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웰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소설 1984는 시대가 낳은 최고의 역작으로 칭송받기도 하지만 난 이런 평가가 전체주의가 인류에 끼친 피해에 대한 반감에 의해 탄생한 반발적인 호의라 생각한다.

우선 난 소설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적어도 특정 사상을 옹호하고 비판하는 건 아니다. 그것은 사회학자들이, 정치인들의 일이다. 소설가가 정치적 스탠스 만을 내보이며 주장하는 것은 자신의 의무를 망각하는 것이다.

소설의 의무란 현실의 이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모두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무언가를, 이를 테면 우리의 삶을 점령한 관료제, 수많은 성적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자유주의 사상, 삶의 조종하는 무의식 등을 소설가는 포착하고 나름의 형식으로 표현한다.

형식은 무엇보다 중요한 소설의 요소이다. 현실의 포착이 소설가의 의무라면 형식의 표현은 소설가의 능력이다. 의식의 흐름, 교향악적인 리듬 부여, 여러 장르의 결합, 연쇄적인 등장인물들을 통한 공동체의 인물화 등은 소설가가 자신의 능력을 투영해 낸 위대한 형식의 발명들이다.

오웰의 소설은 앞서 얘기한 두 가지 모두가 결여되어 있다. 그의 소설은 목적이 분명하다. 전체주의의 풍자 및 비판을 통한 좌파 세력들의 계몽. 그래서 그는 정치학자들이나 할 법한 얘기를 소설 내내 이야기한다. 전체주의가 얼마나 나쁜지,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세뇌가 얼마나 무서운지. 1984에서는 어떠한 삶의 비밀도 드러나지 않는다. 모든 것은 표면적이고 자명하다. 그것은 소설이 아니라 프로파간다이다.

또한 오웰의 소설들은 특이한 형식이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발자크가 이룩한 전형적인 소설의 형식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렇다면 소설가의 의무도, 능력도 드러내지 못하는 오웰을 좋아할 이유는 나에게 없다.

추가로 이야기하자면 난 현재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요소들로 점철된 소위 말하는 키치적인 소설들도 싫어한다. 쓸데없는 자유 찬양, 가족애 찬양, 사랑 찬양은 소설의 탈을 뒤집어쓰고 문학인 채 애쓰는 비문학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