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혹시 작년에 쓴 신들린 개발자 중편소설 감평을 찾을 수 있다면 먼저 읽는 것도 좋습니다. 어느 정도는 그걸 읽었다는 전제하에 작성되었습니다.
2월달의 일이었다. 나는 그 무렵 씹덕 행사 하나에 참가했는데 일반적인 씹덕 행사들과는 다르게 자기가 만들어낸 굿즈들을 다른 팬들에게 파는 행사였다. 일반적인 행사가 런던 금융시장이라면 그 행사는 키부츠에 가까웠던 셈이다. 아무튼 나는 거기서 유대인 팬픽 모음집을 샀는데 작가라는 국제유대비밀결사모임단이 감상문을 해달라는 요청을 자꾸만 해왔다. 내가 볼셰비키로 보였나. 하긴 씹덕 행사에서 텍스트 읽을 놈들이 어딨겠는가. 요즘 씹덕들은 다 호요버스 동영상이나 보는 인간들인걸.(아아, 전부 되다만 인간뿐이다.) 그리하여 나는 연용공의 정신에 입각하여 책을 집어들었다. 그런데 나는 심기가 약간 불편해졌다. 텍스트를 보아서 십중팔구 독갤러인거같은데 하나같이 닉네임을 갈았기 때문이었다. 여러분, 독갤이 부끄럽습니까? 나는 그렇게 독기가 오른 상태로 감상문을 쓰기 시작했다.
그 뒤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상세히 말하지 않겠다. 다만 결과적으로 일어난 일들만 적겠다. 작가 한명은 나에게 만원을 쥐어줬고 한 명은 몇년 전 만들었다는 책을 따로 주었으며 또 다른 한명은 "니가 누군지는 잘 모르겠는데 씨발놈아"라는 말로 시작하는 일장연설을 날렸다.(내가 하마스로 보였나보다.) 그중 한명은 독갤러였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두명. 잘 모르겠다.
하기야 씹덕 행사만 그런게 아니었다. 3월달에 나는 문피아에서 웹소설을 하나 읽었는데 대충 자이모쿠자 요시테루가 아쿠이 히비키랑 연애하는데 거기에 자꾸 호시노 아이가 끼여드는 괴상한 소설이었다. (독갤러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그 웹소설의 이름은 굳이 말하지 않겠다. 그 웹소설을 읽으면 팬이든 아니든 나에게 씨발놈이라고 부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하긴 줄임말도 씨발놈과 비슷하기는 했다.) 근데 그 소설의 작가는 커뮤니티 지박령인지 온사방천지의 드립을 써댔고 그 중에는 당연히 독갤산 드립도 있었다. 근데 이 작가라는 인간이(심지어 주인공의 직업은 소설가다!) 독갤 드립을 치면서도 독갤에서는 한번도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던 것이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나는 깨닫고 말았다. 아아, 그렇구나. 독갤은 부끄러운 것이었구나! (러시아어라도 배워둘껄, 블럇.)
그렇게 하늘 아래 한점 부끄러움이 없기는 커녕 인간의 인생이라는걸 도저히 짐작할 수 없게되어버려 우울증이 생길 지경이었던 나에게 소식이 들려왔다. 독갤 소문호 김쿠만이 새로운 신작을 내놓았던 것이다. 물론 그 역시 독갤을 부끄럽게 여기는 인간이기는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이제 알고 있다. 그러니 걱정마라, 김쿠만. 그대가 독갤을 부끄럽게 여긴다면, 우리 역시 그대를 부끄럽게 여길테니 말이다. 그래도 안심해라. 독갤은 언제나 그대에게 문이 열려있다. 그래도 불은 좀 꺼주길 바란다. 이제 리뷰를 시작해보자.
김쿠만 소설의 최대 특징중 하나는 항상 화자(혹은 내레이션)이 무기력하다는 점에 있다. 화자는 적극적으로 사건을 주동하는 존재가 아니라 한발 뒤에서, 혹은 떨어진 곳에서 시간과 공간의 이동에 휩쓸리는 타자에 불과하다.(작가 개인의 성격을 반영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못믿겠으면 구글에 작가 이름을 치고 사진을 몇개 찾길 바란다. 카메라나 다른 사람을 제대로 응시하는게 하나도 없다.) 아마 그에게는 독갤만 부끄러운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게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윗 문단에는(김쿠만 단편들이 으레 그렇듯) 의도적으로 개소리를 섞긴 했지만 이러한 무기력함 속에서 작가의 냉소적인 현실 관찰이 담겨져있다. 김쿠만의 소설은 의도적으로 시류를 거부하는 태도를 품고있다. 작중 한 문장을 읆어보자.
"팀장은 회사에서 하는 일은 문학과 달리 전부 소용이 있어야한다며, 소용 있는 문학은 결국 팔리는 문학이라고 말하더니, 남북관계가 지나치게 경색되었을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불티나게 팔렸고 비트코인이 핫했을 때 『달까지 가자』가 불티나게 팔렸다는 사실을 유념하라고 덧붙였는데, 개인적으로 그런 세태적인 소설에 별 관삼이 없었던 터라 별로 유념하고 싶지는 않았다."
-미래
미래는 후반부에서 한번 더 인용할 소설이니 중요하기는 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부분은 따로 있다. 슬프게도 시류를 거부하는 소설을 쓰기에는, 슬프게도 김쿠만은 너무 늦게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대문호들이 활약하던 시대는 물론이고 짧았던 그의 시대마저 흘러버리고 어느새 한국인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보고있으니 말이다. 하긴 김쿠만도 그걸 자각하고 있기는 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강 작가와 달리 난 죽을때까지 한림원으로부터 상장은 커녕 쓰다버린 이면지조차 받지 못할 예정이었지만, 그 사실을 미처 몰랐던 나는 타란티노가 보여준 소설 나머지를 죄다지워버렸다."
-타란티노의 마지막 필름
불쌍한 김쿠만! 19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은 그게 뭔지도 모른다는 월급주의 소설가에게 빼앗기고 2010년대 일본 라이트노벨은 문피아의 웹소설에 빼앗기고 말았다.(심지어 그 순문학작가는 그걸로 상까지 타먹었다. 웹소설작가는 문피아 메인화면까지 타먹었다.) 그리하여 그가 끄적일 수 있는 것은 좁지좁은 장르소설에서 타란티노와 레드애플밖에 남지 않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김초엽과 달리 명문대 출신 미소녀가 아니었고 덕분의 그의 SF소설은 유대인들과 동급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게 SF라고 묻는 분들이 많다. 덕분에 소설이라고 묻는 분은 없으니 참 다행이다)
김쿠만의 소설은 스스로도 자조하듯이 아무도 읽어주지 않을 소설이다.(미래에는 초판본의 반밖에 못팔았다는 화자의 대사가 나오는데 레트로 마니아를 암시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의 소설과 관련된 인물들은 비현실적이거나 의도적으로 메타픽션적인 성격으로 등장하거나 미친놈이다.(씨발놈일지도 모르고) 이러한 비현실적인 다층구조는 의도적으로 정통적 소설에 대한 붕괴 시도에서 비롯된다. 화자를 둘러싼 여러 사건들은 소설 그 자체와 그 안에서 묘사되는 다른 소설 및 사건, 그리고 그 사이에서 떠돌고 있다. 이런 소설을 좋다고 읽어주는 놈이 몇이나 되겠는가? 김쿠만은 그 답을 알고 있다.
"선장은 누군지 알 것같다고 중얼거리더니 유골함을 두들기며 안녕하쇼,하고 인사를 건넸다. 제자가 그를 미친놈처럼 쳐다보자, 선장은 정말 미친놈처럼 씩 웃으며 남은 소주를 마저 들이켰다."
-남쪽 바다의 초밥
이러한 기괴하고 초현실주의적 소설은 의도적으로 실제에서 배제되어 탈출하기를 원하는 작가의 관념이 담겨져있다. 이 관념에서 일어나는 일은 현실에서 절대 일어날 리 없는 기괴한 사건들과 환몽적인 전개로 이루어져있다.(쿠엔틴 타란티노가 화자에게 한국어 소설을 배운다던가, 작중 소설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이 그 소설을 쓰는 작가의 맥주캔을 다시 마신다던가 말이다.) 이러한 소설은 명백히 이것이 허구의 사건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작중의 세계는 일종의 대안적 세계다.
다만 이러한 대안적 세계는 일종의 꿈꾸던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그런 환상의 세계는 아니다. 오히려 낮의 스트레스가 밤의 악몽이 되어 구현되는 것에 가깝다. 작가의 소설에서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작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약간의 답답함과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분위기를 강하게 띄고 있다. 때문에, 작가의 소설에서 묘사되는 레트로(과거)가 작가가 원하는 대상이라는 다른 평론에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남쪽 바다의 초밥에서 제자가 과거를 청산하려는 태도를 보이거나 Encylopedia ponchok에서 IMF 직후의 시대를 은하 전쟁이 벌어진다고 묘사하는 것을 볼 때 과거 역시 또 다른 현실의 다른 장면에 불과하다.
과거가 현실의 또다른 모습아라면 이 소설의 다른 대주제인 남해 역시 마찬가지다. 굉장히 모호하게만 등장하는 남해는 남쪽 바다를 통칭하는지 경상남도 남해군을 이야기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남해는 일종의 목적지이자 대상으로 서술되지만 그 남해는 결코 긍정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다들 알다시피, 남해는 인공지능, 로봇, 자율주행등 금지된 것이 많은 옛날 동네였다. 남해는 미래를 부정하며 과거를 그리워하는 망령스러운 시대 부적응자를 위해 계획된 과거형 신도시였다. 과거와 계획, 그리고 신도시라는 단어가 어색하게 붙어있는 것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남해라는 도시가 정말로 말도 안된다는 동네라는걸."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네 마음대로 네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더라고. 마치 자율주행 차량처럼 말이지."
-남해, 자율주행금지구역
그 밖에도 백년열차는 작중 메타픽션의 허무하게 죽은 작전장교의 고향으로 설정되거나 남쪽 바다의 초밥의 고향으로 설정되지만 그 고향들은 모두 도달할 수 없는 존재로 설정된다. 남해는 "미래를 부정하며 과거를 그리워하는 존재"만이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비현실적인 공간은 김쿠만의 소설집에서는 등장할 수 없다. 김쿠만의 소설은 결국 다른 차원에서의 현실이기때문이다.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언정 배제할 수는 없다.
자, 김쿠만의 소설의 레퍼토리들을 살펴보자. 그의 소설은 즉홍적인 초대나 이동, 불합리한 상급자의 명령, 불안정한 이성관계, 책임을 회피하는 상급자라는 단조로운 주제로 이루어져있다. 이러한 소설의 공통점은 현대사회에서 불안정한 관계를 의미한다. 그 속에서 작가와 화자의 의지는 개입할 수없고 개입되어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결국 현실에서 회피할 수 없기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와 남해는 절대로 목적지로 설정되어서는 안된다. 도달할 수도 없을뿐더러 존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마치 김쿠만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들이 여럿 등장하지만 그런 키워드들을 연결하려는 시도가 무익하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이제 이 단편집의 마지막 순간으로 가보자.
"그러니까 이건 미래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미래
김쿠만의 마지막 소설은 소설을 쓰는 인공지능 '미래'를 다루고 있다. 언듯보면 인공지능이 인간의 영역인 창작을 침범하는듯이 보인다. 하지만 김쿠만의 소설을 곰곰히 곱씹어보면 오류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인공지능이 있던말던 한국 소설은 패망해가고 있고 자신의 소설은 아무도 읽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오는 미래는 일종의 하나의 미래적인 가능성일뿐, 정형화된 세계로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
다만 여기서 나오는 '미래'는 굉장히 이질적이다. 그(녀)는 드물게도 화자에게 호의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루키님도 언젠가 제대로 된 소설을 쓸 수 있을거예요."
-미래
물론 여기서 언급되는 미래는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미래"와는 다른 존재다. 하지만 과거와 남해가 조금씩 다르면서도 큰 대주제를 공유하는 것처럼 실질적으로 언급되는 미래는 동일한 존재다. 여기서 등장하는 "미래"는 작중 등장인물의 행동들을 예언하는 소설을 쓴다. 이것이 가능한 존재는 누구일까? 내 생각에 그(녀)는 화자 그 자체다. 화자만이 작중 등장인물들을 통제할 수 있기때문이다. 즉 미래는 등장인물들이 작가인 김쿠만을 적절하게 완성해가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작중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은 모두 소설을 썼거나 쓰는 인물들이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그자리를 대체하는건 인공지능이다. 하지만 그건 절망적인 상황이 아니다. 어차피 책 안읽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화자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집필에 몰두한다.
"그리고 이건 아마 미래의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로서 이 소설집은 끝난다. 김쿠만의 이야기는 제대로 된 소설을 쓰겠다는 또다시 미래를 향한, 독자와 자신을 향한 불안정한 짧은 약속만 남기고서.
"뭐, 괜찮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쓰고있을테니까. 그러니 기꺼이 이 페이지까지 도달해준 작가들이여, 어느 미래의 지면에서 다시 만날 그날을 조금이라도 기다려주길."
-작가의 말.
"미래에서 기다릴께." 뭐 이런 말인가. 그 애니메이션에서 미래 세계는 디스토피아였던거같은데...
물론 김쿠만의 이런 태도는 딱히 특이한 점이 아니다. 그 예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SF 소설의 한 단락을 읽어보자.
"그는 문득 누구를 위해 이 일기를 쓰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를 위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을 위해. (중략...) 미래와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미래의 도래는 결코 불가능하다. 미래가 현재와 똑같다면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미래가 현재와 다르다면 자신의 노력은 무의미할 것이다.
-1984
아아, 김쿠만! 그대는 대문호 조지 오웰의 영역에 어느새 접어들었구나! (맥주를 홀짝히는 도스토옙스키 예찬자는 반성하길 바란다. 이것이 굶주린자와 수도권중산층의 격차다.) 김쿠만은 이제 겉절이 나부랭이가 아니다. "소"문호이기는 하지만 엄연한 문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김쿠만이 제대로 된 소설을 쓴다거나 다음 소설에서 레드애플을 안쓸것같다는 생각따위는 추호도 안들지만은(씨발놈아) 그래도 이정도라면 다음 소설을 기다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김쿠만은 우리를 떠나간다. 그리고 그가 떠나간 자리에서 우리는 머무르며 목을 매다는 대신 고도가 되어버린 소문호를 기다리며 우리는 하염없이 새로운 책을 짊어진다. 그것이 독자로서의 숙명이라고 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러니까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김쿠만의 경험한적 없는 레트로 소설인 새로운 미래 소설을 구매해 보는 것은 어떨까? (솔직히 젊작상 나부랭이보다 이게 더 한국문학스럽다.)
개추개추
졸작인건 몸이 반응하지만 지가 좋아하는 대문호를 끌어들여 빨아주고 반대편 다른 대문호 추종자를 까서 은근히 자기주장 이게 혈연지연학연에 버금가는 커뮤연의 힘인가보네 기성문단권력과 하등 다를 바 없다
zzzz - dc App
커뮤연하자는 지난 게시물 안보고 덧글지르지맙시다. - dc App
얜 진짜 김쿠만한테 돈이라도 뜯겼나ㅋㅋㅋㅋ
아이고 말귀 못알아처먹고 자꾸 꼽사리끼는 놈들이 붙네 독갤 타이틀 안 달렸으면 영찔이로 치부할 수준인데 독갤 타이틀 달렸다고 4년이나 우쭈쭈해주는거 봐라 4년이면 고등학생 대학가는 시점인데 최소한 독갤출신이라 봐줘야 한다는 저능아전제는 버려야 하지 않을까?
지능이 멀쩡한 놈이 독갤을 할리가 없다. - dc App
ㄴ아니이런
울지 말고 네가 쓴 소설 남겨봐라 네것도 읽어주고 감상해주께
ㄴ아이고 비직관 운운하는 놈이라 쓴놈 아니면 평 못한다는 말만 내세울 수 있으신가 젊작상도 찍어먹길래 걍 마조히스트인줄 알았는데 진심으로 빠는거였어?
그래 독갤이니까 독갤출신 좀 빨아줄수 있지 내가 좀 빡빡하게 굴었다 하고 땡치려는데 또 귀신같이 꼽사리껴서 창을 내네
ㄴ야 내가 어그로면 나 저능아 아니라고 울고불고 지랄했고 망생이면 굶어죽기 싫어서 갤질 안하고 한자라도 더썼다
솔직히 난 님이 김쿠만 글마다 발작하며 증오하는 걸 도통 모르겠어서 그럼
이제 슬슬 외부 작가 취급하고 가감없이 잘썼다못썼다 평 할 시기인데 갤출신이라고 빨아주는 기조가 짜증나서 궤는 다르지만 이제 그냥 젊작상작가 정도로 취급하는게 낫겠다싶다
문단에서 언급조차 안 되는 쿠만이햄이 젊작상 급이라니 거 올려치기는 갤럼이 하고 있구만 지금
그니까 내가 과했으니 안한다구
음음 한마디로 재밌어하지 말라고! 라는 거군 완벽히 이해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