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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인디 게임 제작자가 아베 코보 소설에 영향을 많이 받았대서 읽어봤는데 재밌었음


읽으면서 계속 든 생각인데 이거 아무리 봐도 작가가 신안 염전 노예를 모티브로 쓴듯


아니면 그냥 비슷한 일이 세상 이곳저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걸지도


무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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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감상


주인공이 그동안 살아왔던 교사의 삶과 모래를 계속 팔 뿐인 삶


그 둘 간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결말에서 주인공은 탈출의 기회를 얻었음에도 다시 구덩이 속으로 들어간다


밖과 안의 삶이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주인공은 이야기 초반에서 반복되는 삶을 벗어나 사막의 한 촌락으로 향한다


자기 주변의 일상에서 지독한 권태를 느끼고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다 주인공은 마을의 계략에 휘말려 도피처라고 생각했던 사막에 갇혀


매일같이 모래를 퍼내는 지겨운 일상을 보내게 된다


그 상황에서 남자는 자신이 지겹게 느꼈던 도시로 다시금 돌아가고자 한다


장소만 반대로 바뀌었을 뿐, 두 상황은 똑같다


여기서 달라진 것은 주인공이 어디에 있느냐 뿐이다


사람은 자신이 있는 곳을 이상향으로 여기지 못한다


따라서 사람은 절대로 이상향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와도 같다


자신이 이상적이라고 여기던 상황에 이르더라도 도달한 순간 이는 이상향이 아니게 되고 만다


그러고는 계속 반복


이 상황 자체가 실존주의에서 흔히 말하는 부조리와도 같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은 구덩이에서 나오게 되었을 때 돌아가지 않는다


돌아가봤자 반복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교사로서 일하든, 모래를 계속해서 파내든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동경하는 장소로 향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반복될 뿐이기에



사막의 여자는 일찌감치 이를 깨달은 인물이다


혹은 처음부터 알고 있다고 해야하나


그녀는 묵묵히 눈앞에 있는 것만을 보며 살아간다


이유는 없다


계속해서 의심하는 주인공을 안심시키려 억지로 죽은 남편과 자식을 이유로 댔지만


그런 것은 처음부터 없다는 것이 머지않아 드러난다


여자는 정말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러한 불합리한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가 예로 들었던 시지프 신화의 시지프스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끊임없이 돌을 정상으로 밀어올리는 삶


계속해서 모래를 파내는 삶


본질적으로 인간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따라서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을 동경하며 사는 인생은 삶의 본질을 잘 이해하지 못한것이다


주인공은 처음에 여자를 마을이 하라는대로 다 따르는 수동적인 존재로 보지만 사실 뭘 모르는 것은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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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방인보다 훨씬 이해가 쉬운 소설인 것 같다


초현실적주의적인 묘사도 그렇고 참 재밌고 좋은 소설


오랜만에 재밌는 책을 읽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