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이 글은 던전밥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애니 1기만 봤고 나머지를 먼저 보고싶으면 나가세요.
던전공략에 실패한 라이오스 일행... 그들은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희생한 파린을 구하기 위해 다시 던전에 들어간다. 하지만 인간은 학습하는 동물. 경험이란는 비싼 값을 치른 그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던전공략에 나선다...
마물을 잡아먹으며..!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바로 새로운 동료.
센시를 새로운 동료로 받은 라이오스, 마르실 그리고 칠책은 파린을 구해낼 수 있을까?
대충 작년 초, 대략 1년 하고도 한 분기 전에 던전밥 애니가 나왔다. 애니 1기까지의 내용을 대충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파린의 희생으로 파린 외 라이오스 파티는 지상으로 텔포
2. 라이오스 파티에서 나나리와 슈로 탈퇴 및 센시합류 후 던전 돌입
3. 3층에서 오크와의 거래로 아직 5층에 레드드래곤이 활동함을 확임
4. 레드드레곤을 죽이고 고대마술을 써서 레드드래곤의 고기를 써서 파린을 소생
5. 광란의 마술사가 파린을 데려가며 라이오스 파티는 유령의 도움으로 도주
6. 슈로와 5층에서 재회 및 키메라가 된 파린과 전투 후 라이오스 파티는 던전 심층으로, 나머지는 지상으로 이동
7. 라이오스 파티에 이즈츠미 합류
대충 이 정도 된다.
작중 초반일수록 음식 비중이, 후반일수록 서사 비중이 커진다. 물론 극후반까지도 마물식을 꾸준히 나오므로 정체성을 잃지는 않는다.
어쨋든 애니 1기까지는 푸드판타지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애니 2기에 해당하는 후반 스토리는 정통판타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지금까지의 스토리는 서사를 쌓아올릴 토대로서의 세계를 구축하는 과정이었다는 듯이.
던전밥의 던전은 모순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는 지상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모습, 다른 하나는 성의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모습. 성의 위는 성의 안이고, 아래는 성의 밖이다. 그러니까 던전에 들어가는 것은 던전의 안으로 들어가면서 성의 밖으로 나가는 길이다.
이런 던전의 모습은 마치 존재 자체가 모순적이라고 하는 것 같다. 마치 라이오스 파티처럼. 인간 주제에 마물을 좋아하는 라이오스, 인간으로도 엘프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마르실, 가장 어른스럽지만 가장 애새끼 같이 보이는 칠책, "던전"을 "경작"하는 센시.
이 던전 안에서는 죽지 않는다. 영혼이 육체와 던전에 속박되어있기 때문에 육체를 회복시키면 되살아난다. 이 던전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희미하다. 그렇기 때문에 던전공략의 주인공이 된게 라이오스 파티가 아닐까? 모순되었다느 건 양극단의 경계를 그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순된 던전을 모순된인간이 정복한다. 아니 정복이라는 말도 이상하다. 이들은 던전을 경작한다. 신비의 공간에 생태계가 있음을 폭로하고, 생산의 체계를 구성한다.
물론 라이오스 파티가 던전의 전갈을 잡아먹기 전에도 마물식을 먹는 자들은 있었다. 센시 뿐 아니라 지상에 올라가지 못하는 범죄자나 오크들은 던전 안에서 먹고 산다.
식탁이 집에서 중요한 장소라는 점을 생각하면 던전이라는 신화적 공간도 사람이 먹고사는 인간적인 공간으로 변한다. 식사라는 행위가 공간의 본질을 규정한다.
뿐만 아니라 먹는다는 행위는 존재의 관계를 규정한다. 먹는다는 건 하나가 된다는 점에서 사랑과 같고 빼앗는다는 점에서 폭력적이며 자신의 것으로 한다는 점에서 욕망의 대상이다.
먹음으로써 영혼이 사라진다. 식사는 공간뿐 아니라 존재도 규정한다. 먹히는 대상 뿐 아니라 먹는 주체도.
라이오스 파티가 파린을 먹겠다는 결심을 한 건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던전 안의 행위자가 외부인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던전의 주인인 광란의 마술사는 던전을 만든 분명한 이유가 있으며, 이를 위해 던전을 창조한 '힘'을 억압하면서까지 자신의 목적을 관철한다.
광란의 마술사(시슬)는 자신이 사랑하는 왕국을 지키고자 왕국 전체를 멸망한 고대도시 속으로 가져왔고, 불멸을 주어 유지시켰다. 그리고 힘 그 자체인 날개사자의 의지를 봉인했다. 어라? 날개사자는 스스로 힘이라 하지 않았나? 어째서 한갓 힘에 의지가 있지?
다양한 사람이 모인 던전, 그 속에 이런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욕망을 쫓아 던전에 들어온 모험가, 외부인을 내쫓으려는 광란의 마술사, 마술사의 소망을 이루어주면서도 외부인을 끌어들이는 날개사자.
광란의 마술사와 모험가의 동기는 분명하나 날개사자는... 그렇지 않다. 이는 날개사자가 유일하게 능동적으로 하는 한가지 행위를 통해 밝혀진다. 광란의 마술사는 왕국을 옮겨 던전을 집으로 삼았고, 모험가들은 던전의 부산물에 빌붙기 위해 이사해왔다. 던전은 이들의 집이 되었다. 날개사자는 어떤가?
날개사자는 인간의 욕망을 먹는 존재다. 욕망을 먹고 싶기 때문에 인간의 소망을 들어준다. 욕망을 먹고 싶기 때문에 자아가 생겼다. 애초부터 던전이 날개사자의 식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던전이라는 공간의 본질은 힘에 의해 규정된다. 의지라고도 부를 수 있을거다. 하지만 이 의지는 단일한 의지는 아니다. 인간의 욕망이라는 말로 퉁치긴 했으나, 그것이 얼마나 다양한가?
시슬이 지배하는 던전은 하나의 왕국을 통째로 옮겨왔을 뿐 아니라 침입자를 막기 위해 층을 구분하고 마물을 배치하고 시슬이 직접 쓰러트리러 다니기도 한다. 던전의 주인이 바뀌면, 던전이라는 공간도 바뀐다.
마르실이 던전의 주인이 되고 즉각 모습이 바뀐다. 모든 층계의 구분이 사라지고 뒤섞인다. 왜냐하면 키메라가 돼서 던전에서밖에 살 수 없는 파린이 보다 지상에 가까운 곳에서 살 수 있도록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마르실과 시슬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시슬이 지상의 적으로부터 왕국을 지키고자 했다면, 마르실에게 지하와 지상의 구분은 중요하지 않고 삶의 터전으로서 하나라는 점이다.
삶으로도 죽음으로도 비유되는 뱀. 땅바닥을 기어다닐 몸으로 날아다니는 마물. 누구보다 긴 시간을 살아야하는 마르실의 처지를 보여주는 것 같은 긴 몸과 그녀의 취향인듯한 꽃무늬.
시슬을 상징하는 마물이 레드드래곤이었고, 그 존재는 지하 5층에 도달하지 않으면 알 수도 없다. 하지만 마르실이 만든 코아틀은 누구라도 볼 수 있게 미궁이 있는 섬의 하늘을 날았다. 뱁과 새의 구분이 사라졌다. 세계는 하나다.
그런데 여전히 마물은 사람과 싸운다. 전과는 다르게 외부를 배척하는 추상적인 싸움이 아니다. 파린을 되찾을 힘을 빼앗으려는 카나리아를 쫓아내기 위한 싸움이다. 마물은 그녀의 지휘 아래 군대를 이룬다.
전장이 되어버린 던전. 피가 흐르면 말이 안통한다는데 이 난관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으레 정통판타지라면 문제가 해결되고 일상을 되찾아야 할 것인데... 심지어 이 문제는 인간적인 이유로 끼어들게 되었지만 인간은 감당하기 힘든 신화적인 싸움이다. 라이오스 파티는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마르실이 미궁의 주인이 되고 다른 라이오스 파티는 마르실을 막으려고 한다. 마르실이 답지않게 막나가고 말도 안통하니 뭔가 단단히 잘못돌아간다는걸 바보라도 안다.
어떻게 해야할까? 이럴 땐 보통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 그런데 그 문제의 근원이 힘 그 자체인 날개사자다. 힘을 죽일 수 있나? 죽지 않는 것을 죽이는 영웅, 그것은 태곳적부터 이어져온 이야기다. 그리고 모두가 좋아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여전히 어떻게 쓰러트릴지 알 수 없다. 헤라클레스가 히드라의 목을 지져 죽였듯이 무언가 약점이 존재해야 할 것인데, 그것을 알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라이오스는 이미 그 실마리를 잡고 있었다. 카나리아와 만나고 날개사자, 그들이 말하기 악마의 목적은 욕망을 먹는 것. 그걸로 악마를 어떻게 쓰러트릴까? 욕망에 독이라도 타나?
어쨋든 실마리는 몰라도 기회는 있다. 이유는 몰라도 날개사자는 라이오스가 던전의 주인이 되길 바란다.
던전이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듯이, 힘이 목적을 위한 수단이듯이, 악마도 자신의 목적을 위해 라이오스를 수단으로 쓰고자한다.
던전이 소망을 이루어줌으로써 욕망을 키우고 날개사자는 그렇게 커진 욕망을 맛있게 먹는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먹기 위해서라면 굳이 라이오스일 필요가 있을까? 그런 차원에서 누구의 욕망인지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면 날개사자의 목적은 무엇인가?
지상의 포함한 모든 세계를 자신의 몸 안(던전)으로 끌어들여 모든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고 그 욕망을 맛있게 먹는 것. 그것이 날개사자의 목적이다.
이건 지금까지처럼 누군가의 욕망을 먹는 게 아니라 구조 자체를 뒤엎어야 한다. 그 열쇠로서 라이오스에게 무슨 특별한 게 있을까?
마물에 대한 사랑? 이건 사랑이라기 보다는 동정심이나 호기심 같은 거라고 하는 게 낫겠다. 하다못해 시슬과 마르실이 보인 사랑이 크면 더 크지 작지 않다. 방향성의 차이라고 하기에도 좀 이상한게 그럼 센시는? 왜 하필 라이오스인가?
확실히 마물사랑은 의심스럽다. 심지어 라이오스가 마물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마물이 인간을 죽이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인간관계가 서툴렀던 라이오스는 인간을 죽이는 마물을 동경해왔다.
날개사자가 굳이 라이오스를 선택한 이유, 라이오스의 욕망, 그건 무엇인가?
육체의 교환. 모종의 이유로 지하에 갇혀버린 날개사자는 인간의 몸을 원했다. 그러 하나의 힘으로밖에 존재하지 않아 던전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날개사자는 의지를 가진 하나의 생명으로서 지상을 향하고자 했고, 그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육체를 포기할 수 있는 욕망을 가진 라이오스와 접촉했다.
몸만 얻는다고 맘대로 할 수 있나?
그렇답니다.
어찌됐든 물은 엎질러졌다. 라이오스와 악마의 싸움, 그 실마리가 있었다는 것 기억하는가? 악마는 욕망을 먹는다.
참 멋진 모습.
날개사자는 하나의 힘으로서 존재한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욕막을 '먹는다는 것'은 생물이라는 것. 먹는다는 건 생물의 특권이기 때문에.
욕망을 먹겠다는 욕망만이 있는 생물의 욕망을 먹어치움으로써 죽일 수 없는 존재를 죽인다. 먹지 않는 건 생물이 아니기 때문에.
악마는 지상으로 나왔고 세계는 집어삼켜진다. 라이오스 없는 라이오스 파티가 남아있는 이유는 그게 라이오스의 욕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악마는 끝까지 약속을 지킨다. 그가 되고 싶은 마물의 모습까지도.
싸움이란 본래 생존투쟁이었다. 단지 생존 외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이 싸우게 됐을 뿐. 생의 목적을 가지지 못한 존재가 생존을 추구하는 절박함을 이겨낼 수 있을리가 없다.
따라서 날개사자는 라이오스에게 잡아먹혔다. 날개사자는 의지를 잃고 힘으로 돌아갔다. 세계에서 미궁이 사라졌다. 싸움에서 이겼다.
마물의 허물을 두른, 악마를 잡아먹은, 던전을 정복한 왕.
사소한 이유로 끼어들게 된 사건으로 인해 그는 신화적 존재를 정복한 인간이 되었다. 물론 파린도 구할 수 있었다.
먹는다는 것, 그것은 삶의 특권. 모두가 둘러앉은 식탁, 그것이 라이오스가 바라는 삶의 모습이다.
먹는건 즐겁다. 그렇지만 먹는 삶도 그런가?
먹는 삶,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투쟁의 삶이다. 욕망은 무한이 생기고 따라서 만족이란 찾아오지 않는다. 죽음이 안식이라 불린다면 또한 만족이고도 불러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바라고 추구하고 원한다. 고통스러운 삶을. 시슬이 가둬둔 낙원향의 주민들이 무미건조한 생존이 아닌 죽음을 바랬듯이, 인간은 감각으로 가득한 세상을 원한다.
먹는다는 건 생의 특권이다. 살기 위해서는 계속 먹어야 한다.
사랑하고, 파괴하고, 욕망해야 한다.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계속, 하염없이
오늘 저녁은 무얼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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