나 핵심을 상실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대표 특산물인 개구리 기름은 품절 상태라 조각상들만 여기저기 즐비하며, 유명한 츠쿠바 신사는 지나쳐 가버리기 너무 쉽게 길이 나 있다. 웬 잠수부들 세 명이 길을 지나가고, 케이블와 로프웨이, 전망대 등의 시설들은 앞서 말했듯 쉽게 최신 기술들을 들여올 수 있음에도 낡은 모습을 유지 중이다. 케이블카를 탄 주인공은 인공지능과 수다를 떨다 경치조차 제대로 구경하지 못하고 만다. 여행의 성격 자체가 용도에 알맞음을 거부하고 있다. 산은 계속해서 미끄러지는 공간이다.
본래 용도와 목적의 상실은 판판야 작품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지만 여기서는 산을 오를수록 그것이 강화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더 독특한 것은 이러한 요소가 츠쿠바 산의 역사와 연계되는 지점이다. 작품의 후반부에 이르러 주인공은 개구리 기름 생산 공장에 이르게 되고, 이곳에서 계속해서 언급되면서도 나타나지 않았던 개구리들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 개구리들은 용도불명의 비밀을 알려준다. 케이블카와 전망대 등은 본래 공장 시설로, 예컨대 전망대는 본래 기름을 저장하던 탱크였다. 잠수부들은 직접 걸으며 땀을 흘리는 방식으로 기름을 채취하던 개구리들이었다. 지금은 동면시기라 기름이 많이 없어서 품절이다, 지금은 기름 산업이 하락해서 많지 않기도 하다 등........
여기서 독자들이 알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오랜 시간을 거쳐온 사물들은 처음 만들어진 용도에서도 벗어나 있고, 현재 새로 부여된 용도에도 완전히 들어맞지 않는 무언가가 여전히 있다. 문명의 기계와 도구들은 은밀히 부여된 쓰임에서 벗어나, 쓰이지 않는 자신만의 고유한 존재를 발하고 있으며, 본질적으로 비실용적 행위인 여행은 바로 그러한 성격에 걸맞는 것이다. 츠쿠바 산의 오래됨은 사람을 자유로운 공간으로 인도한다. 돈을 주고 사지 못한 개구리 기름은 공장의 개구리들에게 선물로 하나를 받게 된다.
3. 자연
산을 오르던 주인공이 개구리들을 만나 공장으로 가기까지는 사건이 한 가지 있다. 주인공은 마침내 츠쿠바 산의 정상에 도착하는데, 여기서 전망이 둘로 완전히 나뉜다. 산의 남쪽에는 관동 평야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주인공이 본래 살던 집까지 말이다. 그곳은 콘크리트 건물들로 가득찬 문명의 공간이다. 반대쪽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름없는 산들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인공지능은 왠지 저곳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으며, 따라서 가이드도 제공해줄 수 없으니 절대 가지 말라고 말한다. 섬짓한 분위기가 감돈다.
자연과 문명의 구별을 이렇게 철저하게 하는 것은 판판야의 작품들에서 드문 일이다. 아무런 이름도 없는 산들을 그려 놓는 것 또한 판판야답지 않다. 곧바로 주인공은 사건에 휘말려 산을 내려오는 길의 루트가 없는 숲속으로 조난당하는데, 비록 산의 북쪽은 아니지만 이미지의 유사성은 명확하다. 갈수록 숲에 가까워지는 문명은 절정에 이르러 문명으로부터의 일탈을 아주 잠시 보여준다. 이후 개구리들을 만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여행이 끝난 이후의 후일담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주인공은 원래 살던 거리를 거니는데, 멀리 츠쿠바 산의 꼭대기가 보이는 것을 보고 놀란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정상에서 자기 살던 곳이 보였으니 자기 살던 곳에서도 츠쿠바 산이 보일 것이다. 단지 주인공은 이제까지 그것을 그저 이름없는 산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고, 이제야 그것이 자신의 고유한 이름을 갖고 나타났을 뿐이다.
낯선 곳을 통과하여, 나의 세계에는 새로운 존재가 태어난다. 이로써 시선은 더 풍부해지고, 산과의 경험과 기억 역시 끊이지 않으며, 따라서 시간을 넘으며 자신의 은은한 빛을 발한다.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로 끝난다. "아무래도 여행이라는 건 그냥 끝났다고 끝나는 게 아닌 것 같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모두 여행의 존재를 간직하고 있으므로.
4. 나가며
판판야는 다른 무엇보다도, 자연과 문명의 비인간 동물과 사물들을 탁월하게 다루는 작가이지만 그 중심에 관찰자로서의 인간 주인공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점 역시 놓칠 수 없다. 작가의 오너캐와 구분되지도 않고 주인공의 독백이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며 어떤 작품들에서는 이 주인공의 완전히 주관적인 감각이 주 소재가 되기도 하는 등(예컨대 매미 소리를 녹음해 겨울에 여름을 되살리려는 작품 등이 그렇다) 일인칭성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강하다. 하지만, 혹은 오히려 그렇기에, 판판야가 인간에 대해서 어떤 시선을 갖고 있는지 정확히 집어내기는 어렵다.
<츠쿠바 산 관광 불안내>는 여행기라는 형식을 가지며 그에 충실하기에 그의 인간에 대한 관점을, 사물들을 관찰하고 탐구하는 행위가 그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사물들이 보여주는 낯선 얼굴들을 탐구해 나가면서 인간의 익숙한 일상 세계는 더욱 풍부해진다. 동시에 여기에는 작은 저항도 내포되어 있다. 여행이 끝나고 티켓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구멍이 뚫려 인공지능은 무참히 죽어버린다. 주인공은 구멍 뚫린 티켓에게 개구리 기름을, 숲속에서 만난 옛날의 존재들로부터 선물받은 개구리 기름을 발라준다. 그러자 티켓은 되살아난다.
물론 판판야의 너무도 섬세하고 생명력 넘치는 세상에 "사회 구조의 억압에 대한 비판과 저항"같은 우악스러운 관념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 우악스러움을 무화하는 데에는 단순한 삶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열정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열정이 판판야의 작품 세계에서 핵심적인 "인간적인 것"으로 남아 있다. "단 몇 가지의 규칙만으로 사는 것에 만족하지 않겠다. 수조 개의 무한히 연결되는 규칙들로 살겠다."
보고싶군
ㅇㅂ (✖╹◡╹✖)◞
ㅇㅂ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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