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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별짓기로 유명한 부르디외의 64년도 저작. 60년 대 프랑스의 대학생에 대한 조사를 기반으로 하는 당시 교육에서 발생하고 있는 구조적인 폭력에 대해 설명하는 글이다. 초기 저작에 속하는 만큼 유명한 문화자본이란 표현 같은 것은 등장하지 않지만 그 개념에 해당하는 내용들은 전부 들어있다 봐도 무방하다. 아이러니를 나타내기 위한 역설적인 표현을 즐기며 말을 빙빙 꼬는 부분이 있어 읽기 힘들 수는 있지만 사실 이 책은 부르디외의 저작 중에서는 제일 접근성 문턱이 낮을 것 같단 생각인데, 중간중간 학생 인터뷰 등을 통해 글을 환기시키는 부분이 있기 때문. 초기 저작인만큼 수집한 자료의 양도 상대적으론 적은 분량인 점도 한 몫한다.
저자는 1장에서 근 50년 간의 프랑스 대학생들을 분석한 결과를 통해 대학의 문턱은 낮아지고 교육의 평등이 겉으로는 이루어진 듯 보이지만 실제 교육의 체제는 상위 계급이 자연스레 습득하는 특정 문화를 '긍정적인 것'으로 여기는 체제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하위계급의 교육에서의 박탈(기술학교, 농업학교)이 자연스레 발생하며 체계의 불평등을 은밀하게 만들었을 뿐이라고 이야기 한다.
무엇보다 상위계급에서 습득하는 것은 단지 '긍정적인 것'에 대한 지식뿐만이 아니라, 그들은 사회적 생존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는 환경에 오랫동안 노출 되면서 여유 있는 태도, 적절한 수준의 조롱섞인 유머, 자신감들을 얻 되는데, 이들은 이런 자본들이 활약할 수 있는 구술 시험 등이 실시되는 구조 하에서 이득을 얻게 된다.
뒤이은 2장과 3장에서는 대학 확대로 인해 증가한 대학생(주로 인문계) 들이 어떻게 그들의 직업적 미래와 관련이 없는 기술들을 추종하며 떠받들게 되는지를 이야기한다. 특히 상위 계급이 그들의 직업적 미래와는 진정으로 상관이 없기에 딜레탕티즘으로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이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불만으로 인한 그들의 눈앞에 있는 교수와 학습하는 것들의 추앙(혹은 교육에서의 탈락이나 지체)으로 나타난단 것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저자는 상위-하위 계급뿐만 아니라, 파리-농촌, 남성-여성 관계에서도 이와같은 구조적 폭력이 발생하며 조건이 중첩될 수록 심화됨을 이야기하며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상대적 교육 민주주의의 필요를 제기하며 글을 마무리짓는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구조적 폭력에 관한 이야기는 사람들이 기저에서는 인식하고 있던 부분을 더 활발한 논의 대상으로 주목되게 만들었단 점에서는 주목할만하고, 오늘 날에도 여러 부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이런 점에서 저자의 글이 당시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음을 부정할 순 없을 것이고, 오늘 날의 교육 정책에도 저자가 이야기하는 상대적 교육 민주주의가 포함되었음을 여러모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부르디외는 그 본인이 체제를 뒤엎자는 혁명가는 아니었던 만큼 이 구조적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폭로하듯이 이야기 하면서도 어떻게하면 그 폐혜를 줄일 수 있을까 라는 방식의 접근을 하였지만 그 단계의 논의는 아직은 더 나아갈 부분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특히 상대적 교육 민주주의에 경우는 오늘날에 와서도 실제 공교육에서 어퍼미티브 액션 등으로 대표되는 조건들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다는 점, 상대적 교육 민주주의를 전달할 수 있는 방안인 공교육에 대한 부분조차 실질적으론 여전히 형식적 평등이란 부분이란 테제가 지배하고 있단 점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느낀다.
다만, 어퍼미티브 액션과 같은 발상을 부정하는 소수의 사례(하위 계급의 학습을 통한 극적인 계급 상승) 등은 저자 역시 글에서 언급한 부분으로 특정한 가정환경(독서 중시 등)이나 강한 상승지향 욕구로 설명할 수 있다는 점, 이와 같은 소수의 사례는 현 체계에 대한 신화적인 일화가 됨으로써 역설적으로 구조의 폭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저자의 문제 제기는 합리적이라 진단할 수 있겠다.
비록, 교육환경이 다르고 오랜 세월이 지나 이전보다 통용되는 부분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글이 독자에게 사고할 거리를 남기는 것은 이와 같은 구조적 폭력이 이전보다 더 은밀한 방식으로,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은연중에 인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들이 조사한 통계 집단과 그 조사가 상당히 한정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점에서도 아쉬움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내면에서 느끼던 문제에 대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게 제기했다는 점에서는 오늘날에도 논의될 가치가 충분한 저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잘읽었슴다 - dc App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중요하다고 보는건 두가지 주장임. 제목이 암시하듯 경제적인 돈 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상속된다는 것. 다른 하나는 명시적인 차별이 아니라 비가시적인 차원에서 작용하는 힘이 서민층 아이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그만두게 만들고 있다는 것 동시에 이를 통해 능력을 매개로 한 질서 정당화가 발생하는거.
나왔을 때 맑스주의적이라고 욕먹었다는데 요즘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욕먹을듯.
당시에는 교육문제가 이제 막 사회학 연구 테마로 나올때라 선구적인 글이기도 하고, 비경제적 요인을 부각해서 조명 받았음. 그전까진 교육민주화라는게 애들 경제적 격차 완화 시키는 정책들 위주였던지라.
부르디외를 맑시스트라 까는건 안티68주의자들 레퍼토리고, 베버의 영향도 많이 받음. 그러나 그 시절에 베버는 번역도 거의 안됐고 고등교육 받은 엘리트들이나 독일어 했던지라 베버 영향은 소수제외하면 잘 포착 못했을거임. 부르디외는 여러가지 방식으로 까임. 아무래도 종국에는 국가귀족, 호모 아카데미쿠스 통해서 엘리트를 까기 때문에 역적취급 받아서 그럼.
실제로 그 경제적 요인 좁히는게 효과 없음을 설득력있게 드러낸듯.
아니지.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거. 내 기억이 맞다면 로저 에스타블레였나 크리스티앙 보들로였나 기억이 안나는데 교육 사회학자가 이 책이 경제적 요인에 주로 집중하던 당대의 상황에서 이 책이 신선한 변화의 바람을 몰고왔다고 논평 했던걸로 기억함. 번외로 언급한 이 둘은 알튀세르 제자로 교육문제 연구자들임.
뭐 글쵸. 어째서 경제적 간극을 줄였는데도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라는 질문 던지는게 초반 요지였으니까. 글 자체가 잘 언급되지않던 화두를 던졌고 그게 오늘날에도 여전히 통용될만한 점이란 점을 생각하면 잘 읽었음.
교육문제라는게 나라별 차이도 있고 상속자들이 나온뒤로 시간도 꽤 흘렀으니 요즘 버전(?) 찾아본다면 셰이머스 라만 칸의 특권이나 클라이브 & 마이라 해밀턴의 특권계급론 보면 도움될거임.
오
잘읽엇음다 정말 개좆같은 세상임다
잘 읽었습니다.