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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젊은작가상 감상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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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젊은작가상 총집편[시리즈] 2025 젊은작가상 리뷰 시리즈 · 2025 젊은작가상: 반의반의 반(백온유) · 2025 젊은작가상: 바우어의 정원(강보라) · 2025 젊은작가상: 리틀 프라이드(서장원) · 2025 젊은작가상: 길티gall.dcinside.com-----
황금률이 왜 황금률이겠어요
'네가 그렇다'라고 말한 순간,
'나도 그렇다'라고 긍정하기 때문이겠죠
그러니 실천은 늘 '나부터'인 거예요
한 줄 요약
헌신하는 자는 한 명, 헌신받길 원하는 자는 세 명
1년 만의 젊작상, 대상작인 백온유의 반의반의 반이다. 반의 반의 반이 아니라 반의반의 반이다. 무슨 차이가 있는지는 굳이 의미 부여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한다고 그렇게 큰 의미는 없는 것 같다. 되게 긴장 많이 하고 읽은 것 치고는 상당히 슴슴하게 흐른 데다가 맥 빠지는 맥거핀 엔딩이라 그럼 그렇지 소리가 나오는...... 재미가 있진 않은데 그렇다고 불쾌하게 만들거나 그런 건 잘 없으니 혹평할 마음도 안 드는, 뭐 그런 '적당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내용은 영실(할머니)-윤미(어머니)-현진(딸, 손녀)로 이어지는 조손 관계와 영실을 모시는 요양보호사 수경이 엮인 여성 4인의 서사...이지만 정확히는 영실을 중심으로 영실-윤미, 영실-현진, 영실-수경의 이야기에 가깝다. 중간에 현진-수경이 있긴 하지만 이건 그냥 극의 전개를 위해 나온 수준이라 실질적으론 영실을 쐐기 삼아 그 쐐기에 엮인 관계들만 중점으로 살피면 된다.
혼자 사는 영실의 집에 도둑이 들어 5천만원이 사라졌다. 문제는 두 가지. 하나는 영실의 5천만원을 사라진 뒤에야 윤미와 현진이 알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영실의 5천만원을 훔친 범인을 특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중점으로 볼 건 전자고 후자는 인물 관계의 밸런스를 위해 설정한 장치에 가깝다.
추리소설처럼 시작하지만 전개도 그렇고 묘사도 그렇고 전~혀 추리소설 답지 않으니 일말의 기대조차 접는 게 좋다. 어차피 범인 밝히는 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정황 증거로 수경이 훔쳤을지 모른다~ 수준에서 끝낸다. 중요한 건 이 5천만원을 둘러싸고 윤미, 현진이 영실을 향해 품는 태도와 생각이다.
주인공이 영실이니 나머지 세 인물이 영실을 대하는 태도를 먼저 보자.
영실의 딸인 윤미는 해설의 말을 빌려 표현하면 영실을 두고 "대접받고 존중받기엔 자격 미달"로 평가한다. 하지만 윤미는 영실에게 늘 순종했었으며, 영실에게서 모성을 갈구했었다. 혹은 늙어버린 영실에게 품위를 찾고자 하기도 했었다. 자고 가라는 영실에게 출근을 이유로 자기 집으로 갔으며, 영실이 입원했을 때 (현진이랑 포함해서) 식물 좀 돌봐달라고 했지만 막상 퇴원하고 와보니 식물의 절반이 죽었었다.
특히 이번 5천만원의 존재를 알게 된 후로는 윤미는 어째서 그 돈을 자신에게 지원해주지 않은 것인지 계속 속으로 따져 생각하기만 한다.
영실의 손녀인 현진도 어렸을 적엔 영실이 학교 트러블을 매우 품위 있게 해결하는 모습에서 할머니를 동경했었으나, 이후에 늙어버린 영실을 보면서 그런 모습들이 다 연극적으로 꾸민 모습에 불과하며 자기중심적이라고 평가한다. 윤미에게 영실 소식을 들으면 바로 가지만, 역시 현진도 영실이 자고 가라는 말에 출근을 이유로 자기 집으로 갔다. 현진도 윤미와 같이 5천만원의 행방을 알았을 때 그 돈으로 왜 자신을 지원해주지 않았는지 생각하며, 제일 적극적으로 5천만원의 행방을 좇는다.
유일하게 요양보호사인 수경은 작중 표현으로 대놓고 "모정만을 바라는 듯" 영실을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살갑게 대하고 정을 준다. 요양보호사로서 해야 할 일 이상으로 영실과 관계를 스스럼없이 맺으며 영실을 대놓고 엄마라고 부르며 입에 익어버리기까지 했다.
이 작품은 너무나도 쉽게 '가족'인 윤미와 현진을 하나로 묶고, '가족이 아닌 타인'인 수경과 대비시키고 있다. 물론 마냥 수경을 긍정하지 않기 위해 '5천만원을 훔쳤을지도 모름'이란 단서를 달았지만, 작중 주인공인 영실이 수경을 비호하고 그녀를 의심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더더욱 수경이 긍정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어떻게 보면 "독거노인인 영실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 딸과 손녀는 반성하라!"라고까지 읽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뭐...... 윤미와 현진을 긍정하는 서술은 거의 없으니까 이것도 소설의 한 메시지는 맞을지도......
그런데 한편으로 영실이 다른 세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다소 뭔가 묘해진다.
영실은 딸인 윤미가 충동이 강하지만 순종적인 아이라고 생각해 늘 단호하게 선만 긋는 모습을 보였으며, 이는 곧 윤미가 영실에게 모정을 느끼지 못하는 결핍을 안게 되는 계기가 된다. 윤미의 귀책으로 막대한 합의금을 물어내야 할 때도 "죗값을 치르라"며 그대로 돕지 않고 감옥에 보냈으며, 윤미의 생활을 아는지 모르는지 일방적으로 자기 요구만 관철한다.
손녀인 현진이라고 크게 다를 건 없다. 영실이 윤미과 현진을 대하는 태도는 '맡아둔 남의 자식을 딴소리 안 나오게 키운 정도'라고 보여질 정도다. 이는 곧 영실이 타인과의 관계를, 인간은 곧 '착취하는 존재'로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수경이 자기에게 살갑게 다가올 때도 경계심을 잔뜩 품었었으나, 늙어버린 자신을 더는 통제하기 힘들어지고 그로 인해 두려움을 품고 마음이 약해지던 영실은 수경의 애정공세에 넘어가 마음을 열게 돼 윤미에게도, 현진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살가운 모습들을 보이며 수경을 잔뜩 챙겨주게 되고, 수경을 의심하는 윤미와 현진을 두고 도리어 모녀가 작당모의해서 수경을 의심한다고 비호하기까지 하며, 심지어는 수경이 돈을 훔쳤더래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까지 보인다.
얼핏 보면 할머니에게서 할머니의 인간적인 고민들, 곧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추하게 죽기 싫다는 욕망을 보지 못하고 잃어버린 5천만원만 보는 딸과 손녀가 나빠 보이지만, 이 5천만원은 어떻게 보면 딸과 손녀가 영실에게 갈구하는 관심과 사랑의 값일 수도 있다. 물론 서술만 보면 윤미나 현진이나 자기에게 5천만원을 맡긴 양 이기적으로 생각하는 모습이긴 하다(...) 근데 이는 어떻게 보면 자기중심적인 영실의 성향을 훌륭히 물려받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작중 유일하게 긍정되는 수경은 유일하게 헌신하는 존재다. 영실의 착취관계론(?)을 깨뜨린 당사자이지만, 사실 수경이 완전하게 긍정되기도 힘들다. 어쨌든 딸과 손녀 앞에서 자기가 돌보는 대상을 '엄마'라고 부르는 모습이나 윤미와 현진이 영실에게 헌신하지 못하는 점을 지적하며 자기는 그렇지 않다고 영실과의 관계를 자랑하는 점, 현진의 의심에 굉장히 유연하게 대처하는 '기싸움'의 대처를 보면...... 수경의 헌신이 정말로 깨끗한 의도인지 아닌지 미묘해지는 부분이 생긴다.
윤미는 현진을 위해 희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영실에게 희생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현진은 당연하다는 듯이 영실이 자길 위해 희생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며, 영실은 일방적으로 윤미와 현진을 고려하지 않고 희생하라고 요구하며 희생하지 않은 두 사람에게 실망한다.
적고 보니 콩가루 같지만 결과적으로 세 사람은 이런 헌신과 희생에 대한 태도와 요구사항을 '침묵'함으로 관계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한다.
동시에 이런 침묵은 관계를 잠재적으로 파탄 낼 폭탄이기도 했다. 그 폭탄이 하나 터지면서 시작한 게 이 소설의 도입부, 곧 '5천만원의 실종'이다.
영실은 5천만원의 존재를 침묵했고, 이 5천만원의 목적은 본인이 실버타운에 거주하기 위한 보증금이었다. 그리고 이 5천만원의 목적은 그 존재가 딸과 손녀에게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영실은 끝까지 그 목적을 함구한다.
서로에 대한 불만, 욕구마저 침묵함으로 유지되는 관계는 결국 그것에 금이 가더라도 '침묵'을 관성적으로 고수한다. 영실-윤미-현진이 좀 더 솔직하게 자기 사정을 털어놓고, 자기 욕망을 털어놓을 수 있었더라면 5천만원 가지고 윤미와 현진이 영실에게 억하심정을 가졌을까? 영실이 윤미와 현진에게 그렇게 실망했었을까?
물론 힘들 것이다. 진솔한 대화가 모든 갈등을 봉합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리란 건 인류보완계획만큼이나 허무맹랑한 얘기다. 그러나 영실-윤미-현진의 기만적 관계를 침묵으로 유지하는 것 역시 별로 좋은 꼴은 아니다. 그걸 수경이란 의뭉스러운 헌신과 대비시키면 더더욱 그렇다. 각자의 삶이 있는데 수경이 현진에게 날린 지적과 자랑은 수경이 요양보호사라는 지위를 이용해 쟁취한 것이다. 현진은 그러면 직장 때려치고 수경처럼 영실의 수발을 다 들었어야 한단 말인가?
어불성설이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헌신을 강요하거나 헌신을 요구하고, 헌신하지 않은 자를 책망하거나 자신의 헌신을 자랑하는 일 자체가 전부 잘못됐다.
결국 이 작품에서 잘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작품이 긍정하려는 사람(수경, 영실)은 있지만, 난 누구도 긍정하고 싶지 않다.
그렇기에 이 작품에서 내가 읽고 남은 건 가까운 사람과 잘 소통하자는 결론이다. 헌신과 관계에 관한 어떤 교훈도 내겐 남지 않았다.
여담으로 영실이 5천만원을 그러면 무조건 공개했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최소한 실버타운 입주 희망 의사를 밝히고 그를 위해 자기가 알아서 돈을 모으고 있으니 너희 손 벌리지 않겠다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돈의 목적이 불분명하니 윤미와 현진이 불만을 품은 것 아닌가. 어차피 자기중심적이라고 평가받는 영실이 자기중심적으로 쓰겠다고 하면 윤미와 현진이라고 거세게 원망하진 않았을 것이다.
제목은 반의 반이었으면 영실의 반을 닮은 윤미랑 반의 반을 닮은 현진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했을 텐데, 거기에 한 번 더 쪼갠 반의반의 반이라서 잘 모르겠다. 해설도 제목의 의미는 고려를 안 한 듯하고...... 내용을 고려하면 약간 (수경의) 반의반의 반만큼이라도 해라...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였다. 근데 반의반의 반이면 12.5%인데 윤미와 현진이 수경의 1할조차 못했다고 생각하긴 좀 힘들어서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뭐 제목의 의미를 굳이 짜맞출 만큼의 감흥은 없었으니 그냥 모르겠다...로 끝내도 별 아쉬움은 없다. 끝.
찾아보니까 '반의반' 자체가 한 단어라서 붙여쓰는 듯
헉 그럴수가
이렇게 안 궁금하게 쓰는 것도 재주일듯 ㅋ(원글러 아니고 작가 얘기임)
뭐 장르적으로 썼으면 모를까 이건 그런 쪽은 아니니...ㅎ
치매 노인 협박해서 돈 타먹고 파멸로 가는 이야기가 왜 아님...
ㄹ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