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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가스는 미국의 축소판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단순히 라스베가스를 고평가하거나 미국을 비판하는 말만은 아니며, 그 이상의 현실적인 기술 및 관계가 엮여 있다. 사막으로 가득한 네바다 주는 라스베가스 카지노에서의 세수에서 대부분의 자금을 끌어오며, 라스베가스는 도박이 참여자를 '속이지는 않는다'는 전제 하에 정부의 법적인 승인을 받아 전체적으로 봤을 땐 늘 카지노 측에 득이 되는 제로섬 게임을 유치하고, 이 유치를 위한 경쟁을 위해 카지노는 매번 어떤 식으로든 발전하고 있다. 이렇게만 말하면 여전히 공치사처럼 들릴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라스베가스에서 카드를 쓰는 테이블 도박보다 슬롯머신, 비디오 포커 등 비디오 게임 도박이 압도적으로 더 많아졌고 수익도 월등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슬롯머신에 가장 심하게 사로잡힌 사람들은 옛 도박 중독 공익 광고처럼 고액 배팅으로 단숨에 패가망신하는 게 아니라, 1달러, 혹은 심하게는 1센트씩 배팅을 하곤 한다는 것은? 그리고 이 사람들이 엄밀히 말해, 딱히 돈을 따려고 슬롯머신 앞에 앉는 것도 아니라는 점은? 라스베가스는 미국의 축소판이라는 말을 좀 더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바꿔 말하자면 이렇다: 라스베가스는, 탈산업화 시대의 디트로이트다.
<중독의 설계>는 라스베가스의 중독 문제를 분석하는 책이지만, 그 시기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상술했듯 라스베가스에서는 클래식 테이블 게임에서 예전에는 얼치기들이나 하는 걸로 취급했던 비디오 게임으로의 전환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는 더 높은 수익률을 위한 것이었지만, 어째서일까? <중독의 설계>는 1부와 2부에서 이를 각기 분석한다. 먼저 카지노 및 슬롯머신이 어떻게 사람들을 더욱 더 깊게,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로잡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는지. 다음으로 여기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어떻게 자발적으로 그 상태를 즐기고 더욱 강화하게 되었는지. 그런 다음 3부에선 중독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당연히 짐작되듯, 왜 이 자발적인 중독 상태가 현실적으로 어떤 파탄을 불러 일으키되 왜 이 고통에 제 발로 걸어가게 되는지를 분석한다. 마지막 4부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현재의 조치가 왜 인식, 실천, 현실적 제약 측면에서 개선되어야 하는지를 정리한다. 이 모든 이야기가 슬롯머신을 중심으로 한다는 건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왜? 슬롯머신이 무엇을 주길래 그러는가? 테이블 게임에 비해서 그리 큰 돈을 걸지도 못하고 딸 확률도 높지 않은데? 카지노도 이를 알지 못했고, 사람들도 이를 알지 못했다. 그 비밀은 일종의 고요한 몰입 상태, 존zone에 진입하는 데에 있었다.
카지노는 여러 차원에서 최대한 많은 돈을 벌 수 있도록 다양한 측면의 구상을 한다. 예를 들어, 주요 머신이 밀집되어 있는 내부 구역에 더욱 많은 사람이 들어갈 수 있도록 그 진입로를 직각으로 꺾이는 전환 없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만든다. (실제로 진입 비율이 1/3에서 2/3으로 대폭 늘어났다) 카지노에서 시간 개념을 최대한 망치기 위해 내부에 개방형 창문을 두지 않고 시계를 비치하지 않는다는 것은 빼놓을 수 없다. (백화점에는 원래 창문이나 시계 두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고객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쇼핑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이 개념이 원래 어디에서 나왔을 거라고 생각했던가?) 그리고 수익률을 늘리기 위한 구성에는, 점차 이용률이 높아지며 다른 게임 종목보다 오히려 우세를 점하기 시작한 슬롯머신을 파악하는 과정 역시 포함되었다. 다른 게임과 달리 슬롯머신은 거의 순수하게 운에 의해 모든 게 결정되다시피 하며, 이용자의 숙련도가 거의 의미가 없다. (실제로 단순 관광객이 아닌 근처 주민들은 좀 더 숙련도 높은 비디오 포커를 선호하는 편이다) 대신 거는 돈도 그렇게 크지 않으며, 잭팟 금액을 늘릴 수도 없었다. 법률상 도박 게임은 '공정'해야 했고, 랜덤성을 만드는 난수발생기 자체에 조작을 가해선 안 되며-우리는 지금 미국 전역이나 호주 전역 등, 온갖 곳에 기기를 납품하는 기업 입장에서 이야기하고 있다-그렇다고 기댓값을 계산해봤을 때 정말로 카지노에게 손해가 될 만큼 돈을 지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고작 세 개의 슬롯으로 구성되는 슬롯머신에서 조합이 몇 가지나 있겠는가?
그러나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슬롯머신 중독자들은, 각 게임에 별로 집중하지 않는다. 계속 버튼을 누르며 결과가 나오면 바로 다음 버튼을 누르고, 최대한 오랫동안, 가능한 만큼 게임을 즐기다가 떠나고 싶어하는 듯했다. 이는 두 가지를 뜻했는데, 하나는 슬롯머신의 시행이 큰수의 법칙을 따를 만큼 충분히 많아 기댓값만 충분히 낮다면 아무리 느린 수익이라도 확실하게 충분히 쌓인다는 보장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었고, 또 하나는, 그 과정이 오래 걸리기만 한다면 고객은 돈을 아무리 잃었더라도 일단 만족한다는 점이었다. 슬롯머신에 몰입한 상태, 존에 들어선 사람들은 이 상태의 지속 자체를 원했다. 랜덤한 선택을 하고, 빠르게 결과가 확정되고, 그것이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 상태. MBA, 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온갖 사람들이 들어와 슬롯머신의 수익률 증대를 위한 새로운 시나리오를 짜기 시작했다. 점진적으로, 매우 오랜 시간 동안 돈이 줄어들되 그 중간중간마다 작은 승리를 쥐어주며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게 혼란시키고, 결국 현재 보유금이 완전히 없어지기 전까지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몰입한 상황.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한번 존에 들어선 상태에서 결코 몰입이 깨지지 않도록 소리, 그래픽, 의자, 편의시설 등 온갖 측면에서 몰입을 방해하지 않도록 보조하고,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법률상으로는 확률 조작이 아닌' 가상 릴 매핑virtual reel mapping, 슬롯머신의 각 가로/세로/대각선 등에 따로 배팅을 할 수 있게 해 1센트씩 90개의 라인을 단번에 배팅하게 만드는 다중 라인 머신 등 1회 시행에 들어가는 돈을 줄이고 다중 시행에서 빠지는 돈을 늘렸다.
(가상 릴 매핑은 왼쪽의 숫자가 랜덤하게 나오면 그 숫자를 오른쪽의 슬롯에 연결시키는 방식인데, 정말 흥미롭게도 잭팟 7이 나오기 직전이나 직후 공백에 훨씬 더 많은 매핑이 되어 있어 많은 사용자들이 이번 스핀 결과가 정말 아쉽게 붙지 않았다고near-miss 판단하게 만든다. 물론 당연히, 그렇지 않다.)
위에서 지역 주민들은 실력이 좀 더 요구되는 비디오 포커 게임을 더 선호했다고 한 걸 기억하는가? 비디오 포커 게임 역시 여기에 열중하게 되면 비슷한 존에 진입해, 거의 1초마다 버튼을 누르며 카드를 보긴 봤을까 싶은 수준으로 베팅을 반복하는 걸 볼 수 있다. 호주에서는 이에 착안해 여러 포커 게임을 한 번에 할 수 있도록 쓰리 포커, 파이브 포커 등의 게임을 개발했으며 그 각 게임에서의 승리는 슬롯머신의 라인과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했는데, 덕분에 무려 백 개의 게임을 진행하는 비디오 포커까지 가면, 이는 사실상 릴을 돌려서 각 라인에 배팅하는 슬롯머신과 다를 게 없다. 호주는 또 다른 크나큰 기여를 했는데, 이렇게 존에 몰입한 사람들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도록 '자동 스핀' 기능을 추가한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이 기능을 추가하기 전부터 이쑤시개 따위로 스핀 버튼을 눌러놔 계속 스핀이 돌아가도록 만들어놓곤 했으니 이런 간교한 기능 추가가 카지노만의 잘못은 아닌 셈이다. 이 점이 <중독의 설계>에서 집중하는 또 다른 요소, 자발성이다. 슬롯머신은 더 이상 더 큰 돈을 제공하는 모험의 장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즐거움을 제공하는 놀이기계에 가깝고, 중독자는 그 앞에 앉아 자신의 즐거움을 더욱 강화해주려는 여러 동작 및 기능에 어떨 때는 긍정적으로, 어떨 때는 부정적으로 반응하며 놀이의 효과를 증폭시키는 데에 기여한다.
저자는 이를 푸코의 파놉티콘이, 그러나 푸코 식의 처벌 및 강제가 아니라 들뢰즈 식의 자발적 참여로 구현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들뢰즈가 <카프카론>에서 보인 바 있듯, 권력 관계는 서로 다른 참여자의 자발적 동의로 구성된다. 자신의 위치나 상태를 조정하며 기계와 하나게 된 상태로 더 나은 결실을 내고자 하는데, 존을 더욱 확실하고 길게 연장시키는 것이다. 중독자들의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긍정하는 바는, 존은 평정심을 제공하는 것이지, 결고 불확실한 이득에서의 불타는 쾌락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탈산업화 시대에 온갖 선택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영향과 결과를 불러오고, 이런 제각기 다른 선택과 부담에 직면한 사람들은 슬롯머신, 비디오 포커 기계 앞에 앉아 존에 몰두하며 선택으로부터 해방된다. (물론, 각 경제적 개인의 책임감을 요구받는 시대에 그 경제력을 위한 수단이 거진 슬롯머신과 다를 것이 없는 금융상품이라는 것도 한몫 한다. 금융공학 설계와 카지노 기댓값 설계에 비슷한 인력이 들어간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일종의 자기-소멸에 가까운 행위. 한번 가져온 돈이 완전히 떨어지기 전까지, '혹시라도 돈을 딸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매 차례 해소되며 확실하게 돈을 조금씩 잃는다는 걸 확인받는 과정. 삶이 점진적으로 고통을 축적해나가는 과정에 가깝다는 불교스러운 마음가짐처럼, 명상에 가까운 존에 몰입한 이들은 삶보다 훨씬 확실하고 안정적으로, 삶을 살면서 그럴 것처럼 자신이 서서히 확실하게 소모되는 과정을 즐긴다. 이를 도와주듯 카지노에서는 손에 만져지고 무시할 수 없는 돈이 숫자에 불과한 디지털 화폐로 반드시 전환되게끔 권하며, 칩보다도 가볍게 사라지는 이 디지털 화폐는 심지어 ATM 연동 카지노 카드의 도움을 받아 더욱 빠르고 확실하게 자기-소멸 과정을 재촉한다.
슬롯머신을 둘러싼 이 역학은 카지노가 주요 수익을 올리는 수입원들의 상태를 점검하며 '너무 심해지지 않도록' 잘 관리하도록 만들었고, Micro seePower 등의 생체 데이터 수집 기기를 사용해 고객의 사진을 포함한 인적정보와 더불어 현재 얼마나 잃었고 그 속도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해 게임을 일시 정지시키거나 소정의 보상을 주는 "행운의 대사" 직원을-혹은 디지털 게임 도박에서 그렇듯, 디지털 서비스를-투입하게 해줬다. (백화점 이야기를 앞에서 했던가? 각 고객을 트랙킹하며 그 생체 정보 및 현황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빅데이터 시대의 전조를 보고 있는 데에 주목하라. 단순히 전조로 끝나지 않으며, 여기에서 개발 및 연구된 기술은 실제로 그 묘목으로서 활용되었다. 라스베가스가 왜 탈산업화 시대의 디트로이트인지 이제 감이 오는가?) 물론 그 관리가 전체적인 재정 관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에 중독자들은 시간과 돈을 전부 여기에 쏟아부으며 라스베가스의 수익의 대부분을 책임져주며, 이 뒤로는 익숙한 중독의 레퍼토리다. 그렇다고 중독자가 라스베가스 밖에서 도박 중독을 치료받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며, 도박을 가장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곳 역시 이 라스베가스이기에 이곳에서 최대한 중독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중독 치료 클리닉을 받던 이들은 중독 치료 중, 혹은 치료를 위한 방법을 사용하는 중 슬롯머신 앞에서의 존과 유사한 체험을 하곤 하며, 그렇게 중독 치료는 중독을 부르는 또 다른 원천으로서 기능하고, 이 연쇄는 끊이질 않곤 한다. (도박으로 인한 불안감을 없애기 위한 약물을 먹다가, 이를 복용한 상태로 도박을 하면 더 이상 불안해지지 않아 훨씬 편안하게 존에 몰입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는다고 생각해보라!)
<중독의 설계>가 보여주는 분석의 두려운 점은, 그 접근법과 중독자의 마음가짐이 한국에서도 꽤 빈번하다는 것이다. 슬롯머신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재미를 위해 도박을 하도록, 게임을 하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이 전제에 동의하는 순간, 온라인 게임의 수많은 사행성 요소는 실제 그 자체로 위험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거래 가능하지 않아 현물화될 수 없기에 차라리 안전하고 인생을 탕진하지 않는다는 말은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이쪽이 더 위험하다는 정반대 귀결을 이끌어내며, 휴대폰 사용 및 카드 연결로 접근성을 높이되 일반 게임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소비를 촉진하는 모바일 가챠겜을 생각하면 더더욱. (나는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가 젊은층의 경마 관심도를 높이기 위해 기획된 게임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실제로 일본 젊은이들의 경마 참여율이 높아졌다는 점을 생각하며, 차라리 다른 모바일 가챠겜은 어쨌든 이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에 한국 우마무스메 인기를 대폭 낮춘 카카오게임즈에게 감사를 표한다) 물론 모바일 가챠겜이 슬롯머신의 전단계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며, 이런 게임이 필요 이상으로 돈을 흡수할지는 몰라도 사회 문제가 될 정도로 파괴적이지는 않을 테다. (사실 파괴적인 것으로 치면 실제 카지노인 강원랜드가, 얼마 전 확률 조작으로 과징금을 받았던 메이플스토리가 훨씬 그렇지 않을까) 다만, 이 사이의 간극이 그리 넓지는 않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는 있을지도 모른다. 각 사용자의 인식 문제가 아니다. 이 설계의 자기-파괴 유도적인 속성을 파악해야 할 건 늘 그렇듯 정부다. 한국에서 게임 규제는 늘 넘쳐나지만, 그 규제가 정말 올바른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걸까?
독서(문학이 대부분)갤러리의 소중한 비문학 글 개추 - dc App
지난 30년간 사회과학분야에서 출간 된 책중에 가장 충격적인 책. 일본에서 번역된건 이해가 갔는데 (빠칭코가 있으니) 한국에서 나와서 좀 놀랐음. 인터넷 인터페이스도 이런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은데다가 맛폰 어플리케이션도 이런 문제 생각해 볼만함
한국에서는 게임 심의하거나 규제하는 사람들이 한번 읽어볼 필요가 있을 거 같음 진짜 큰 문제가 될 정도로 더 심각해지기 전에...
리니지라이크의 나라, 신창섭의 가호가 함께하는 쌀숭이의 나라 대한민국이 우습나??
아 이거.. 자기파괴행위라는걸 아주 잘 알고 있음에도 "가장 안전한"zone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간다는게 적잖이 충격이었음
설계의 자기-파괴 유도적인 속성 < 이 부분 흥미롭네. 인간은 이런 거 왜 좋아할까
들뢰즈의 통제사회 에세이는 갈수록 재평가 받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